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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포스터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포스터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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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MBC의 새 수목드라마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밤 10시 방송)가 첫 전파를 탔다. 삼십대 중반에 접어드는, 서른 네 살 세 여자의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6년 전 서른 두 살 여자들의 이야기 <결혼하고 싶은 여자>보다 주인공들의 나이가 두 살 더 올라갔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배우들의 실제 나이를 검색해 보니 서른인 왕빛나(김부기 역)를 제외하고 박진희(이신영 역)와 엄지원(정다정 역)은 극중 인물 나이와 거의 일치한다.

또 하나의 '골드 미스' 드라마

일단 두 번의 방송분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참 재밌다는 것이다.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노처녀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코믹하게 잘 그려냈다. 여기에는 역할에 잘 맞는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한몫했다.

<돌아와요 순애씨>에서  40대 아주머니와 영혼이 뒤바뀐 20대 아가씨를 능청스럽게 연기해 냈던 박진희는 삼십대 중반의 노처녀 이신영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연기해 낸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엄지원도 기존의 이미지와 다르게 도도하지만 엉성한 면도 있는 귀여운 정다정 역에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 여성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김부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일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고, 남자들의 심리도 잘 알고 있으며, 남녀 관계에서도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쿨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영상매체에서만 접했던 '이런 분'이 정말 계시다면 비법을 전수받고 싶으니 꼭 연락주시기를 바란다.

이 드라마는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고,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롭고 신선한 작품으로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과 사랑을 모두 추구하는 노처녀를 다룬 기존 드라마들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감과 진부함,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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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에도 그 나이대의 노처녀라면 가슴 절절히 공감할 만한 대사나 상황을 적절하게 잘 배치돼 있다. 청첩장을 보낸 옛 애인에게 분노해 청첩장을 찢으면서 "복수하고 말 거야!"라고 외치다가도 "근데, 방법이 없네"라며 좌절하는 신영의 모습이나,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다른 건 다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신이 도와줘야 해"라고 말하는 신영의 대사는 노처녀라면 무릎을 치며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삼십대 중반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명예퇴직 압박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꿋꿋하게 버텨 나가는 모습도, 근사한 클럽이나 바에서가 아니라 내 집, 내 방에서 대충 안주를 사다놓고 혼자서 술 마시는 풍경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1회와 2회에서 노처녀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상황과 설정들을 쏟아낸 드라마는 다음 회 부터는 노처녀를 주인공으로 했던 과거 많은 드라마들과 같은 길을 갈 것이 뻔히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와 관련된 뉴스를 검색해보니 가십성 기사 몇 개를 제외하고는 드라마를 차분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사는 찾지 못했다.

첫째로 주인공들의 직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신영은 방송 기자이고, 정다정은 한영 동시통역사이며, 김부기는 레스토랑 컨설턴트다. 이들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요즘 말로 '골드 미스'다. 드라마는 이들이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근사한 식당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드라마를 보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노처녀는 모두 '골드 미스여야만'할 것 같다. 실버나 브론즈 따위는 감히 노처녀 대열에 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브론즈 미스가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담으면 유쾌한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성 짙은 현실 고발 드라마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식상한 소재서 신선한 재미 끌어낼 수 있을까?

드라마 속 노처녀에게는 항상 이렇게 멋진 애인이 나타난다. 이게 드라마를 동화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아닐까?
 드라마 속 노처녀에게는 항상 이렇게 멋진 애인이 나타난다. 이게 드라마를 동화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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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드라마를 보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은 남자 문제다. 노처녀가 주인공인 드라마 중에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홀로 외롭게 있는 여주인공은 본 적이 없다. 항상 잘 생기고, 능력 있으며, 매너도 좋은 멋진 애인을 만들고 끝난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상대역들도 마찬가지의 공식을 따른다. 비행기 기장인 윤상우(이필모)와 한의사인 나반석(최철호)이 주인공들의 연애 상대로 대기하고 있다. 이들은 탄탄한 직장을 갖추었고, 잘생긴 외모에 준수한 몸매도 겸비하고 있다. 노처녀가 이런 남자들과 커플이 되는 드라마만 보다 보면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곧 잘생기고 직업도 좋은 나의 배우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이라는 착각이 들 지경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은 하민재(김범)와 같은 연하남이다. 90년대 초만 해도 드물었던 연상연하 커플이 언제부터인가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드라마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직업이 탄탄하거나 집안이 부자인 연하남은 멋진 외모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심성도 갖추었다.

드라마 속 노처녀는 연애 한 번 못했다고 투덜거리며 등장하지만, 곧 멋진 연하남을 만난다. 이제 노처녀는 '그냥 멋진 남자' 정도로는 안 되고 더 업그레이드된 완벽한 연하남이 나타나야만 마음을 열어야 하는가 보다.

아직 초반이라 신선한 내용으로 전개될지, 익숙한 패턴을 가지고도 새롭게 만들어질지, 아니면 기존의 드라마를 재생산하는데 그칠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게다가 같은 시간 대에 방송되고 있는 경쟁작 <추노>가 탄탄한 스토리에 우수한 영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이 드라마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미 다양한 장르로 수십 번은 반복되었을 이야기지만, 그것을 어떻게, 새롭게, 공감이 가도록 풀어갈지 드라마의 앞날이 주목된다.


태그:#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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