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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참사 발생 355일 만에 거행된 9일 오전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시신이 운구차로 옮겨지자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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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고 이상림씨의 처 전재숙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역광장을 가득 메워주신 여러분께, 다섯 유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희는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고인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함께 배웅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덕분에 장례를 치르게 되어 오랜만에 다섯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버지 영전에 절 한번 올리지 못한 우리 막내도 감방에서 잠시 돌아와 상주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이들도, 군대와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텅 빈 영안실도, 뻥 뚫린 가슴도, 조금이나마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신 분들을 땅에 묻으려니, 또다시 가슴에 찬바람이 휑하고 지나갑니다. 갖가지 회한이 밀려옵니다.

어제 정운찬 국무총리가 영안실을 찾아 왔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유가족이 마음을 열고 양보해 줘서 감사하다고도 했습니다.

진작 보낼 것이었다면 왜 1년이나 끌어왔습니까? 화마에 불타고 칼에 찢겨진 내 남편, 내 아버지의 시신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생지옥에서 살아야 했던 저희 유가족들을 왜 1년이나 외면하셨나요? 2009년 마지막 그날까지 사과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우셨나요?

고인들을 더 이상 차가운 냉동고에 둘 수 없어서 힘든 결심을 한 유가족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애써 못 본 척 못 들은 척 했지만, 지난 1년 전 고인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몰아붙인 기억들이 되살아나 마음이 참으로 편치 않았습니다. 고인들의 육신은 땅에 묻어드릴 수 있겠지만, 테러범,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땅바닥에 떨어진 고인들의 명예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이충연 전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고 이상림씨 아들)이 구속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된 가운데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용산 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어머니 전재숙씨와 부등켜 안고 울고 있다.
 이충연 전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고 이상림씨 아들)이 구속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된 가운데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용산 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어머니 전재숙씨와 부등켜 안고 울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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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연이도 오늘 아버지를 묻고 나면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옥 같던 불구덩이에서 뛰어내리다 다친 허리와 다리가 낫지 않아서, 상중에도 계속 침을 맞고 진통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어릴 적 못 먹어서 가뜩이나 자그마한 막내가, 신혼 초에 생이별을 하고 다리를 절뚝이며,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이 차가운 감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걸 보는 이 못난 어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미의 마음은 곧 동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알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저 높은 망루에 올랐던 동지들이 오늘도 감방에 있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오늘 고인들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습니다. 지금까지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저희 유가족,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다시 한 번 염치불구하고 당부 드립니다.

돌아가신 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실을 밝혀서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감방에 갇힌 내 아들, 우리의 동지들이 하루빨리 무죄로 풀려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세요.

그리고 우리와 같은 철거민들이 이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해 저 위태로운 하늘 끝 망루로 오르는 일이 없도록 이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 잡아 주세요. 없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저희 유가족, 국민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고 꿋꿋이 살겠습니다. 그 은혜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월 9일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유가족 일동


태그:#용산참사, #영결식, #전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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