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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저 계단을 오르면서 모슨 생각을 하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탑으로 향하는 계단은 정성스럽게 눈이 잘 치워져 있었다. 아마도 스님의 손길이 닿았을 것이리라. 계단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정확한 수는 알 수가 없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계단이다. 계단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끔하게 치워져 있는 것은 지극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계단 위에는 탑이 조성되어 있었다. 물론 요 근래에 조성된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된 탑이다. 이곳에 탑을 세우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한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하였을 지를 짐작해본다. 오직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기에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탑을 조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진정성이야말로 역사의 힘이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 것은 개인에게는 물론이요 사회와 국가에게도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탑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겨울 귀신사.

돌아올 귀자 믿을 신자를 써서 귀신사다. 언뜻 듣게 되면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 오해하기 쉽다. 발음이 그래서 생기는 오해일 뿐 본래의 뜻은 아름답다. 믿음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이기 때문에 방황할 수 있고 사람이기 때문에 후회할 수 있다. 반성하고 돌아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귀신사 대적광전은 보물 제 82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대적은 성성적적의 고요를 나타내는 말로서 진리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그러니 본 절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대적광전은 원래 신라시대 의상 시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중수된 것이다. 대적광전에 모져져 있는 비로자나삼불은 소조로서 또한 보물 제 1516호로 지정된 국가 문화재로 길이 보전해야 할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이다.

 

예전에는 절이 쇠락하여 찾는 이가 별로 없었다. 또한 인근에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7 교구 본사인 금산사가 위치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양한 불사가 이루어져 절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대적광전도 말끔하게 수리되었고 볼품없었던 요사채는 헐어지고 대신 새로운 건축물이 지어졌다.

 

 

대적광전 앞에는 오래된 백일홍이 운치 있게 자라고 있어 한결 멋을 부리고 있고 그 옆에는 오죽이 한 겨울에도 초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사를 찾는 이의 마음에 싱그러운 향기로 다가오고 있어 좋았다. 바쁜 일상사에 쫓겨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서 작은 위안이 되어주는 산사의 운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절 마당 한 쪽에는 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다양한 파편들은 정성스럽게 모아서 탑으로 쌓아 놓기도 하였고, 주춧돌들을 보기 좋게 나열해놓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진정성이 살아 있는 한 역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잘 정돈 되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정성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정성이란 같은 것을 보더라도 느끼는 것은 같다는 의미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애타는 마음이 곁들여지면 그 것이 무엇이든 진정성으로 통할 수 있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이 다른 시점에서 진정성이 통하게 되면 서로 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천 년 전의 간절한 사람의 마음과 오늘의 내 마음이 진정성으로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면 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원하는 일은 다를지 몰라도 그 일에 임하는 진정성만큼은 천 년 전의 사람의 마음이나 오늘의 내 마음이 진정성으로 일치를 이룬다면 이루고자 하는 것을 꼭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진정성이란 결국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사심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한마음으로 간절하게 원하게 된다면 이루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것은 진정성이 되는 것이다. 진정성이 있다면 시간이 아무리 달라도 공간을 초월하여 얼마든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계단 위에 쌓인 눈을 쓸어낸 스님의 마음도 진정성이요, 오랜 전에 탑을 찾아 기도를 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진정성이다. 그 진정성에 작은 사심은 하나도 없고 오직 절실한 마음뿐이었다면 그 둘은 통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일치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언제인가는 분명 일치점을 이루게 될 것이고 진저성은 서로 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것을 모두 다 감내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탑을 향하여 걸어 올라가는 사람의 마음으로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진정성으로 살아가다가 힘이 다하여 쓰러진다고 하여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감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고마워하는 마음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려 노력한다. 발버둥을 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미리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인생은 단 한번 뿐이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면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진정성을 가지고 인내해본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귀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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