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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칠 지음
 신현칠 지음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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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휴머니즘은 바로 코뮤니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지은 신현칠 선생은 1917년 서울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 마르크스를 알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마르크스를 공부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치안유지법으로 1년, 남파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년, 사회안전법으로 13년을 옥에 갇혀 보냈다.

갇혀있는 세월이 길었으니 선생이 쓴 바와 같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어떤 뚜렷한 일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떤 혁명가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 깊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쓴 글에서만 느껴지는 울림을 느낄 수 있다. 도가 높은 스님이나 믿음이 깊은 신부님이 아니면 자상한 이웃집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우리 곁에는 공산주의를 종교처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전향과 비전향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전향하는 이들은 조금 마음이 여린 이들이고 끝까지 전향하지 않는 이들은 조금 더 독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선생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삶을 사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어렵고 힘든 삶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선생과 같은 삶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존경심도 든다.

교도소에서 제법 공산주의를 아는 체하고 거들먹거리며 사상논쟁을 하자는 부소장에게 선생은 말한다.

"당신에게는 그렇게 할 자유가 없다. 나는 차라리 당신의 견해에 동의할 것이 있으면 동의할 자유가 있으나, 당신은 그렇게 할 처지에 있지 않고 그렇게 하면 당신의 신상에 불이익이 오고 어쩌면 나와 같이 갇히는 몸이 될지 모른다. 이러한 자유 없는 사람과의 논쟁은 삼척동자도 아니할 것이다."

선생은 다른 책 <사각지대에서>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의 행위를 벌하는 범위를 넘어서 내심을 벌하는 것은 역사 이래로 어떠한 통치자도 성공해본 일이 없다. 권력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행위할 것을 명할 수는 있어도 그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 생각을 가지고 죽겠다는 데야 도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행위가 아니라 내심 자체를 위험하다고 규정하고 벌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1917년에 나셨으니 아흔도 훌쩍 넘었다. 살아오신 길을 보면 여느 할아버지와 달리 선각자라 부를 만하다. 미술을 보는 눈이나 깊은 우물에서 퍼올린 물처럼 맑은 생각을 보면 철학자란 바로 이런 분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필부도 역사에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에선 난 역사를 위해 어떤 값을 치르고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이른 바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도 선생과 같은 공산주의자까지는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북으로 보낸 공작원들 가운데에도 비전향을 굳게 지키는 이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다면 그 분들이 쓴 글도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http://blog.ohmynews.com/partisan69/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 - 한 ‘비전향장기수’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넘어서는 염원

신현칠 지음, 삼인(2009)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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