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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책 표지 ⓒ 미래M&B

"2008년 2월말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합리적 관행을 뒤엎고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 장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급기야 4월에 들어서는 출연 연구기관 장들에게까지 사표를 강요했다....소문으로만 떠돌던 사표 제출 요구가 나에게 전해진 것은 4월22일이었다"

- 책 속에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이종태 교육학 박사가 쓴 자서전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 글쓴이 이종태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강요한 사표 제출에 공개 거부 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한겨레>, <오마이뉴스>, KBS와 MBC의 9시 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이종태 박사가 사표제출 요구를 공개 거부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사표제출 공개거부'는 점령군처럼 설치던 이명박 정부에 사실상 도전장을 낸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6월10일 돌연 사표를 제출한다. 취임한 지 불과 9개월 11일 만이었다. 그는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라고 쓰지 않고 '피치 못할 사유로 사직서를 제출합니다'라고 썼다. 너희들이 강제로 내라고 하니 더러워서 낸다는 항의 같은 의미였다. 결연한 의지를 꺾고 돌연 사표를 제출하게 된 '피치 못할 사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담담하게 밝힌다.

 

"기관 통폐합 방침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의 버티기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내 마음을 가장 약하게 만든 것은 직원들 눈빛이었다. 정부와 싸움을 공개 선언한 후 나를 대하는 직원들 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기관이 통폐합된다면 아마도 직원들은 나를 원망할 것이다. 원장이 고분고분했다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겠지......"

 

이명박 정부는 이종태 원장을 굴복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검토했다. 이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대한 예비 감사를 착수한 상태였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 박사에 대한 비리를 캐 손을 봐야 겠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도 모든 일이 정리되고 난 이후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게 됐다. 하지만 두려울 것은 없었다. 도무지 털어봐야 나올 만한 먼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원들 눈에서 읽히는 안타까움은 차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고 그는 술회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글쓴이 이종태는 경기고, 서울대 출신이다. 학력만 놓고 보자면 이 땅에서 선택받은 소수다. 평범하게만 살았다면 아마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 연속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고민한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것과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고민이다.

 

인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그는 이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 때마다 운명은 그에게 가시밭길을 가르쳐 주었다.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시대적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고 운동권이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도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었다. 또 더 험난한 정치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운명이 가르쳐 준 길이다.

 

그는 지난 198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천사태' 때 부평의 어느 변두리에서 유인물을 뿌리다 붙잡혀 무자비하게 구타와 고문을 당한 후 소요죄와 국가 보안법 위반죄로 구속 수감됐다. 당시 그는 서울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고 같은 대학 조교수였다.

 

감옥에서 9개월 만에 나와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닦아놓았던 토대들이 모두 무너져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무기정학을 당했고 당연히 조교수 자리도 없어졌다.

 

출감 한 후 우여곡절 끝에 그는 교육학자, 정책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정치 세계로 끌어 들인다. 2002년 3월, 그는 '한국교육연구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새천년 민주당 공천을 받아 안양시장에 출마하게 된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월급도 그리 박봉은 아니었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평탄한 삶이 보장돼 있었다. 난 학창시절을 빼 놓고는 대부분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이런 내가 안양시장이 된다면 그 자체로도 뉴스거리며 기존 주류 사회 멤버가 시장이 되는 것에 비해 안양지역사회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과정이나 추구하는 가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책속에서

 

선거 결과는 패배였다. 그것도 상당히 큰 표 차이로. 후유증은 컸다. 무엇보다도 선거과정 내내 헌신적으로 도와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고 그는 술회한다.

 

"지금도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것은 선거가 끝난 뒤 응당 신세를 진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어야 하는데 이를 너무 소홀히 했다. 이것이 많은 분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는가를 훨씬 뒤에야 깨달았다. 2002년 초여름 무명의 후보를 위해 땀과 시간과 돈을 쓰면서 애쓰셨던 모든 분들에게 이제라도 사죄하는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아홉 살 아들의 절명, 신이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이종태(전 청소년정책 연구원장)
이종태(전 청소년정책 연구원장) ⓒ 이종태

글쓴이 이종태의 인생은 시련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시련은 아홉 살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이다. 그는 아들이 떠난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라고 고백한다.

 

"91년 봄이었다. 어머니 생신이라 가족들이 모두 모인 날이었다. 아홉 살 아들 녀석이 그만... 뇌진탕 이었다.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궁핍해서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 감옥에 가는 것도 다 감내 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자, 다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며 견뎌 냈는데... 아이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했다. 하느님 뜻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신이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 책 속에서- 

 

글쓴이 이종태가 편안한 길을 버리고 지금까지 험난한 길만 걸어온 데는 그의 출신과 연관이 깊다. 그는 충남 천안 두메산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제2의 고향인 안양으로 온다.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막내만큼은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누나들 덕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경기고에 들어간 후부터 조금씩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같은 학급에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집안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아들도 있었다. 그 틈에 끼어 낮에는 최상류층 모습으로 살다가 저녁이면 박달동으로 돌아와 누나들과 복작거리는 좁은 방에서 웅크리고 잠을 잤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사회를 이해해 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모순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초적인 계급의식 비슷한 감정 이었다" -책 속에서-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사람 사는 세상>을 그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서민들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누구든지 자신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서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어, 그가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서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밝힌다. 부든 권력이든 가진 자가 더 많이 갖도록 하는 사회 구조, 무전유죄 유전무죄 같은 법 구조, 보통 사람들 소박한 꿈들이 힘 있는 자들 궤변에 짓밟히는 일 등.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 그는 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택을 했다. 충남 천안 두메산골 사람들, 안양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그런 세상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 그는 기꺼이 탄탄대로를 버렸다.

 

책 속에는 그가 걸어온 인생역정 말고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도저히 해답에 없다고 하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해답이 있다. 또 그를 키워준 제 2의 고향인 안양시 행정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애정 어린 충고가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이종태 지음/도서출판 미래 M&B/1만원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이종태 지음,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10)


#이종태#사람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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