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판중심주의 재판에서 무죄 선고율이 높게 나왔다면, 검찰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무리하게 기소를 했거나, 검찰이 법정에서 죄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검찰은 자신들 무능에 대한 부끄러움도 모르고, 왜 이용훈 대법원장을 탓하나."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 이후 무죄 선고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검찰의 통계자료가 언론에 인용 보도된 직후 였다.
박 팀장은 왜 불편한 어투로 검찰을 비판했을까. 답은 검찰이 발표한 통계 수치의 배경 때문이다.
대검찰청은 24일, 지난 2000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한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1심 재판부의 연평균 무죄 선고율은 0.15%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무죄 선고율이 연평균 0.27%로 약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 기간 동안 무죄 선고를 받은 피고인 숫자도 총 1만 6403명으로, 2000년부터 2004년까지의 8142명에 비애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연도별로 무죄율을 보면 2005년 0.18%, 2006년 0.21%, 2007년 0.26%, 2008년 0.30%, 2009년 0.37%로 꾸준히 상승했다. 무죄율이 상승한 건 검찰 조서 중심으로 이뤄지던 재판이 공판중심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검찰 발표 자료, '검찰 자폭용' 자료"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해왔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 2006년 대전지법 순시에서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밀실에서 비공개로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며 "법원이 재판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고 말했었다. 당시 검찰은 이 발언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검찰이 이날 위와 같은 통계 수치 발표한 건,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PD수첩> 등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사건의 내용과 상관없이 무죄율 증가 수치를 보여주면서 '이용훈 체제 사법부'를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우선, 전문가들은 "검찰이 발표한 자료는 안타깝게도 '검찰 자폭용' 자료"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원에서 무죄 선고율이 높게 나왔다는 것 자체가 검찰의 무능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박근용 팀장은 "공판중심주의가 시작된 이후 무죄 선고율이 늘어났다면 검찰이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거나, 무리하게 기소를 했다는 증거"라며 "결국 문제가 되는 건 검찰의 무능인데, 왜 개별 재판과 상관없는 이용훈 대법원장을 문제삼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박 팀장은 "검찰 조서만을 일방적으로 믿지 않고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공판중심주의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다"며 "검찰은 지금 이용훈 대법원장을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가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의자 인권 측면에서도 공판중심주의 더 강화돼야"법학자들 역시 검찰의 이번 발표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검찰의 조서 중심 재판에서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주의로 가는 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공판중심주의에서 무죄가 높게 나오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법원이 검찰을 견제하면서 3권 분립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 교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사건이 무죄가 나오면 당연하고, 다른 사람 사건이 무죄가 나오면 나쁘게 생각하는 등 검찰의 기소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피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봤을 때도 공판중심주의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역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도 높아졌는데, 그럼 이것도 나쁘게 봐야 하는 것이냐"며 "결국은 개별 사건의 내용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수치상으로 무죄율이 높아졌다고 대법원장을 공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공판중심주의 재판은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된 것이고, 모든 사람은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은 "객관적 수치라 하더라도 각자 처지에 따라 그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같다"며 "검찰청의 통계 자료에 대해 따로 논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