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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로 떨어진 26일 오후 3시 명동예술극장 앞. 간이 테이블과 파라솔, 플라스틱 의자 4개가 펼쳐졌다. 파라솔에는 '국민과의 대화'라는 손팻말이 붙었다. 겨울외투에 목도리를 두른 추미애(51)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찬바람이 들이치는 거리에서 그는 바람벽도 없이 2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다. 발 밑에 놓인 작은 전기난로만이 유일하게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노조법' 처리 당론 위배에 따른 윤리위 징계에 반발해 거리로 나선지 6일째. "견딜 만하시냐"고 묻자 "여러분들의 관심 덕분에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0분만 앉아 있어도 손발이 떨리는 겨울 추위 속에 '누가 관심이나 가져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1시간 가까이 인터뷰하는 동안 지지자들과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한 사업가는 열렬한 지지자를 자청했다. "고생하신다"며 악수를 청하고 총총히 돌아가는 중년의 남성도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추 위원장의 '농성(?)' 장면을 찍는 여고생들도 있었다. "민주당에 실망하고 있다"던 다른 중년 남성은 "그래도 이번에 추 위원장이 하신 일(노조법 통과)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당론 위배로 징계? 노조법 당론 있다면 지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왜 거리에서 농성하나, 국민들 보기에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나는 농성하러 나온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농성'이 아니라 '대화'하러 나섰다는 얘기다. 이 말 속에는 "도대체 민주당 지도부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항변이 들어 있다. "흰 것을 검다 하고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는 소신도 덧붙였다. 

 

당의 징계 방침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뭘 갖고 징계한다는 것이냐"는 성토가 이어졌다. 징계 논란의 핵심 사건 두 가지를 물어봤다. "왜 당론을 위배했으며, 왜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봉쇄하면서까지 노조법을 강행처리했느냐"고 묻자 추 위원장은 "노조법과 관련해 민주당의 당론이 뭔지 지금도 궁금하다, 회의장을 봉쇄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추 위원장은 "노조법을 처리해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민주당의 당론을 요청했는데도 누구도 당론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심지어 당 대표, 정책위의장도 당론이 뭔지 모른다"고 반박했다. 회의장 봉쇄에 대해서도 그는 "야당의원들에게 분명히 자리에 앉으라고 수차례 말했고, 문은 열려 있었다"며 "(야당의원들이) 상임위 회의장 문의 자동잠금 기능 때문에 문이 잠겼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위원장으로서 문을 잠그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정세균 대표에게로 돌렸다. 한마디로 "무책임함의 극치"라는 것이다. 그는 "당론을 듣기 위해 수차례나 통화했지만 '최고위에서 논의한 뒤 알려주겠다'고 해놓고 아무런 답이 없었다"며 "그렇게 해놓고, 있지도 않은 당론을 위배했다고 징계할 수 있느냐"고 맹비난했다.    

 

그는 지난 20일 시작한 '국민과의 대화'를 기약없이 계속할 생각이다. 당이 징계안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추미애의 '외로운 거리투쟁'은 겨울 내내 이어질 수도 있다.

 

다음은 추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지 6일째다. 날씨도 추운데 견딜 만한가. 

"여러분들의 관심 덕분에 괜찮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 노동조합 하시는 분들, 근로자들도 많이 온다. 사업장별로 지지방문 하는 노조도 있다."

 

- 윤리위에서 당원자격 정지 1년을 결정해 당무위로 넘겼다. 최종 결정되지는 않았는데, 결론이 나면 받아들일 수 있겠나.

"당이 나를 징계하려면 먼저 유죄, 무죄부터 가려야 하지 않나? 그런 다음에 징계 수위가 결정되는 거다. 그런데 도대체 뭘 갖고 징계한다는 거냐. 있지도 않은 당론을 위배했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회의장 봉쇄를 했다고 한다. 죄가 없는데 무슨 징계를 한다는 거냐."

 

- 민주당 지도부는 추 위원장의 강행 처리가 당론 위배라고 못 박고 있는데.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유령 당론을 위배했다고 한다. 내가 당론을 받은 적도 없고, 노조법 처리 마지막 날까지 당론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정세균 대표에게 전화했더니 '최고위에서 논의해서 알려주겠다'고 해놓고 아무 답이 없었다. 당론 결정 게이트인 정책위의장에게도 물어봤다. 노조법과 관련해서 민주당은 당론이라는 게 없었다."

 

- 그런데 왜 민주당 지도부는 당론 위배라고 주장하는가.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당 윤리위에 소명자료를 내라고 해서 긴 자료를 갖다줬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았다. 윤리위에 가보니 내 소명자료에 대한 반론도 없었다. 윤리위원들도 그저 '왜 당론 위배했냐'고만 따지고 들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도대체 노조법 당론이 뭔지 보고 싶다."

 

- 야당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강행 처리했다는 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 아닌가.

"출입을 금지한 적도 없다. 노조법 처리하는 날 민주당 간사도 들어왔다 나갔다.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들어올 수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라고 수차례 말했다. 심지어 한나라당 의원이 나가서 팔을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왜 회의장을 봉쇄했다는 것인가. 상임위 회의장 문이 자동잠금 장치가 돼 있어서 문이 닫히면 저절로 잠기기 때문에 야당의원들이 그런 주장은 할 수 있지만, 내가 출입을 금지한 적은 없다."

 

"복수노조 허용과 창구단일화는 참여정부 로드맵, 민주당은 하지 말자는 거냐"

 

- 결과적으로 당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당내 입지 추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추미애 중재안'을 처리한 이유가 있나.

"추미애 중재안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당시 현행법(복수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이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돼 있었다. 그때 현행법이 뭐였나. 노·사·정 모두 한목소리로 그대로 시행되면 사회적 대혼란이 온다며 반발하던 법이었다. 그것 때문에 13년간이나 유예한 것 아니었나. DJ-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 유예한 것도 그것 때문 아닌가? 어떻게든 법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노조 허용과 창구단일화는 참여정부 로드맵이었다. 정세균 대표도 산자부 장관 시절 알고 있었고, 당시 원혜영 전 원내대표도 창구단일화를 들고 와서 의원들에게 이해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도 중재안을 처리했다고 징계한다는 것은 민주당의 자가당착 아닌가. 내가 '법이 그대로 시행되는데, 그럼 중재하지 말라는 거냐'고 항변할 때 당 지도부는 아무 말도 없었다." 

 

- 일각에서는 추 위원장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하는데.

"자기 정치하려는 사람이 이런 공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중재안을 처리하겠나? 노사 양측으로부터 공격당하면서. 성가시고 고단하고 외로운 일이었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 민주노총이 중재안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지금도 그런가?

"민주노총도 비판 받아야 한다. 중재안 통과로 노조도 이제 경쟁시대에 돌입하게 됐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반발은 결국 자기 기득권을 갖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왜 민주노총만 기득권을 인정해야 하나? 위헌 시비가 일 것이 뻔한데 민주노총 산별노조만 교섭권을 따로 주는 게 말이 되나? 민주노총도 전체가 다 반대하는 게 아니다. 전교조 간부들이 얼마 전 다녀갔다. 전교조는 복수노조를 가장 먼저 시범적으로 해온 곳이다. 전교조 간부들은 입을 모아서 추미애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하고 있다."

 

- 언제까지 '국민과의 대화'를 할 생각인가.

"기약이 없다. 나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웃음)."

 

- 당이 징계안을 철회한다면 돌아가겠나.

"이 문제는 당 지도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정세균 대표의 결단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세균 대표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한마디로 무책임의 극치다. 정 대표가 뉴민주당플랜을 발표하고 생활정치 하겠다는데, 생활정치가 뭔가. 노조법 같은 것 아닌가. 민주당이 대안정당으로 인정받으려면 대안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과 불통하는 당이 안타깝다."

 

- 2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상임위도 열어야 할 텐데, 그때쯤에는 접어야 하지 않겠나.

"현안이 많다. 지금 철도노조 문제가 심각하지 않나.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려 하고 있지 않나. 이 문제 해결해야 한다. 타임오프제를 위한 근로시간면제위원회도 잘 뿌리 내리도록 국회가 노력해야 하는데, 여기 나와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태그:#추미애, #민주당, #정세균, #징계,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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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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