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이 남북관계 및 통일정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6·15와 10·4를 부정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가더니 급기야 흡수통일정책의 마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문화(文禍)일보가 터트린 '북한 급변사태 계획' 보도, 옥수수 제공과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개선의 희미한 등불마저 풍전등화로 만든 이 보도에 이어 확인된 '통일대계 프로젝트'는 충격이다. 청와대가 시인도 부인도 않던 '북한 급변사태 계획'의 실존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계획'의 단계를 넘어 '실행'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1월18일치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북한 정권 붕괴와 남쪽 주도 통일에 대비해 북쪽 주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 통일체제의 당위성과 효용성을 홍보하는 방송 시리즈를 제작해 방송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의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통일대계' 프로젝트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북한 주민들에게 통일이 가져다줄 '좋은 변화'를 교육하고 홍보해서 남쪽 주도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풀고 호응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기획됐다"며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의 월급과 구매력이 얼마나 오르고, 은행은 어떻게 이용하게 되는 것인지 등 실제 생활상의 변화를 생생하게 알리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또 이 관계자는, KBS와 MBC 등을 통해 올 가을부터 방영할 계획이라는 이 "제작물은 기본적으로 남쪽 국민들을 대상으로 방송되는 형식을 띠지만, 현재도 남쪽 방송을 휴전선 너머로 송출하고 있어 북에서도 볼 사람은 다 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최소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통일 이후의 모습을 접할 때 남쪽에 의지하게 되는 심리적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황당한 프로젝트를 연구자들이 추진한다는데 주목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런 발상은 역사에 대한 무지와 민족의식의 부재, 그리고 학자로서의 신념과 의지의 박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오늘의 북한(조선) 정권은 항일무장투쟁 당시 김일성의 리더십을 지지하던 조선 북부지역 주민들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이 지금은 여러 가지 내외적 요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측의 우경집단이 주관적으로 예단하는 것처럼 이른바 김일성의 유훈통치와 김정일의 리더십을 부정하면서 남측을 동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는 아니다.
을사늑약을 거친 1910년의 한일병탄, 한반도 전역과 만주벌판에 번진 1919년의 3·1만세시위, 1920년대 청산리전투와 봉오골전투 이후 쇠잔해가는 독립군 투쟁, 그리고 1931년의 만주사변과 1937년의 중일전쟁. 일본의 승승장구와 민족의 좌절로 질주하고 있는 모습의 흐름이다.
일본이 1937년 7월7일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자행한 중국본토 침략으로 국내에서 그나마 희미하게라도 명맥을 유지하던 민족진영의 지조는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이즈음(6월4일) 발생한 것이 '보천보전투'다. 김일성이 지도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 함경북도 소재 보천보를 친 것이다. 김일성 부대는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등을 타격한 후 추격하는 일본군을 구시산과 간삼봉에서 전멸하다시피 격퇴하고 백두산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보천보전투 소식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의 승승장구를 바라보면서 나약한 지식인들이 독립의지를 포기하고 친일로 돌아서던 때 터진 쾌거였다. 무엇보다도 민중에게 해방독립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동아일보도 보도를 했으며, 그 기사는 돌아가신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이 1998년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금판으로 제작해 가지고 가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아일보는 보천보전투의 승리 소식을 바로 보도했으며, 사건 다음 날에는 두 차례의 호외를 발행했고, 6∼14일에도 연일 2개 면씩을 할애해 머리기사로 보도했었다.
김일성은 그 후로 백두산을 근거지로 하여 국내 침공작전을 계획하면서 노동조합 및 농민단체 등과 연계하여 전민항쟁을 조직했다. 그 과정에서 군과 인민, 지도부와 민중 사이에는 끈끈한 연대의식이 형성되었다. 해방 후 수립된 북한정권은 그 연장선에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매진했다. 이 역사를 학습했다면, 작위적 방송 프로그램 따위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통일정책이 아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의 월급과 구매력이 얼마나 오르고, 은행은 어떻게 이용하게 되는 것인지 등 실제 생활상의 변화를 생생하게 알리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이런 발상을 하기 전에 남한의 400만 실업자에게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며, 700만 비정규직 일자리를 어떻게 양질의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부자감세 혜택을 받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남한 주민들의 월급과 구매력을 어떻게 올리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은행을 어떻게 이용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학자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하고 있지 않은지 학자로서의 신념과 의지를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 "북한 주민들이 최소 생존권도 보장되지 않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통일 이후의 모습을 접할 때 남쪽에 의지하게 되는 심리적 효과를 겨냥하고 있다"고 말한 부분이다. 남한에서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북한에 쌀을 보내 남북이 서로 윈윈하자고 해도 외면하면서 최소 생존권을 운운하는 게 학인의 태도인가?
MB정권은 확실히 조선일보가 바라마지 않는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정책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가급적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겠지만, 아니면 그만일 것이다. 그 대신 중국에 더욱 밀착할 것이다. '우경 모험주의'를 선택한 MB정권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인들이라도 올바로 처신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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