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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엄마 아빠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 이젠 자유롭게, 마음대로 다녀!"

 

지난 4일 대구의 한 심리치료시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뒤 5일 부검을 마친 이아무개(10) 어린이의 유해가 6일 오전 사천에 도착했다. 이군은 곧바로 사천시공설화장장으로 옮겨져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줌 재로 변했다.

 

이군의 부모와 유가족들은 곧바로 고성군에 있는 선산으로 이동해 곧게 뻗은 소나무숲 속에서 이군을 떠나보냈다. 이군의 부모는 재로 변한 아들을 소나무숲 곳곳에 흩어주며, 엄마 아빠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는 말과 이젠 자유롭게 다녀란 말을 되뇌었다. 이를 지켜보는 유가족들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슬피 흐느꼈다.

 

장례식은 간단히 끝났다. 하지만 유족들의 슬픔과 회한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이 석연치 않음과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을 키우는 설움까지 한꺼번에 쏟아졌다.

 

"아이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부모한테 전화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아이를 그리 묶었다가…."

 

"국가가 장애아에 얼마나 배려 없는지 알게됐다"

 

이군의 아버지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가 못다한 말은 이군의 큰아버지가 이었다.

 

"아이가 무슨, 혼자 목뼈를 다칠 수 있나. 손발에 든 피멍을 보면 얼마나 세게 묶였는지 알 수 있다. 그 과정에 사고가 일어난 것이지, 자고 일어나보니 숨을 쉬지 않더라는 게 말이 되나?"

 

이군의 사망원인에 관해 경찰은 5일 저녁 "1, 2번 경추 탈골에 의한 척추 손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문제의 아동놀이치료센터 원장은 "아이의 손발을 묶긴 했어도 그외 가혹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 유가족들은 원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경찰은 신중한 반응이다. 기본적인 조사를 좀 더 한 뒤에 구속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국가에 대한 원망도 드러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국가가 얼마나 장애아동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지 알게 됐다. 장애가 있는 애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경험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른다."

 

실제로 이군 부모는 아이 치료를 위해 이사도 다녔고, 직장도 바꾸면서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이군 큰아버지의 얘기는 계속된다.

 

"애를 맡았던 곳을 보자. 정상적인 애들도 아니고 장애가 있는 애들이 스무 명 정도 있었다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고작 두 명이었다. 국가가 허가해 만들어진 시설도 아니고 그저 민간협회에서 내주는 치료사 자격이 전부란다. 믿고 맡길 만한 곳이 없으니까 우리는 이런 시설에라도 맡길 수밖에 없다."

 

특수교육 교수 "묶어서 방치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이와 관련 대학에서 자폐아동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자폐아동을 묶어서 방치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너무 놀랍고 가슴이 뛴다, 아주 심할 경우 약물로서 진정시키는 것이 기본이다, 어쩔 수 없이 묶었다하더라도 아주 잠시 해야 하고, 그동안 곁에서 꾸준히 지켜봐야지 방치하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국가는 '치료'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자격을 극히 제한하고 있는데, 민간협회에서 우후죽순 남발하고 있어 이런 사태를 부른 것 같다"며 "보호아동 19명에 치료사 2명이 관리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런 경우 적어도 보조교사가 1대1로 붙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법률에서는 학교의 특수학급 장애아동 기준인원을 유치원 4명, 초등 6명, 중등 6명, 고등 7명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숨진 이군이 머물던 놀이치료시설에는 19명이 있었다. 만약 모든 장애아동을 초등학생쯤으로 보더라도 전문 교사급 4명이 확보돼야 했다는 소리다.

 

발달장애2급, 이른바 자폐증을 앓던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고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이군은 어쩌면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소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치 채지 못하는 우리는 또 다른 '자폐'를 앓고 있는 건 아닐는지.

 

큰 슬픔 속에서도 이군 유족들은 되레 의연했다.

 

"이미 떠나보낸 아이, 어떡하겠습니까! 또 다른 ○○이 나오지 않도록 뭔가 대책이 선다면 이 슬픔이 덜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장애아동, #사천, #대구, #치료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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