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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해룡면 와온 해변이다. 겨울철 해넘이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해가 기울자 솔섬 너머의 해넘이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새해에 사라져가는 빛을 찾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도 잠시, 해넘이의 아름다운 풍경에 금방 매료되고 말았다. 나희덕 시인이 <와온(臥溫)에서>란 시에서 노래한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란 마지막 싯구가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와온 마을에는 해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신라 경덕왕 시절의 어느 날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월명노인이 도솔가를 불러 해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와온 앞바다는 근래 보기 드문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빙하기야 빙하기~ 빙하기가 왔어!"

 

얼어붙은 바다를 본 아이들은 와온 바다에 펼쳐진 눈을 보며 탄성을 내지른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호기심에 바다로 내려갔다. 가까이 다가가 본 와온 바다는 쌓인 눈이 다져져 얼음 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 두께가 한 뼘이 넘었다.

 

와온공원 아래는 물결 모양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바위를 이루고 있다. 물이 드러난 와온 바다는 하얗게 쌓인 눈과 바위의 단층이 햇살을 받아 절경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노을이 아름다운 와온 해변에 해가 저문다.

 

 
솔바람소리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귀가 시리다 못해 아리다. 와온 공원 건너 와온1길로 접어드는 초입의 '소코봉 2km'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푸른 마늘밭 너머로 보이는 솔섬의 풍경도 제법 아름답다. 마늘밭 나목에서는 까치가 운다. 민간신앙에서 길조로 여기는 까치 울음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해가 기울자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사진이 취미인 광주의 김정용(54)씨는 올해 들어서 벌써 세 번째 와온 해변에 왔다고 한다. 해변에서 "자연의 오묘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했던 가슴마저 뻥 뚫린다"고 했다. 순천의 박정식(48)씨 또한 와온 해변에서 "노을 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오~ 주여!'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고 말했다.

 

 

오후 5시14분경이 되자 솔섬 부근이 붉게 물든다. 한 폭의 그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사진작가들은 해를 따라 이동하며 사진담기에 여념이 없다.

 

해가 사라진 한참 후에도 그곳을 쉬 떠날 수가 없었다. 눈 덮인 바다 너머로 떨어지는 해의 황홀경은 어느새 나의 넋까지 빼앗아 가버렸다. 그 멋진 모습을 훔치려 할 새도 없이 그렇게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와온 공원에는 연인이 서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 때문인지 연인들은 꼭 껴안고 있다. 솔섬과 연인의 대비가 한 편의 멜로드라마처럼 다가온다. 와온 바닷가는 연인들의 통속적인 일상도 아름다운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신비로움이 있는 듯했다.

 

연인들이여, 사랑을 훔치고 싶다면 와온 해변으로 가라. 와온의 해를 훔쳐간 나희덕 시인처럼 해를 훔쳐도 좋고, 사랑을 훔쳐도 좋을, 빙하에 뒤덮인 순천만 와온 바닷가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와온해변#순천만#노을#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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