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2호선 당산역 환승 통로의 에스컬레이터.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에스컬레이터 오른편에 서서 내려가고 있다. 왼편에는 누구도 서지 않은채, 모두 빈 자리로 남겨두었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 대부분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이러한 풍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2010년인 지금도 두 줄 서기는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홍보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두 줄 서기를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다. 두 줄 서기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평소 영등포구청역에서 자주 환승하는 A씨(남·27)는 "막상 왼쪽에 가만히 서서 가려고 하면,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비키라고 할 것 같아 요즘에는 그냥 속 편하게 오른쪽에 서서 간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A씨처럼 '뒤에 사람들이 기다릴까봐' 혹은 '사람들이 비키라고 할까봐' 에스컬레이터의 오른쪽으로 올라탄다.
한 때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를 권장했던 적이 있었다. 급한 사람들을 위해 한 쪽을 비워두자는 취지였다. 이 운동으로 인해 한 줄 서기는 많은 시민들에게 습관화되었다. 그러나 안전 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07년부터 다시 두 줄 서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두 줄 서기 운동의 근거로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에스컬레이터 관련 사고 중 걷거나 뛰다가 발생하는 사고가 약 89%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 대부분은 이러한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따라서 두 줄 서기의 필요성도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당산역에서 만난 B씨(여·55)는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지만,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목격한 적도 없고,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급한 사람을 위해 왼쪽을 비워두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서서 가는 것은 나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A씨는 "예전에 한 번 왼편에 서서 간 적이 있었는데, 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에티켓 없는 사람처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올라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안전 규칙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규칙은 두 줄 서기이지만 실제로는 한 줄 서기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A씨 같은 소수의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과감하게' 왼편에 서서 갈 수 있는 소수 시민들의 힘만으로 두 줄 서기를 정착시키는 것은 벅차 보인다. 이미 두 줄 서기 운동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수 년 동안 들인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이용해 두 줄 서기를 유도하지 못한다면, 에스컬레이터 문화는 지금처럼 어정쩡한 한 줄 서기로 정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