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최우선 정책과제를 '일자리 창출'로 설정한 정부는 다가올 2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노사정위원회 역시 2월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중소기업 고용개선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청년실신', '모라토리엄족', '둥지족'이라는 청년실업시대를 풍자하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청년층 실업률은 지난 2005년 38만7000명으로 정점을 보이다 2008년 31만5000명으로 개선되는 추이를 보였지만 지난해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실업자(88만9000명) 가운데 청년층이 39%(34만7000명)를 차지했다. 최근 고졸이하 실업자가 청년실업의 56%로 나타나(서울신문. 1. 7), 고졸실업 대책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체 추세로 보았을 때 대졸 이상 청년층 실업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이다.
청년실업의 핵심은 '고학력 실업자'
요컨대, 청년실업문제 극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점차 그 숫자가 느는 '고학력 실업자'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온 뜨거운 교육열은 대학진학률 84%(전문대 포함 2008년 기준)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지만, 정작 오늘날 노동 수요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의 원인으로 오래전부터 '고용 없는 성장'과 '재벌위주의 경제성장'이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제조업 분야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전체고용의 87.5%(2008년 기준)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재벌편향적인 경제정책으로 소외되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 위에 그 동안 정부는 신성장 동력 개발, 중소기업 육성정책 및 고용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들을 강구해왔다. 이 같은 정책들이 좀 더 장기적이고 경제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라면 청년인턴, 직업교육, 일자리 나누기 정책들은 단기적이면서도 가시적인 효과를 노린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교육 및 의료 산업 육성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지원책 등을 적극 추진함에도 왜 고학력 실업자가 계속 증가할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의 원인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바로 현 정부 노동 공급 정책이다.
성장 중심적인 이명박 정부의 노동 공급정책지난 12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한 번 입학하면 졸업하는데 아무 문제없다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대 나온 학생들, 특히 지방대 나와서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내년 상반기 경제가 회복되면 바로 현장에서 기술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모순된 현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업 자격이 여의치 않으면 졸업이 여의치 않게 대학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청년 실업문제를 단순히 높은 대학진학률과 대학교육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기반사회로 경제구조가 탈바꿈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국민들에게 높은 수준의 양질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높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선점한 것이다. 또, 고령화 시대로 인해 평균수명과 노동시간 연장이 예상되는 만큼 대학교육은 점차 필수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오히려 경제구조가 지식기반구조로 변화해 가고 있음에도, 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이 낮고 제조업이나 단순 기술직에만 진출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으로 높은 대학진학률을 탓할 것이 아니라 중등교육을 통해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자기 적성과 소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국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물론 대학교육 역시 문제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행 교육과정으로 아이들이 자기 진로와 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대학교육에서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경험 및 전과나 복수전공을 통해 이를 보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뒤늦게 대학에서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겨 복수전공을 하고 싶더라도, 관련 학과가 없거나 이미 복수전공을 신청할 수 있는 학년이 지나가 버린 게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대학원에 진학하기에는 등록금이 부담이 된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많은 수의 학생들이 대학졸업 후 안정적이고 전공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공무원시험으로 몰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대졸실업자들을 위해 기술교육을 하고 취업 자격이 안 되면 졸업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자기 적성에 맞지도 않고 전공분야도 아닌 새로운 기술을 배워 졸업 후 취직한다 한들, 그 분야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교육까지 이수하고 자신만의 전문성도 갖추지 못한 채 일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기술교육이나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을 강조하는 현 정부 정책은 임기 내 실업률이나 경제성장률과 같은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성장 지상주의적 생각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 하에서 추진되는 마이스터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마이스터고를 유망 분야의 특화된 산업수요와 연계하여 청년 명장(Young Meister)를 양성, "졸업 후 4년간 직장에서 일하면 대학 4년을 다닌 것보다 사회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하였지만, 현재와 같은 입시위주 교육체제하에서 아이들이 자기 자질과 적성을 확인하고 마이스터고에 진학했을지 의문이다. 특정산업기술에 특화된 인재 육성·공급이라는 도구적인 목적 하에, 아이들의 미래를 성급하게 결정짓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봐야 한다. 고교 졸업 후 관련 산업에 바로 취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성이 맞지 않는다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배워왔던 특화된 전문적 지식이 새로운 분야로의 이직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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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형 맞춤형 인재'가 아니라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해야
지식경제부가 2009년 11월 5일 발표한 '08년 말 기준 산업기술인력 수급동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적인 기술인력 부족은 작년에 비해 감소했으나, 전자산업 분야의 기술인력 구인난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에서 차지하는 기술 인력의 비중이 감소하고, 중소기업의 기술인력 부족률이 대기업의 두 배가 넘어 기업 간 인력 불균형이 심각한 차이를 보였다. 이에 정부는, 80만 건의 청년 구직자 정보와 우수 중소기업의 상세정보 6만개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능력을 갖춘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조선과 철강 산업이 축소되고 전자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각되는 것처럼 세계경제의 변동 속에서 한국 경제구조 역시 시시각각 변한다.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강국이었던 미국이 경제위기로 인해, 자동차 산업이 크게 위축된 것처럼 오늘날 경제의 불확실성은 점차 증가한다. 학문적 영역 역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도태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특정 산업 분야나 직업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인재가 아니다. 단순 맞춤형 인재가 아니라 유동적인 환경의 불확실성에 맞서 자기 전문성을 창조적으로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재는 결코 지금과 같은 입시위주나 취업을 위한 교육, 그리고 닫혀 있는 학문적 경계 속에서 배출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지 취업을 위한 인재양성이 아니라,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여 전문성을 창의적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인재를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적기·적성 개발을 위한 수월성 교육이 초·중등교육에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마이스터고의 취지나 전문성 발현을 위한 대학교육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최소가 아닌 적극적인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다수의 일자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아니라 안정성과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국가기관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5~29세 청년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국가기관 28.6%, 공기업 17.6%, 대기업 17.1%로 나타났다(한국경제TV, 2009. 11. 27).
단순히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안전성'을 확보하고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직업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정신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한 때는 냉대 받던 청소부 자리가 안정적이고 평균이상 소득이 보장된다는 이유만으로 재평가받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얼마나 직업이 안정적이고 소득이 보장되는가가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평균적인 직업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원인은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구조 및 복지시스템과 연관시켜 살펴 볼 수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GDP 대비 한국의 공적사회복지 지출비는 OECD 평균 20%에도 못 미치는 5%대에 불과했다. 또 최근에는 경쟁과 자율에 바탕을 둔 시장원리가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교육 제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고 지나치게 경쟁원리만 강조되다 보니, 학생들이 고학력·고스펙 취득을 통해 높은 소득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정작 일자리 창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반면, 20%에도 못 미치는 국가기관과 대기업에 구직인력이 몰리면서, 중소기업은 점점 더 도태하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불공정한 대-중기간의 하청관계를 개선하고 중소기업을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안정성과 소득과 같은 기준으로 직업적 가치가 결정되는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체제 속에서는 중소기업 일자리의 경쟁력은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지백년대계 한국의 경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되는 노동자의 자질이란 단순히 높은 기술력과 방대한 지식량이 아니라, 자동화된 기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고부가가치 지식을 창출해 내는 능력이다. 더불어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은 노동시간의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즉, 실업이란 노동시간의 연장과 세계경제의 변동과 불확실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게 될 상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동공급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단순히 전자산업이나 신재생에너지 같은 신성장 동력이 유망하다고 해서 관련 산업에 특화된 인재만을 양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반영한 전문성을 갖추되 이것을 창조적으로 새로운 방향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국민학력을 자랑하지만 대학과 취업을 위한 공부만 해온 탓에, 경제구조가 조금이라도 변화하면 적응하지 못하고 제한된 전문성의 제약으로 한정된 영역에서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쓸 만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인정하는 쓸 만한 일자리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유치원 때부터 치열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몸으로 체험해온 우리의 아이들은 그 쓸 만한 직장을 얻기 위해 고학력·고스펙 취득을 위해 경주하고 있다. 취업에 유리한 명문대에 진학하고,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아서 졸업한다. 실업자는 곧 패배자라는 인식이 사회곳곳에 팽배하다.
지난 60년간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이 높은 수준의 교육열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교육열은 우리사회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정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이다. 실업자나 비정규직에 대한 냉정한 시장원리를 어렸을 때부터 몸소 체험하다보니 신분상승을 위한 명문대 진학이나 안정성이 보장되는 국가기관 그리고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대기업 취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청년 실업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사회·경제·교육의 문제점들이 결합된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이것을 시장원리 또는 취업을 위한 맞춤형 인재육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백년대계를 사회의 각 분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