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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에 걸린 태극기 산 위에 태극기 꼭 달아놓아야 할까요?
아차산 정상에 걸린 태극기산 위에 태극기 꼭 달아놓아야 할까요? ⓒ 김시열

새해 첫날, 가족끼리 더듬더듬 휘청휘청 눈 덮인 아차산에 올랐다. 꼭대기에 오르면 눈발 사이로 잿빛 하늘 먼저 볼 줄 알았는데, 나무도 아닌 것이 미끈한 놈이 앞서 맞아준다. 시멘트와 철제 다리를 버팀목삼아 하늘로 솟아오른 국기 게양대다. 태극기 한 점이 훨훨 날아오르고 싶은지 제 몸뚱이를 찢어놓을 듯 펄럭거리며 용을 쓴다. 이 높은 산꼭대기에 태극기가 웬 일!

'자연 위에 대한민국 있다'는 선언일까, '여기는 한국 땅'이란 영역표시일까.

온 국민을 얼음땡놀이 같은 '국기에 대한 맹세''국기 하강식'으로 경건주의 엄숙주의에 꽁꽁 묶어버린 태극기는 언제부터 방방골골 마을마다 내걸렸을까?

"1971년 전국 3만3267개 행정 리․동에 시멘트 335부대씩 지원하여 전 리․동에서 일제히 새마을운동을 추진했다"(김영미-그들의 새마을 운동-361쪽에서)는 자료를 볼 때, 태극기가 마을을 넘어 산꼭대기로까지 옮아간 일은 시멘트가 보급된 30, 40년 전으로 올라가지 싶다. 이제 웬만한 동네 뒷산은 새마을 깃발까지 함께 춤춘다.

관악 치악 설악 같이 사람들 발걸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던 험한 산꼭대기도 태극기는 나부낀다. 일제는 산의 정기를 끊기 위해 혈맥마다 철심을 박았다더니. 태극기 걸자고 산꼭대기에 시멘트 칠갑한 일도 어지간하다. 함께 간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왜 산꼭대기에 태극기를 달아놓았어요?... 바람에 다 찢어지겠네!"

아차산 287미터 정상에 20미터가 넘는 국기게양대를 얹었다. 바람을 이기자니 철제구조물로 받치고 시멘트로 두를 수밖에. 태극기를 올리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풀을 솎아냈다. 인간은 자연한테 기대어 살지만, 인간은 자연을 윽박지르고 후벼파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기철의 '작은 것을 위하여'라는 시가 산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중략)
인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간 다음에 이 지상에 남을 것들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오리나무 뿌리 뻗는 황토 속에
그들의 꿈과 노래를 보석처럼 묻어둔다.

사람들은 시시때때 하늘과 교감하며 보여주는 바람과 구름의 조화, 발치 아래 뚝 떨어지는 계곡과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내달리는 희끄무레한 능선을 쫓느라 소란만 떤다. 산꼭대기에 달아놓은 태극기는 일찌감치 잊은 듯, 눈길 한 번 건네지 않는다.

30, 40년 전 태극기를 산으로 내몬 이유가 뭘까. 산 위에서도'대한민국'을 잊지 말자는 다짐인지, 건설족을 위한 원조 삽질인지 분명치 않으나 오늘 깃발은 왕따다. 알록달록한 등산객들은 국기게양대 아래 시멘트 바닥을 딛고 사진 찍기에 급급하다. 넘쳐나는 발길로 국기게양대 이웃한 부드러운 흙마저 시멘트 못지않게 단단해졌다. 산과 생명에는 민폐요 등산객한테는 왕따니, 더 머물도록 내버려둘 까닭이 없지 않은가.

산 정상을 덮은 시멘트와 철제구조물 태극기를 세운 국기게양대를 지탱하기 위해 바닥에 콘크리트로 칠갑을 했다.
산 정상을 덮은 시멘트와 철제구조물태극기를 세운 국기게양대를 지탱하기 위해 바닥에 콘크리트로 칠갑을 했다. ⓒ 김시열

산꼭대기를 점거한 시멘트 더미와 태극기를 이제 하산시키자. 산이란 애초에 낙엽과 죽은 동물 사이를 누비며 생명을 잉태시킬 미생물들 꼼지락거리고, 파릇한 목숨 보듬은 흙들 차지 아니었던가.


#산꼭대기 태극기#태극기가 왜 산에?#산과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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