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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빙선'을 아시나요. 쇄빙선(Icebreaker)이란 얼음을 깨면서 가는 배를 말하는 것으로 남극대륙 주변이나 북극해 처럼 얼어 있는 바다에서도 독자적인 항해가 가능한 선박을 말합니다. 따라서 극지를 포함한 어느 곳에서라도 자력으로 항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선박이 항해할 수 없는 결빙된 해역에서 항로를 개척해 줌으로써 화물선 선단을 이끌어 화물수송이 가능하도록 돕거나, 운항하던 선박이 얼음에 갇힐 경우 이를 구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쇄빙선이 없었는데 지난해 가을 '아라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쇄빙선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아라온'에서 '아라'는 바닷을 뜻하는 순우리말, '온'은 전부를 뜻하는 말입니다. 미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쇄빙선은 40여 척 정도이나 대부분이 북극 항로 개척과 북극해 자원개발, 해양 환경연구, 석유개발을 위한 작업용 쇄빙선이며, 10척 정도만 남극용 쇄빙선으로 운항되고 있는데 이제 우리나라 '아라온'호가 남극을 누비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쇄빙선이 우리 집에 두 척이나 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집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지만 있습니다. 아라온 호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경위는 2007년 가을로 올라 갑니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2007년 가을 쇄빙선 이름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했는데 그 때 우리 가족은 '전재규'라는 이름으로 공모했습니다.

 

전재규씨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 아닙니다. 2003년 12월 6일 남극 세종기지 근처 바다에서 기지로 돌아오다가 연락이 끊긴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가 생명을 잃은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우리 가족은 남극 세종기지에서 생명을 잃은 전재규 연구원 이름을 떠올려 우리나라 쇄빙선 첫 이름을 '전재규'라고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라온이 당선작이었고, 2등이 전재규였습니다. 아직도 그 때 일을 잊지 않고 극지연구소에서 아라온 호 3D퍼즐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집 큰 아이가 정말 좋아합니다.

 

 

큰 아이가 아라온 호 3D퍼즐을 보자 맞추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라온 호를 두 척이나 보내주어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성격이 워낙 급히 퍼즐 같은 것은 잘 맞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있다. 재미있어."
"아빠 내가 왜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아빠는 성격이 급해 이런 것 잘못하는데 해보니까. 재미있다."

"나는 퍼즐 맞추기 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져요. 그리고 평면 퍼즐보다는 이런 3D퍼즐은 공간지각력까지 기를 수 있으니 좋아요."

"재미는 있는데 잘 안 된다. 그런데 너는 정말 잘 한다. 아빠보다 뒤에 했는데 벌써 다 맞춘 것 같다."

"이런 것은 쉬워요. 어렵지 않아요."

"앞으로 3D퍼즐 많이 사 주워야 겠다."

"쉬운 것 말고 어려운 것 사주세요.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튼튼해요."
"당연하지. 우리나라 최초 쇄빙선 3D 퍼즐인데 튼튼하게 만들어야지."

 

 

아라온 호 3D퍼즐을 함께 맞추면서 쇄빙선이 무엇인지 설명도 해주면서 큰 아이와 함께 남극 이야기를 나누니 부자 사이에 정이 깊어졌습니다. 함께 맞추겠다고 나선 막둥이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녀석은 만날 자기가 먼저하겠다고 나섰다고 조금만 힘들면 그만 나 몰라라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라온 호입니다.

 

"아빠 아라온 호 어디 갔어요?"
"너 아라온 호 퍼즐 맞추다가 그만 자버렸지."
"잠이 오는데 어떻게 해요. 잠이 오면 그냥 자는 거예요."
"잠이 와도 끝까지 맞추고 자야지. 형아는 다 맞추고 잤잖아."

"야 이게 아라온 호예요. 잘 만들었다. 이거를 타고 남극에 가는 거예요."

"남극만 가나. 얼음을 깨면서 간다. 대단하지."
"얼음을 깨고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럼 얼음을 깨면서 가는 배라고 '쇄빙선'이라고 하는 거다. 우리 집에 쇄빙선 두 척이나 있는데 사진 한 번 찍을까."

"아빠 우리 이 배 타고 남극에 갈 수 있어요."

"이 배 타고는 가지 못하지만 진짜 아라온 호 타고는 남극에 갈 수 있어."

 

 

 

우리 집 아라온 호로는 남극에 갈 수 없지만 앞으로 커서 세종기지 연구원이 되면 아라온 호를 타고 남극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얼음을 깨면서 남극을 누비는 상상을 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 집 아라온 호가 그 작은 시작일지 모릅니다.


#쇄빙선#아라온 호#남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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