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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노무현 참여정부 초기인 2004년 8월 14일에 작성된 <조선일보> 사설 한 편을 읽어 보시죠. '시민단체가 판사들까지 흔들고 있는 나라'란 제목을 단 사설인데, 어제오늘 쓰여졌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입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판사들의 고충 토로가 예사롭지 않다. 많은 판사들이 시민단체들의 압력에 심리적 동요를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재판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털어놓고 있다. "시민단체의 잘못을 지적하려 해도 수구·보수·반개혁으로 매도당할까봐 할 말도 못한다"거나 "시민단체가 제 입맛대로 법원을 점령지로 삼고 접수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요즘 사회분위기는 군부 독재시절의 총칼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는 판사들의 토로는 우리 사법부가 처한 위기 상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 규정이다. 법률의 해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돼 가는 것이지만, 특정 세력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시대적 흐름인 듯 포장해 여론의 이름으로 사법부에 강요하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는 설 땅을 잃게 된다. 사법부의 기본적 사명이 정치적 다수 의사로부터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집권세력 또는 이와 연계된 세력들이 특정 이념을 시대 정신인 양 사법부에 들이밀게 될 때 재판은 정치 과정으로 변질되고 소수 권리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시민단체들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꼬리표를 판사들에게 붙이면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은 재판정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있는 행위이다.

지금의 시민단체들이 구성원의 성격과 규모에 걸맞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 대해 그 과잉 대표성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상당수가 특정 이념과 권력 지향의 성격을 갖고 있는 데다, 그 구성원들의 일부가 시민단체를 정치 입문의 관문처럼 이용하고 있어 시민단체의 생명인 시민적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도 커져 가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시민단체들이 내세우는 사법개혁에 대해 판사들이 올바른 재판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이념과 세대를 기준으로 사법부의 인적 물갈이를 시도하자는 것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법관은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말, 나아가 "특정 세력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시대적 흐름인 듯 포장해 여론의 이름으로 사법부에 강요하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는 설 땅을 잃게 된다"느니 "집권세력 또는 이와 연계된 세력들이 특정 이념을 시대 정신인 양 사법부에 들이밀게 될 때 재판은 정치 과정으로 변질되고 소수 권리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느니 하는 말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죠?

덧붙여, 2009년 6월 22일에 작성된 <법관 노릇 하기 어려운 나라>란 사설도 마저 읽어 보세요. 조중동에 대한 광고중단 압력에 유죄를 선고했다 하여 네티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된 서울중앙지법 이림 판사를 따스하게 감싼 사설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이림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린 '판사도 때론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법관 노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가 실감이 난다. 이 판사는 지난해 조선·동아·중앙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들에 광고를 중단하도록 협박한 사건의 1심 재판장을 맡았었다. 이 판사는 "선고 직전까지 절차 진행이 공정했다면서 '양심법관을 지켜내자'는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지난 2월 19일 피고인 24명 전원한테 유죄를 선고한 판결 후 인터넷에 '조중동의 앵무새 판사에게 한마디'라는 코너까지 개설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댔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을 한다는 이 사람들은 이 판사에게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인용한 자동판매기 판결', '권력의 시녀의 길을 택한 사이비 판사',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중을 배신했다'는 폭언을 쏟아부었다. 이 판사는 "처음 얼마 동안은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최근까지 계속 인터넷에 욕설을 올리는 걸 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까지 회의가 들 정도"라고 했다...(중략)...

판결 이후 쏟아진 비난과 개인 인신공격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법관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른바 '언론소비자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귀에 이 판사의 이런 이야기가 들어올 리가 없다. 그들은 자릿세를 내놓으라고, 또는 길을 비키라고 아무한테나 주먹질을 해대는 조직폭력배나 다름없는 행동을 해왔다...대한민국은 판사 하기도 힘든 나라, 기업 하기도 힘든 나라가 돼버렸다."


판결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누구처럼 판사의 집 앞에까지 쫓아가 불법시위를 벌인다거나 관용차에 계란을 투척한다거나 하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단지 인터넷에 욕설을 퍼부은 것만으로도 "인간 본성에 회의가 들 정도" "조직폭력배나 다름없는 행동" "판사 하기도 힘든 나라" 운운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조선일보 목소리가 여간 섹시하지 않지요?

이랬던 <조선일보>가 최근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잇따라 내린 판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잠시 감상해 보시죠. 자료가 너무 많아서 지난 15일부터 22일까지 조선일보 지면에 올라온 기사 제목만 소개합니다.

이걸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절감하시게 될 겁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의 나라에서 어느새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정답으로 내놓은 한 목소리만 존재하는 동토의 나라로 전락 내지는 퇴화하고 말았다는 사실 또한.

1. '국회폭력'으로 기소된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게 무죄 판결 이후 ;

1월 15일자 8면 기사
 1월 15일자 8면 기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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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강기갑 의원, 황당한 무죄 판결>(2010.01.15, A8 / 이동연 판사 얼굴 공개)
<'국회 폭력' 다른 의원·보좌관들에겐 벌금형 등 책임 물어>(01.15, A8)
<'강기갑 무죄' 법조계 내부서도 비판>(01.16, A1,3)
<안상수 "판사따라 판결 180도 바뀌면 누가 신뢰하겠나">(01.16, A1,3)
<법조계 "판결에 이념·주관 개입...대 판례 무시도">(01.16, A3)
<'튀는 판결의 핵' 남부지법 / 평판사 60명 중 '우리법연구회' 멤버 11명>(01.16, A3)
<법정에서 '공중부양'하면 그것도 무죄라 할 건가>(01.16, 사설)
<'무죄받은 국회폭력'...民心은 부글부글, 대법원은 뒷짐>(01.18, A4)
<'공중부양 무죄'...법조계 비판 잇따라>(01.18, A4)
<요즘 한국법원, 40년 전 일과 닮았는데...>(01.18, A4)
<국민 신뢰 허물어 사법부 독립 위협하는 사법부>(01.18, 사설)
<"이 대법원장, 침묵해선 안 된다">(01.19, A4)
<"강기갑 무죄 판결은 '좌파 정권 10년'의 산물">(01.19, A4)
<법조 안팎 "재판권 남용이 문제">(01.19, A4)
<'강기갑 무죄 판결' 법사위서 따진다>(01.19, A4)
<변헙 "강기갑 무죄 판결 수긍하기 어렵다">(01.20, A1)
<"법관은 외부뿐 아니라 자기로부터도 독립돼야">(01.20, 사설)

2. 시국 선언문 발표 주도한 전교조 간부 4명에게 무죄 판결 이후 ;

1월 20일자 3면 기사
 1월 20일자 3면 기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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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시국선언 1심 무죄>(01.20, A1 헤드라인)
<검찰·교과부 "교육의 정치중립 정면으로 깨뜨린 판결">(01.20, A3)
<작년 전교조 시국선언의 전말>(2010.01.20, A3)
<"전교조 정치화 가속...교육 무너질 것/앞으로도 계속 정치행동 하란 말인가">(01.20, A3)
<법원, 전교조 정치활동에 門 활짝 열어주다>(01.21, 사설)


3. 광우병 위험 보도한 MBC PD수첩에게 무죄 선고 이후 ;

1월 21일자 1면톱
 1월 21일자 1면톱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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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PD수첩 광우병 보도 허위 아니다">(01.21, A1 헤드라인)
<"法상식 벗어난, 판사 한 사람의 편향적 판결">(01.21, A1)
<"핵심 5가지 허위보도" 고법 판결, 지법이 180도 뒤집었다 : 쟁점 1~5>(01.21, A3~4)
<문성관 판사는 / 작년 '국보법 위반' 이천재씨에도 "무죄">(2010.01.21, A4 / 얼굴 공개)
<정지민씨 "왜곡의 고의성 놓고 다퉜는데..."왜곡 자체가 없다니 황당">(01.21, A5)
<제작진 "정치 검사 거짓말 드러난 판결">(01.21, A5)
<정운천 "상급심 가면 진실 밝혀줄 것">(01.21, A5)
<민동석 "편향 판사 탄핵소추 청원운동">(01.21, A5)
<똑같은 사안 놓고 판사따라 '어제는 무죄, 오늘은 유죄'>(01.21, A6)
<검찰총장 "국가 명운 달린 사건에서 이런 판결이...">(01.21, A6)
<언론·시민단체 "오늘은 공영방송 사망 선고일">(01.21, A6)
<광우병대책회의 "언론자유 보장한 상식적 판결">(01.21, A6)
<文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 있었나>(01.21, 사설)
<재판부 "美언론도 빈슨 死因을 인간광우병으로 의심"...진실은?>(01.22, A4)
<'범행 의도' 담긴 작가 이메일 / 재판부, 판결때 언급조차 안해>(01.22, A4)
<정지민 "판사가 예시한 내용, 내 주장과 무관">(01.22, A4)


4. MB식 '사법부 개혁' 선동하는 기사들 ;

1월 20일자 4면 기사
 1월 20일자 4면 기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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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우 변협회장 "일부 판사 판결 국민 상식 무시">(01.20, A4)
<輿 "우리법연구회 해체시킬 것">(01.20, A4)
<극소수 인터넷글이 '법원 의견'처럼 포장돼>(01.20, A4)
<李대법원장 "자꾸 언론 보도돼 미안">(01.20, A4)
<변호사 대신 '부적'이 필요한 시대>(01.21, 태평로 칼럼)
<경력 10년 넘어야 형사단독 판사 맡긴다>(01.22, A1 헤드라인)
<경력 6년차부터 '나 홀로 재판'...형사1심 92% 처리했다>(01.22, A3)
<"비판받으면 늘 '사법부 독립'만.../ 책임보다 권한만을 주장하는 집단 이기주의">(01.22, A3)
<'상식 밖' 판결 향한 항의도 '상식적'으로 해야>(01.22, 사설)

어떻습니까? 등골이 오싹하지 않습니까? <조선일보>에게 찍히거나 <조선일보> 눈밖에 나면 이렇게 무참히 당합니다.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말이에요. '법치'(法治)가 아니라 '언치'(言治)가 난무하는 이 땅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조선일보>가 '예' 하면 싫든 좋든 무조건 '예' 하고 복창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사실, 이제 아시겠지요?


태그:#조선일보의 사법테러 , #조선일보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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