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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태양 아래 춤과 음악이 흘러넘치는 나라. 교육도, 의료도 공짜인 나라. 이제 너무 유명해진 쿠바다. 한국의 한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 이 '섹시'한 나라에 반해 쿠바를 찾았다. 쿠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감독은 쿠바의 '생얼'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다가 한 쿠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한다. 국교도 성립 안 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의 두 젊은이는 지금도 어디서 살지 결정 못한 채 두 나라를 오가고 있다.

<쿠바의 연인> 정호현 감독은 배제의 문화가 없는 쿠바를 '마술같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쿠바의 연인> 정호현 감독은 배제의 문화가 없는 쿠바를 '마술같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 정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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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8일에 막을 내린 '서울독립영화제 2009'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쿠바의 연인>의 이야기다. 실제 이 다큐의 주인공인 정호현 감독은 4년여 간 쿠바에 머물렀다. 한국의 그 누구보다 쿠바의 문화정책을 생생하게 들려줄 것 같아 영화제 기간중에 정 감독을 찾았다.

사실 영화 속, 쿠바 청년 오리엘비스(오로) 가족과 오로의 생활만 보더라도 금방 쿠바 문화에 대한 느낌이 온다. 인터뷰로 성이 안 차다면 <쿠바의 연인>을 한 번 볼 것을 권한다. 유의할 점은 영화를 보고 나면 음악과 춤이 일상인 쿠바와 수만원을 넘어서는 공연을 엄두도 못 내는 한국의 문화가 대비되는 씁쓸함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정 감독과 남편 오로, 20개월 된 아들 이안이의 다음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질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비상시기', '문화의 질' 수준 급격히 떨어져

한국의 한 여성 감독이 쿠바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쿠바 청년을 만나 결혼에까지 골인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쿠바의 연인>
 한국의 한 여성 감독이 쿠바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쿠바 청년을 만나 결혼에까지 골인한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쿠바의 연인>
ⓒ 정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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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에는 배우거나 볼 수 있는 문화시설들이 많은가.
"한국으로 치면 '리'단위별로 '문화의 집'이 있다. 음악, 그림, 무용 등을 하고 싶은 아이들은 방과후 수업처럼 배울 수 있다. 쿠바에서 모든 교육은 무료이기 때문에 이 역시 무료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배울 수 있다. '문화의 집'은 모든 국민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저변확대를 위한 것이다. 문화 관련 교육 외에도 동네 행사 프로그램도 한다. 예전에는 영화도 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프로젝트 등 기자재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

- 쿠바 국민들이 '문화의 집' 운영에 대해 만족하고 있나.
"쿠바는 소련 붕괴 이후를 '비상시기'라고 부른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지금도 많이 어렵다. '문화의 집'도 80년대까지는 활발하게 운영됐지만 소련 붕괴 후 90년대 들어 질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이 필요하고 음악을 배우려면 악기가 필요하다. 경제가 어려우니 모두 무료인 이런 기자재들을 갖춰놓기 힘들게 된 거다. 그래도 여전히 춤은 잘 가르치고 있다. 춤은 큰 재료 필요 없고 옷 한 벌만 있으면 되지 않나. 쿠바 어딜 가도 꼬마들이 까만 타이즈를 신고 춤 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행사들이 많나.
"동네 축제가 다양하게 열린다. 우리로 치면 동네 이장이 중심이 돼 하는 행사들이다. 어린이들이 탈 놀이기구가 오는 날, 서커스 비슷한 쇼를 하는 날, 먹을거리 놓고 춤추며 노는 날 등 거리는 많다. 그리고 여름 내내 동네마다 야구경기도 열린다. 또 우리 옛날 시골처럼 동네에 누가 생일이다 하면 이웃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준다. 특히 여자아이가 15세가 되면 동네에서 아주 큰 축제를 하는데, 이 여학생을 알던 모르던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축하해 준다."

- 쿠바인들은 수입도 적은데 어떻게 예술공연을 자주 관람하나.
"공연비가 정말 싸다. 우리로 치면 100원, 200원 수준이다. 그러니 돈이 없어서 공연을 못 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쿠바의 예술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음악이나 발레를 초등학교 5학년 정도부터 가르친다.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따로 뽑는다. 거기에 선발되면 대학원까지 갈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워낙 예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발되기가 쉽지 않은데 탈락하면 다른 걸 할 수 있는 길도 있더라. 어렸을 때부터 소질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내는 건 잘 돼 있는 것 같다. 더 중요한 건 문화시설이나 교육 등이 수도인 아바나라서 더 잘 돼 있고 지방이나 산간, 시골이어서 더 안 돼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예술가들이 아바나에 많이 사니까 질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정책적으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돈의 배분에도 차이가 없다."

- <쿠바의 연인>을 보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더라. 이는 교육 때문인가 민족 특성 때문인가.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사회주의체제로 인한 성과물인가 아니면 민족 특성인가. 아무래도 후자의 힘이 더 큰 것 같다.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받쳐준 사회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사회였다면 다 잃어버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활에 치여 살지 않았겠나."

고급문화, 하위문화 개념 없어, 쿠바에서 문화는 누구나 누리는 것

쿠바의 무료교육정책은 예술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술을 배우기 원하는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무료로 음악, 춤, 그림 등을 배울 수 있다. 사진은 발레를 전공하는 쿠바의 예술학교 학생들
 쿠바의 무료교육정책은 예술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술을 배우기 원하는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무료로 음악, 춤, 그림 등을 배울 수 있다. 사진은 발레를 전공하는 쿠바의 예술학교 학생들
ⓒ 여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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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에서는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나.
"쿠바에서 문화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발레 공연 같은 게 너무 비싸지 않은가. 쿠바는 문화를 특수층이 향유하는 것, 돈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또 고급문화, 하위문화와 같은 개념 역시 없다. 대중문화의 춤이나 고전무용인 발레, 재즈 등이 다 같이 어울린다. 공연비도 다 싼데 외국인들한테는 제값을 받는다."

- 영화를 보면 치료연극을 하는 루벨 이야기가 나온다.
"루벨은 아바나대학 법대를 1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국립예술종합대학에서 연극이론을 전공했다. 치유연극의 시작은 마을 평가였다. 정부에서 마을마다 평가를 하는데 사고나 문제가 많은 아이들이 있는 마을들이 있더란다. 자폐증 등에 걸린 아이들도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을 그 동네에 있는 문화인들과 의논을 한 거다. 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걸 해줘야 하느냐고. 논의 과정에서 루벨이 치유연극을 해보겠다고 해서 공간 등을 마련했다. 계획만 세우고 재정이 없어 제대로 추진을 못하다가 뉴스 기사를 본 스웨덴에서 재정 지원을 해줘서 벌써 5년째 진행하고 있다."

- 오로는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면 작곡도 하더라. 따로 음악을 배운 건가.
"오로는 "그런 피가 흐른다"고 표현하더라. 콩나물 대가리도 모르는데 놀랍게도 작곡을 한다. 자기가 상상한 걸 컴퓨터로 작곡을 하는데 트럼펫, 재즈피아노 등 각종 악기의 특성을 너무 잘 알고 있더라. 개인적인 끼도 있겠지만 많이 들으면 가능한 것 같다. 쿠바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작곡은 느낌으로 하고 음악 전공한 사람들이 거꾸로 악보를 써주는 식 말이다."

-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듣고 자라서 가능한건가.
"쿠바는 집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춤과 음악이 있다. 학교에서도 거의 1주일에 한번씩은 춤을 추는 것 같더라. 고등학교 개학식에 가 봤는데 충격적이었다. 교장선생님 말씀 끝나자마자 남녀가 손잡고 살사 같은 춤을 추더라. 쿠바 문화에서 부러운 것 중 하나가 다 같이 부르고, 모두 함께 출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너무 많다는 거다. 세대가 상관없다. 아빠가 추는 춤을 아들이 배우고 아들이 추는 춤을 다시 그의 아들인 이안이가 추는 식으로 이어진다."

- 쿠바 문화 중 새롭다고 느낀 부분은.
"쿠바에는 배제의 문화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달리기에서 떨어지면 인생에서 낙오가 되는 느낌이지 않나. 엄마들도 낙오되지 않도록 키우고…. 쿠바에는 청소부가 의사보다 못하다는 개념이 없다. 그 나라는 근원적 불안감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아파도 치료도 못 받고 애들 교육도 못 시킨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는데 그 나라는 나라에서 다 해주니 그런 불안감은 없다. 그런 게 춤, 음악, 그림 등 문화적으로 다 나타나는 것 같다. 배제의 문화가 없으니 장애나 사회소수자에 대한 인식 역시 우리와 다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지 않는다. 장애학교도 통합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학교에 의사와 교사, 사회복지사,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치료사 등의 관련자들이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 소위 말하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도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정책들이 너무 잘 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동세상, #쿠바, #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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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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