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가 분한 북한 장교가 극중에서 자기의 소원은 남조선보다 더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송강호가 '나의 소원은 말이야...'하고 진지하게 시작해 얼마나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지 다음 말이 무척 궁금해 기대했는데 그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남한보다 더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것이란 소박한 말에 한참 동안 웃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영화였지만 그 소박한 꿈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빌어주었다.
며칠 전, 일본 산케이 신문은 한국의 '초코파이'가 개당 9달러 50센트(한화 1만 750원) 가격으로 북한의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개성공업단지 근로자들은 우리 기업인 개성공단(주)이 공급하는 간식으로 '오리온'과 '롯데', '크라운 제과'의 초코파이를 하루에 1인당 2~3개씩 지급받고 있는데 1일 약 10만개, 1개월으로 계산하면 250만개 정도 되며 이를 암시장에 내다 팔아 현금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초코파이가 얼마나 인기 있으면 그렇게 비싼 가격에 암거래되고 있는지 놀라웠다.
70년대 후반 초코파이가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고급 대접을 받았는지 4등분하여 귀한 손님 대접하는 상차림에도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게 하나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초코파이는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먹으면 먹을수록 자꾸만 먹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달아서 먹기도 힘든데 그때는 그렇게 맛이 있었다.
아는 사람 중에 새로운 과자가 나오면 다 사서 먹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새로운 과자를 줄기차게 사먹어온 그가 가장 맛있는 과자라고 내린 결론은 새우깡과 초코파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그때보다 양이 좀 줄었을 뿐 맛은 그대로인 것 같다. 그래서 그 둘은 오랜 세월 변함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엄마들 가슴 속에는 눈물의 초코파이가 담겨 있다. 나 역시 큰아들이 군대 가서 처음으로 보내온 편지에 초코파이 이야기가 있어 눈물을 쏟았었다. 추운 날에 입대하여 훈련을 마치고 복무한 2년여 세월 동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 포병대였던 아들은 150kg의 포를 둘이서 들고 운반하다가 앞선 사람이 넘어지는 바람에 그 무거운 포가 다리에 떨어져 3개월을 입원해야 했다. 또 빙판을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상관이 불러 뒤돌아보다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철심을 박고 다시 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를 가슴 졸이며 눈물과 근심어린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왜 그토록 병역비리가 극심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던 세월이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아이는 주일날 성당에 가면 초코파이를 나누어주어 그것을 먹으면서 집생각도 하고 쉼을 얻었다고 했다. 이제 제대한 아이는 초코파이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초코파이를 볼 때마다 늘 아이의 군생활이 제일 먼저 떠올라 가슴이 아려온다.
단 것은 먹지 않은 지 오래 되었는데 새삼스럽게 그 맛이 그리워진다. 내일은 그립기도 하고 가슴아프기도 한 옛생각들을 떠올리며 초코파이를 먹어볼까 한다. 아련한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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