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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를 담뿍 잡아 기폭을 올리고/ 온다던 그 배는 어이하여 아니오나/ 수평선 바라보며 그 이름 부르면/ 갈매기도 우는 구나 눈물의 연평도

60년대 이미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최숙자가 부르고 훗날 조미미가 리바이벌해서 트로트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눈물의 연평도' 가사이다. 1959년 한반도를 휩쓸었던 태풍 '사라호'에 희생된 어부들을 추모해 만든 곡이라서 감칠맛이 나면서도 슬프다. 하지만, 조기의 참맛을 즐기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노래이기도 하다.

1969년 '동지나 어장'이 개발되기 전만 해도 연평도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조기의 섬'이었다. 매년 4월 중순에서 6월 초순까지 '조기'철이 되면 전국 각지의 어선들이 연평도로 몰려들었는데 성어기가 되면 3천-5천여 척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해서 조기는 연평도를 생각하며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어 노래배우기를 권했던 것이다.  

꽃게도 알을 낳으려고 준비할 때가 가장 맛있듯 조기도 산란기인 4월 중순이 넘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입을 하거나, 먼 바다에 나가 잡아오기도 하고, 양식기술도 발달해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조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어 조기 애호가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7석이'는 어떤 생선?

지난해 7월 어느 날 새벽 6시 군산 해망동 수협 공판장 모습. 경매사의 걸걸한 목소리에 리듬이 실려 흥겨운 노래가락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7월 어느 날 새벽 6시 군산 해망동 수협 공판장 모습. 경매사의 걸걸한 목소리에 리듬이 실려 흥겨운 노래가락처럼 느껴졌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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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설명하고 넘어갈 게 있다. '7석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할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다음은 비릿한 바닷냄새가 코를 찌르는 군산 해망동 공판장의 새벽 정적을 깨는 경매사(세리꼬)의 우렁찬 가락이다. 

"에이야~. 씨알 좋은 조기 7석이 양만~, 양만 2,000~, 양만 4,000천~, 31번!"

경매는 새벽 6시에 시작하는데, '이야~'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전주곡이라 할 수 있겠고, '조기 7석이'는 한 상자에 조기가 일곱 줄로 깔렸다는 뜻이다. 양만은 조기처럼 비싼 생선일 경우에는 20만 원, 물메기처럼 싼 생선일 경우에는 2만 원을 말하고, 끝 번호는 31번 중매인에게 낙찰됐다는 뜻이다. 

5월이 되면 고깃배들이 잡아온 조기를 경매에 부치려고 상자에 담아 공판장에 내놓는다. 씨알이 작은 조기는 한 줄에 여덟이나 아홉 마리, 중간 크기는 일곱 마리나 여섯 마리씩 담으니까, 마릿수 적은 상자가 비싸기 마련인데, 중간급인 '7석이'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조기가 한 줄에 아홉 마리가 깔리면 '9석이', 여덟 마리가 깔리면 '8석이', 일곱 마리가 깔리면 '7석이'로 통하는데 70년대만 해도 네 마리나 세 마리가 깔린 상자가 흔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석이'를 '단'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나이 든 어른이나 재래시장 상인 사이에는 '9석이'는 '9단'으로 '7석이'는 '7단'으로 통한다.    

'7석이'를 맛있게 먹으려면

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참조기. 필자가 요리를 해먹었으면서도 다시 보니까 침샘을 자극한다.
 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참조기. 필자가 요리를 해먹었으면서도 다시 보니까 침샘을 자극한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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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애호가들은 '7석이'를 살짝 말려 요리한 밥반찬을 즐겨 먹는다. 그런데 기름에 튀기는 것보다 약한 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내는 것이 조기의 고소한 참맛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요리법일 것이다. 하지만, 싱싱하지 않으면 꼭 구이를 할 필요가 없다. 매운탕이나 찌개를 끓여도 다른 생선에서 느낄 수 없는 깊고 시원한 맛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알배기 조기를 먹고 싶어 하면서도 가격이 워낙 비싸니까 사먹지 못한다.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고, 과일이 크다고 맛있는 게 아니듯, 조기도 마찬가지다. 구입할 때 꼭 큰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고 '7석이' 정도면 적당하다는 얘기다.

서해를 대표하는 생선, 조기를 말하면 대부분 굴비를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생선은 싱싱한 생물일 때 자기 맛을 최대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길. 또 조기는 탕이나 찌개, 구이나 튀김 등 무슨 요리를 해먹어도 맛있는 생선이다. 그런데 다른 생선과 달리 싱싱하지 않으면 참맛을 느낄 수가 없다. 해서 구입할 때는 싱싱한가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아가미를 확인할 필요 없이 냄새로도 금방 알 수 있다.   

스텐그릇에 담아 찜통에 쪄낸 조기. 어떤 생선도 따라올 수없는 감칠맛을 지닌 조기 요리이다.
 스텐그릇에 담아 찜통에 쪄낸 조기. 어떤 생선도 따라올 수없는 감칠맛을 지닌 조기 요리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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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석이'를 스텐이나 사기그릇에 몇 마리 깔고 그 위에 고명으로 양념을 얹은 다음 진간장을 적당히 부어 찜통이나 밥솥에 쪄먹는 방법도 빼놓을 수 없다. '7석이' 한 마리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는데 필자가 좋아하는 요리여서 추천하는 것이다. 

양념은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파, 통깨, 진간장 등이 들어가는데 파는 조선파든 대파든 상관없이 가늘게 다져주면 된다. 이 요리는 진간장이 양념과 함께 조기 몸통에 스며들면서 익을 때쯤이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냄새를 풍긴다. 

다양한 조기 요리 중에 쪄먹는 방법은 양념과 진간장의 달착지근한 맛이 가미되어 장조림 간장에 버금가는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아 식사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데, 조기 특유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진 개운한 양념간장을 밥에 비벼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조기에 양념과 진간장을 부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도는 대신 염도가 높아지므로 신장병이나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분들은 쪄먹는 것보다 구워먹는 게 몸에 좋다고 한다. 

김칫독에 1년이나 2년 숙성시킨 김장김치를 냄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7석이' 생물 몇 마리를 올려놓고 양념을 한 뒤 자글자글 끓여보시라. 이 맛 또한 환상적인데, 참조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김치에 스며들도록 끓여 손으로 찢어 뜨거운 밥에 얹어 먹을 때 느끼는 그 맛, 게장에 비할까? 그 깊고 깊은 감칠맛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간단히 구워먹기만 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우는 조기를 놔두고 '밥도둑' 타령을 하고 있다니, 재래시장 생선가게나 공판장에 나온 '7석이'가 들었다면 조기의 참맛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참조기, #7석이,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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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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