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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광양 노동자라면 모두 아는 사실을 정부가 공식으로 인정했다."

 

지난 22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2006~2009년 여수·광양 산업단지의 대규모 정비작업에 참여한 노동자 4만4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발암성 물질 작업환경 평가 및 직업성 암 위험도 평가 결과를 접한 여수·광양 지역 노동계의 한 마디다.

 

안전보건 책임 방기한 발주처

 

여수·광양 역학조사 주요 결과

① 발암물질인 벤젠과 1,3-부타디엔, 염화비닐(VCM) 등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백혈병 같은 혈액암을 유발하는 벤젠은 1일 작업시간 평균 노출수준에서 노동부 기준(1ppm) 초과하는 시료가 전체 시료의 7.6%였으며 최대값은 기준의 137배가 넘었다. 전체 시료 중 1,3-부타디엔 8.1%, 염화비닐 5.9%가 노출기준을 초과했다. 최대 농도는 1,3-부타디엔 67ppm(노출기준 22배) 염화비닐 1.9ppm(노출기준의 1.9배)이었다.

 

② 특히 정비 작업 기간 중의 단시간 측정 농도는 벤젠이 전체 시료의 12%가 노동부 기준(5ppm)을 초과했다. 최대 농도는 기준값을 450배 이상 초과한 2289ppm으로 나타났다.

 

③ 건강영향 평가 결과, 플랜트 건설노동자는 일반인구집단의 표준 암 발생 수준과 비교할 때, 작업환경과 직접 연관이 있는 혈액암(백혈병·림프조혈계), 구강·인두암 등에서 발생자 수가 많았다. 특히 구강·인두암은 표준화 발생비가 일반인구집단의 3.18배, 표준화사망비가 4.21로 유의하게 높았다.

 

암 표준화비란 일반 국민의 발생률이나 사망률을 1로 놓고 비교한 값으로 표준화비가 1보가 크면 일반 국민보다 위험 수준이 높다는 의미다.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 여수지역건설노조, 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는 26일 '여수·광양 역학조사 결과 발표 관련 노동계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 역학조사 결과를 평가했다. 세 단체는 석유화학사업장의 대규모 정비작업 작업(대정비)을 담당해온 플랜트 건설노동자들이 고농도의 발암물질에 노출된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면서 "발암물질 노출 후 긴 잠복기를 거쳐 암이 발생하는 만큼 암 발생 위험은 향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역학조사 결과 나타난 모든 문제의 일차 책임은 석유화학업체에 있음"을 밝히면서 노동자 안전보건 책임을 시공사에 떠넘겼던 발주처를 비판했다. 이어 노동부의 '발주처가 정비작업 보건관리계획을 수립하라'는 조치는 늦었지만 환영한다면서 플랜트 현장의 안전한 작업환경과 노동자 건강 확보에 필요한 5가지 후속사업 추진을 요구했다. 

 

 

직업성 암 예방, 알권리 확보로 가능해

 

먼저, 상세한 역학조사 정보 공개를 주문했다. 조사 결과 대정비 작업 기간 중 일부 발암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하고 벤젠의 단시간 측정 농도는 최고 기준값의 450배 이상 높았음을 확인한 만큼 노동자가 어떤 공정과 작업에서 발암물질과 유해물질에 노출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모든 장치와 설비에 발암물질이 존재한다는 '태그(tag)'를 부착하고 건설노동자 전체가 역학조사 결과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노동자 교육 실시를 주장했다. 노동자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에 노출되는지 알 권리가 있고 이런 알권리는 안전과 건강 확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발주처 책임 아래 대정비 기간도 작업환경측정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보통 석유화학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은 대정비 기간이 제외된다. 이 기간에 일하는 노동자가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음에도 피해왔던 것. 작업환경측정에 포함되더라도 하청노동자인 플랜트 건설노동자의 위험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노·사·정 참여하는 안전보건 상설 협의체 만들자

 

네 번째로 여수·광양 건설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비작업 안전보건 조치 마련을 요구했다. 노동부와 발주처(석유화학·제철사업), 전문건설업체, 노동조합이 '안전보건 상설 협의체(가칭)'를 만들어 정비작업에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논의하고 결정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전보건 상설 협의체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된 노동자 보호를 위한 건강검진 실시, 건강관리수첩 발부 등의 보건관리 방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안에서 건강검진 결과 나타날 수 있는 취업 제한 등의 부정적 요소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2002년부터 여수산단의 유해물질 사업과 인연을 맺어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 김신범 실장은 이번 역학조사 이후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조치로 플랜트 건설노동자의 '알 권리' 확보를 꼽았다. 김 실장은 "플랜트 건설노동자의 알 권리를 위해 석유화학 사업장의 모든 장치에 발암물질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태그를 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발암물질로 발생하는 직업성 암 감시체계를 만들어 플랜트 건설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김신범 실장은 "매년 건강검진에서 혈구검사를 하면 백혈병 같은 직업성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건강 이상이 나왔을 때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건강검진을 꺼려하는 노동자 고민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같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 여수지역건설노조, 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지부는 "이번 역학조사가 이전처럼 후속조치 없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노동자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강력한 투쟁도 전개할 것이라며 제안된 요구에 노동부의 성실한 답변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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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광양, #역학조사, #발암물질, #플랜트 건설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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