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여수 교동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할머니의 갈라지고 튼 손입니다.
 최근 여수 교동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할머니의 갈라지고 튼 손입니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아들 며느리가 자기들 편하자고 날 못 쫒아내서 안달이여, 늙은 세상은 세상도 아니여~."

할머니 한 분이 아파트 현관에 웅크리고 계십니다. "늙은 세상은 세상도 아니여~" 혼잣말처럼 이렇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따금씩 오래 산 자신을 탓하며 눈물짓곤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힘이 드셨는지 아예 아파트 현관 바닥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깔고 앉으셨습니다.

"왜 들어가시지 않고요?"
"번호를 몰라. 아들놈이 안 가르쳐줘"
"관리실에 연락해볼까요?"
"그냥 냅둬, 부러 안 가르쳐 줘. 날 힘들게 해서 내 쫒으려고."
"원, 세상에~ 어느 자식이 그런답디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렇듯 말은 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습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그것도 많이.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이곳에 사는 누군가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은 예삿일이라면서요. 오히려 걱정하는 나그네를 보고 아무 일도 아니라면서 추운데 어서 빨리 가라고 채근합니다.

사실은 최근에 할머니의 아들이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현관은 집에서 집주인이 열어주거나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내쫒으려고 일부러 현관 비밀번호도 안 가르쳐줬다는 겁니다. 세상에 어느 자식이 그럴 리가 있답니까? 반문은 했지만 할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아버님과 요양원에 계신 장모님 생각만 하면 저 또한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서로를 의지하고 오순도순 함께 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세상, 한파가 언제나 끝나려는지, 따스하고 화창한 봄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걱정입니다. 다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아도 살림살이가 팍팍하기만 하고 갈수록 나아질 기미는 없다고들 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먹는 것, 입는 것, 거기에다 목을 옥죄는 교육비까지 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불면의 밤이 지속됩니다. 몸은 천근만근 물에 빠진 솜뭉치인데 눈은 또록또록 공허하게 천장의 무늬만 헤아리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헤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들이 분주하게 오갑니다. 


#할머니#효도#아파트#한파#살림살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