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 기업에서 CEO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중소기업 단계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대기업 규모에서는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연중기획 'CEO 리포트'로 그 명암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최근 차명재산을 둘러싼 의혹과 굴업도 개발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편집자말]
"2009년 산림청이 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2009년 환경부장관상을 받은 절경의 섬을 덤프트럭 21만대로 짓밟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굽히지 않는 것은 오로지 부동산 가치 상승에 따른 이재현 회장 가족의 재산 증식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굴업도 Ocean Park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11개 시민단체가 이같이 주장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굴업도 개발을 주도하는 씨앤아이레저산업(아래 '씨앤아이')이 이 회장의 '패밀리 컴퍼니'다. 팩트다. 아버지, 아들, 딸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둘째, 그래서 '씨앤아이'를 회장 일가의 재산 증식용 회사로 보고 있다. 이재현 회장 두 번째 CEO 리포트의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들이 그렇게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펴보면, '씨앤아이'가 어떤 회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씨앤아이'는 페이퍼 컴퍼니인가

논현동 어반하이브 빌딩
 논현동 어반하이브 빌딩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이를 위해 먼저 '쉬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재현 회장 차명재산을 관리하던 CJ(주) 전 재무팀장이자, 씨앤아이 전 감사였던 이모씨의 최근 선고공판에서 주목할 만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모씨에 대한 배임·횡령 등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재판부는 '씨앤아이'를 '페이퍼 컴퍼니'로 규정했다.

등기부등본 주소지에 가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2009년 12월 31일,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벌집' 모양의 어반하이브 빌딩 15층.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보안요원은 "아직 입주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출입구에는 'CJ Properties Corporation(공시명 : 씨제이프로퍼티스)'이란 생소한 이름만 남아 있었다.

그런 계열사가 있었다고 한다. CJ측은 13일 "CJ프로퍼티스 사무실을 재임대하는 형태로 있었는데, 그 회사가 작년에 없어지면서 씨앤아이도 CJ건설 사옥 안으로 이주했다"면서 "아직 등기부등본상 주소지가 정리되지 않은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말끔하지는 않다. CJ프로퍼티스 등기부등본에는 임시주주총회 결의로 해산한 날짜가 '하필' 작년 7월 1일이다. '씨앤아이' 등기부등본이 현재 주소지로 바뀐 날짜와 같다. 서류상으로는 CJ프로퍼티스가 없어지자, 그 사무실로 '씨앤아이'가 때맞춰 이사한 모양새다. 보충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씨앤아이'는 회장 일가의 재산 증식용 회사인가

다음은 '재산 증식용 회사인가'를 따져 볼 차례다. 우선 주요 임원을 살펴보자.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4명 중 재무경력이 '짱짱한' 인사가 2명이다. 이사는 현 CJ(주)재무팀장, 감사 역시 CJ(주)재무팀 부장이다. 2006년 설립 초기 대표이사 또한 당시 CJ(주)경영전략실장이었다.

CJ측은 일단 경영전략실장은 재무 관련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어디까지나 총괄직이며, 일종의 구조본 역할을 하는 업무"라고 했다. 또한 재무 인사가 임원 중 2명인 것도 특별한 경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회사 감사는 모회사 재무담당이 맡는 것이 통례"란 설명이었다.

허나 무죄를 선고받은 전 재무팀장 이모씨가 '씨앤아이'에서 했던 일을 통상적인 감사 업무로 보긴 어렵다.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 명목으로 대출 받아 토지거래허가구역인 강화도 석모도 온천지구 부지를 편법으로 매입한 사실만 해도 그렇다. 물론 CJ측은 이를 전혀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모씨가 독단적으로 한 것"이란 설명인데, 이와 관련해 2008년 9월 30일 KBS 뉴스는 전혀 다른 정황을 전한다. 당시 뉴스는 "씨앤아이 직원들이 계약에 참여했다"면서 변호사와 법무사도 같이 왔었다는 당시 땅을 판 사람의 말도 함께 보도했다. 한 개인의 '일탈'로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뉴스다.

편법 매입이 사실이 드러난 석모도 땅 등기부등본.
 편법 매입이 사실이 드러난 석모도 땅 등기부등본.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이모씨가 저지른 '불륜',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로맨스'

그런 '심증'을 문제의 석모도 땅 등기부등본이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모씨가 토지매입을 위해 앞세운 '이뎀건축사사무소(아래 '이뎀')'란 회사에 '씨앤아이'가 채권최고액 2백억원짜리 근저당을 걸어 놓고 있다. 석모도 온천지구 부지 소유권만큼은 확실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CJ측은 채권 확보 차원에서 근저당 설정을 해놓은 것뿐이란 태도다. 허나 한편으로는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이모씨가 저지른 불륜이지만, 그래도 로맨스는 로맨스다'. 그의 '일탈'로 어쨌든 '씨앤아이' 자산규모가 크게 불어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2007년, 2008년)'를 근거로 '씨앤아이' 자산을 '큰 덩어리'로 쪼개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굴업도 '땅 덩어리'다. 계약금이나 중도금 등 부대비용을 포함한 땅값은 188억원 정도다. 다음은 주식. '씨앤아이'는 같은 CJ계열사인 화성봉담PFV에 출자했다. 99만6천주를 사들였다. 출자금은 49억9천8백만원이다. 그리고 '받을 빚'. '이뎀'에게 석모도 땅 사라고 꿔 준, 이모씨가 편법 대출로 마련했다는 장기대여금 106억원 등이다. 이들만 합쳐도 343억원을 웃돈다.

한국신용평가정보의 '신용분석보고서'를 보면, 2006년 12월 194억1백만원이었던 총자산이 2008년 12월 380억9천8백만으로 껑충 뛰었다. '씨앤아이' 총자산 규모는 "금융업을 제외한 총 59개의 (국내)계열사 중 총자산 기준 26위 업체"에 해당한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종업원 숫자는 15명, '출중한' 성적표다. 그러니 '패밀리 컴퍼니'란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씨앤아이레저산업의 등기부등본상 사무실
 씨앤아이레저산업의 등기부등본상 사무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굴업도 개발도 재산증식용인가?

"굴업도는 변수가 많은 섬이다. 겨울철에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초봄부터 여름까지 안개가 굉장히 많이 낀다. 배가 못 뜨는 날이 많다. 과연 '장사'가 되겠는가. 골프장에 근무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더라. 게다가 골프장 건설에 대한 비난 여론도 적지 않다.

이런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현재 계획대로라면 굴업도에 3910억원이 투자된다. 그만큼 자산 규모가 커진다. 씨앤아이는 몇 천억 원짜리 자산을 보유한 회사가 된다. 그 회사 지분을 딱 세 사람이 갖고 있다. 결국 회장 가족 재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룹 지배력을 높인 사례도 있다."

굴업도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한국녹색회 소속 이승기(50·남) 정책실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CJ측은 굴업도 개발을 통해 회장 가족의 그룹 내 지배력을 높인다는 것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라고 일축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유를 설명했다.

"모든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CJ(주) 지분 40% 이상을 이재현 회장이 갖고 있다. CJ 대주주 오너의 지배구조는 삼성보다도 더 확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업(굴업도 개발)을 통해 지배구조를 다질 필요가 없다.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제주와 여주에 골프장 운영하는 CJ건설도 있는데...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 CJ 국문 브로슈어

관련사진보기

아울러 CJ측은 사업성과 관련하여 "단순히 골프장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기 휴양형 종합리조트 단지를 만들려는 것이고 골프장은 그 일부분"이라며 "리조트 개발사업이 리스크가 큰 사업이란 점도 감안하면, 재산증식용 회사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곧바로 따라붙는 물음표. 그렇게 리스크가 큰 사업을 왜, 하필, '씨앤아이'가 주도합니까. 패밀리 컴퍼니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번듯한 계열사도 있다. 골프장업도 주요 영업으로 하는 CJ건설이다. 제주와 여주에 나인브릿지 골프장도 갖고 있으니, 여러모로 합당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CJ측은 "토지매입, 인허가, 자본 유치, 시공 등 부동산 개발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면서 "씨앤아이가 끝까지 끌고 갈 수도 있지만, 토지매입 및 인허가 과정 외 다른 부분은 CJ건설로 넘어갈 수도 있고, 투자자를 유치해서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할 수도 있다. 사업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속단은 이르다는 태도였다.

허나 최악의 경우, 자산 가치만 왕창 불려 놓고, 사업 리스크만 나누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후자는 최근 목도한 상황이기도 하다. 금호사태와 관련하여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그룹 총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상장 계열사를 동원했다가 그룹 전체가 흔들린 경우"라고 평가한 바 있다.

왜, 하필, 패밀리 컴퍼니 '씨앤아이'인가

2007년 한국은행이 내놓은 '지주회사 현황과 과제'란 연구보고서를 보면, 지주회사 전환 후 1인 지배가 더욱 강화된 사례로 금호와 더불어 CJ도 꼽고 있다. 지난 8일 김 소장에게 '물론 차이가 크겠지만, 금호사태와 같은 위험성을 본질적으로는 CJ도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김 소장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재현 회장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CJ 지배구조가 기존 재벌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굴업도 개발 이면에 금호사태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왜, 하필, '씨앤아이'여야 하는지, CJ그룹에서 그 누구보다 이재현 회장이 돌아봐야 할 '타산지석'이다.


태그:#CJ, #이재현, #굴업도, #씨앤아이레저산업, #석모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