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아니 거의 보지 않는다. 시시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1년에 한 편 정도 보면 많이 보는 정도이다. 우리 집엔 아예 TV도 없다. 재작년엔 <베토벤 바이러스>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그냥 재미있었다. 올해 <선덕여왕>과 <아이리스>가 시청률 최고였다고 난리가 났어도 선덕여왕, 아이리스는 단 한 장면도 보지 않았다. 왠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11월부터 방영한 MBC수목드라마 <히어로>는 14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물론 시간 맞춰서 본 것이 아니라 인터넷 다시보기로 보았다.
히어로는 참 리얼하다. 그래서 슬픈 마음도 든다. 탐욕스런 재벌, 침묵만이 아니라 나아가 한술 더 뜨는 언론, 위선의 정치, 추악한 법조인과 무관심한 사람들, 그 속에서 진실을 보여주려는 용덕일보의 노력은 눈물 난다. 드라마 구성은 참 거칠고 조악하다. 인위적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는 줄거리는 뻔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도 <히어로>는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 내 시선을 사로잡은 드라마다. 이렇게 재밌는 드라마가 시청률은 꼴찌다. <아이리스>에 눌리고 새로 시작한 <추노>에 눌리고 형편이 말이 아니다. 아무리 언론이 외면한다 해도 공중파에서 당당히 방영되는데 이 정도라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요즘 시청자들은 이런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만약 이런 드라마가 5공 때 방영되었더라면 우리 대학생들은 열광에 열광을 했을 텐데. 작가와 PD는 철창신세를 감내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히어로의 외로움은 단순한 시청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히어로가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철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드라마의 완성도가 낮은 것일까? 회를 거듭할수록 히어로는 오늘을 사는 내 모습과 너무도 흡사한 듯하다. 이제 드라마는 종반을 넘어 결말을 향해 간다.
내가 드라마를 싫어하는 것은 드라마는 언제든지 정의가 이기기 때문인 면도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이다. 세익스피어 비극 같은 결말이 그리 많지는 않다. 히어로의 결말은 이러했으면 좋겠다. 대세그룹의 최일두 회장이 대통령도 되고 당당히 대한민국의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한 리얼리티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시청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받는 히어로처럼 히어로도 철저히 관객을 좌절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공중파 드라마 사상 최초로 최일두의 승리로 결말이 났으면 좋겠다. 그것이 리얼리티 아닐까? 5%의 시청자마저도 완전히 좌절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처사일까?
하지만 진정한 좌절을 맛본 후에야 비로소 새 희망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지금 장안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가 열풍이다.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울 기세다. 미국의 보수파들이 '아바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언론이 난리다. 다음주엔 꼭 '아바타'를 보아야겠다. 이념에 사로잡힌 보수가 싫어하는 것이라면 꼭 한번 보고 싶다.
히어로를 외면하고픈 대한민국 심리상태와 '아바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느끼고 싶다. 이즈음에서 영혼이 없는 한류열풍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
나도 가끔은 히어로 같은 드라마가 재미없는 처지가 되고 싶다(?)
재미는 강요한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기에 히어로의 시청률이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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