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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이 대중에게 말을 거는 까닭

 

 폴 크루그먼이 <기대감소의 시대>에서 주는 메시지는 "국민이 경제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정부를 믿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이다. 그래서 글의 대상은 철저히 일반대중이다.
폴 크루그먼이 <기대감소의 시대>에서 주는 메시지는 "국민이 경제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정부를 믿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이다. 그래서 글의 대상은 철저히 일반대중이다. ⓒ 황금사자

폴 크루그먼의 책은 너무 쉽게 읽혀서 경제학과 나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런 특징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크루그먼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전문적 내용을 담으면서도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는 얇은 경제서적을 써보지 않겠냐"는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은 것이 서술의 직접적인 동기이다. 경제에 흥미를 갖는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정리'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대중이 알아야 할 지식과 속지 말아야 할 지식, 경제정책의 기본적 생리, 지향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크루그먼에게 경제학을 쉽게 소개한다는 것은 일종의 전쟁처럼 절박한 과제다. 정부관료나 자본가 등 기득권 세력은 경제를 종교화시켜 대중에게 강요하는 방식을 취한다. 종교적 관념으로 포장해 대중을 현혹시키면 경제정책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개별적인 이권도 이 틈새에서 나온다. 폴 크루그먼이 보았을 때 이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 크루그먼의 용어를 사용하면 '경제적 복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때문에 그는 경제문제를 상식의 차원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대중들이 경제문제를 상식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폴 크루그먼이 <기대감소의 시대>(황금사자)에서 밝힌 명제는 아주 간단하다. 국가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국민 대다수의 생활수준을 결정짓는 요소는 생산성, 소득분배, 고용이다. 그는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나머지 경제문제는 저절로 풀리고 반대로 이 세 가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각종 경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플레이션 자체는 위 세가지 중요 요소가 아니지만 제조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기업경영자가 투자결정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며, 인플레이션 공포가 국민에게 공포감, 불안을 야기하여 저축 동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생산성, 고용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제라는 종교 걷어내기

 

"국가경쟁력은 미래의 생활수준과 아무 관련이 없다.. 슬프게도 국가경쟁력이란 말은, 이 낱말을 말하는사람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벌거벗은 임금님 옷과 같다."

 

국가가 국민을 현혹하는 데 쓰는 단골 메뉴가 바로 국가경쟁력이다. 무역적자 역시 악용되기 쉬운 소재이다. 크루먼에 따르면 사람들은 무역적자가 일자리를 없애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980년대 미국은 무역적자가 풍선처럼 부풀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겼다. 멀리 갈 것도 없이 IMF만 생각해 보자. IMF의 가혹한 요구를 맞추기 위해 우리는 인정사정 없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기업은 대규모 순수익을, 국가는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국민들이 무역적자는 나쁘고 무역흑자는 좋다는 이분법에 빠져 있으면 당국자들이 국민을 속이기가 더욱 쉬워진다.

 

사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을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국가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더라도 전혀 견제를 받지 않는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을 크루그먼은 우려한다. 그는 미국인들을 예로 들며 저조한 정책성과에 안주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58쪽) 지금 시대 전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으며 그래서 책 제목을 <기대 감소의 시대>로 뽑은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이 기대감소의 시대를 살아갈 때 아주 역설적인 상황들이 생긴다. 일례로 미국의 의료기술이 발달할수록 미국인의 전반적인 의료복지 수준은 오히려 떨어진다.

 

기대감소 시대의 빚은 국민과 그 자식들이 뒤집어 써

 

의료보험료가 어떻게 산정되고 누가 부담하는지를 안다면 회사 의료보험이라고 하더라도 남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없고 기대도 없기 때문에 최고 기술을 여러 번 남용하고, 그 비용은 본인 부담자들을 위협하고 의료보험 비가입자들을 양산한다.

 

이것은 경제정책을 몇몇 소수에게만 맡길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몇 년 전 의료보험제도 개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골자는 "많이 내고 적게 받는다"였는데, 기대감소 시대의 국민들은 결국 큰 이익이 무엇인지를 보기보다는 당장 내 지갑에서 사라지는 돈이 더 아쉽기 때문에 의료개혁 법안에 반대하고, 개혁을 추진하 정치인들을 외면한다. 마치 기업의 주주들이 한해 수익률을 근거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본질적인 경제 이슈에 중점을 두는 것은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지만, 기대감소 시대의 정부, 국회에서 논의되는 비율은 5%가 되지 않는다.

 

이러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정부는 국민 입에 단 이야기로 현혹시키고, 부담되는 부분은 말을 하지 않거나 추진을 하지 않게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국가에 치명적인 정책들을 남발하고 결국 그 빚은 미래의 세대들이 지게 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폴 크루그먼이 절박하게 신호를 보내야 하는 대상은 국가관료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고 바로 일반대중이다. 일반대중이 경제 흐름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 없이 정부에서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몇몇 대기업, 정치권력, 거대언론이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것이 바로 크루그먼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아닐까?


폴 크루그먼 기대감소의 시대

폴 크루그먼 지음, 윤태경 옮김, 황금사자(2009)


#기대감소의 시대#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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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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