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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조례 제정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조례 제정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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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학생들은 미성숙의 인격체이므로 사회 또는 학교, 가정에서 보호받고 훈육·지도돼야 할 대상이다." - 윤완 경기교총 정책위원장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강대신 뉴라이트 학부모연합

"학생들은 아직 자아가 미성숙한 배움의 단계에 있는데 정책결정 참여 등 교육현장의 어려움을 고려했으면 한다." - 노정근 대한교조 위원장

19일 오후 수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공청회'에서 보수 성향의 교육단체 관계자들이 강조했던 내용이다. 여기서 쉬운 질문 한 가지. 위 세 관계자의 말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핵심 단어는?

'미성숙.'

이들이 청소년과 청소년 인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이 세 글자로 요약된다. 미성숙한 존재인 청소년은 훈육·지도의 대상이고, 아직 배움의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그 자체만으로 청소년들에게 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인권조례는 너무 과한 혜택(?)이라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인권은 시기상조?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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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학생인권조례제정자문위원회(위원장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 주관으로 열린 이날 공청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학생인권조례를 수정·보완하기 위해 열린 행사다.

'국경없는 교육가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유성상 한국외대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고, 고교생·학부모·교사 등이 토론자로 나왔다. 이날 공청회에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시민 80여 명이 참석했다.

어차피 8명의 토론자는 사이좋게 4명씩 학생인권조례 찬반으로 안배됐다. 그렇다면 가장 흥미로운 건 청중들의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2시간여의 발제와 토론이 끝난 뒤 이어진 자유로운 청중 토론 시간.

드디어 진정한 '토론의 향연'과 청소년 인권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쏟아졌다. 흡사 2008년 촛불정국의 초기, 활발한 광장 문화를 이끌던 '촛불소녀'들이 경기도교육청을 점령한 듯했다. 주요 비판의 대상은 바로 저 위의 세 글자, '미성숙'이었다. 포문은 이제 곧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는 안병주(38)씨가 열었다.

"8살 아들이 곧 학교에 들어가는데 벌써부터 '시험 못 보면 학교에서 혼난데'라는 말을 한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도 우리나라 학교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잘 아시겠지만, 초등학생도 자살하는 게 바로 우리 교육 현실이다. 여러 토론자들은 '미성숙한 청소년'이라 표현했는데, 사실 우리의 살벌한 교육제도를 만든 건 바로 여러분들 같은 '성숙한 어른들'이다."

간명한 말에 박수가 터졌다. 일부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청중을 자극했다. 이번엔 한 여성이 나섰다.

"초등학생도 자살하는 교육제도, '성숙한 어른들'이 만들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조례 제정에 대한 토론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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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미성숙'은 인권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하고, 미성숙이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을 억압하거나 짓눌러서는 안 된다"며 "설령 아이들이 미성숙하더라도 마음대로 위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가 어른들에게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김유경 분당정보산업고 회장은 "토론자들이 참 '미성숙'이라는 말을 많이 거론했는데, 도대체 미성숙의 기준은 무엇이냐"며 "나이만 많으면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인가"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   

24년 동안 교사로 근무하며 10년 동안 학생부에 있었고 4년을 학생부장으로 일한 한 교사는 이런 화두를 던졌다.

"저는 학생시절 천부인권사상을 주장한 철학자의 이름을 대답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맞았습니다. 이게 우리 인권교육현실입니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학생인권조례에서 체벌금지 조항이 몇 조 몇 항에 있는지 묻고, 모르는 학생들을 때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머리 길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사가 단속을 해도 아이들은 그 이유를 납득 못합니다. 이제 소모적인 학교 문화는 버립시다. 아이들에게 권한을 돌려줍시다. 그래야 어른들의 권위가 섭니다."

이어 이 교사는 "21세기 진정한 경쟁력은 머리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나온다"며 "학생들의 긴 머리가 보기 안 좋으면 이제 어른들의 눈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머리털이 아닌 머릿속이 중요... 학생들 권한 돌려줘야, 어른들 권위 선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조례 제정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열린 '2010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종합 공청회'에서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조례 제정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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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윤여강 교사는 이날 끝까지 공청회를 지켜보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윤 교사는 "20여 년 교사로 근무하면서 다른 의견 받아들이지 않고 토론도 할 줄 모르는 교장, 교감, 교육감을 많이 봤다"며 "존중의 기본은 상대방을 믿는 것이다, 학생들 의견을 듣고 존중해주면 그들은 어른들보다 잘 판단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한 고등학생은 "선생님들은 두발 단속을 하는 이유로 '머리 말릴 시간에 공부하라'고 말한다"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지적은 교사-학생의 신뢰만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청중들의 토론과 지적을 모두 들은 뒤 뉴라이트 학부모 연합의 강대신씨는 "뜻깊은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오늘 들은 견해가 이 나라 대다수 학생들의 견해가 아니길 바란다"는 '소신'을 밝혔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인물은 바로 토론자로 나선 고등학교 2학년 이재연 학생이었다. 이 학생이 발표한 토론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을 자신들의 생각대로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 때린다는 것, 그 자체가 실은 굉장히 비인간적인 것이고 일종의 고문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때리는 교사들은 때려주는 걸 감사히 여기라는 식의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중략) 이렇게 학교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은 학생이 신고를 할라치면 어른들은 한탄합니다. '교권이 바닥을 치네' '요즘 애들은 대체 왜 이렇게 싸가지 없냐'라고. 하지만 이런 체벌들은 선후배, 학생들 간의 폭력적 관계 형성에 모범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공청회는 오는 24일과 25일도 도교육청과 의정부에서 각각 열린다.


태그:#학생인권조례,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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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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