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봐라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저렇게 된다똥지게 진다-'똥지게' 모두
시인 심호택(1947~2010, 원광대 불문학과 교수)이 지난 1월 30일 이 세상을 훌쩍 떠났다. 그날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다가 중앙선 침범이라는 아주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향년 63세.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시도 잘 쓰는 시인 심호택이 가다니. 어이가 없어 말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 가슴이 너무나 쓰리고 아프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는 글쓴이를 만나거나 전화를 걸 때마다 전주로 한번 꼬옥 놀러와 막걸리 한 잔 나누자고 했다. 지난 12월 중순에도 전주로 막걸리 기행을 갔을 때 집으로 꼬옥 놀러오라고 했다. 하지만 글쓴이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에게 찾아가지 못했다.
그때 그 전화가 마지막이었다. 그가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더라면 그때 만날 것을... 너무나 안타깝다. 게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지켜주지도 못했다. 그가 가는 마지막 길에 그가 쓴 '똥지게'란 시를 읽어줬어야 하는데, 그가 쓴 '이제는 없다'나 '회오리'란 시라도 읽어줬어야 하는데...
"때로 그리우나 이제는 없다" 잔인한 세월 통나무걸상이 있던 그 술집 드나들었다 곰팡내 풀꽃냄새 같은 것 다정하던 곳 울면서 나가는 너를 붙들지 않은 곳 때로 그리우나 이제는 없다-'이제는 없다' 모두
글쓴이가 시인 심호택을 만난 때는 1990년대 들머리께였다. 그는 그때 원광대 불문과 교수를 맡고 있었으나 문단에는 늦깎이였다. 1947년에 태어나 1991년에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니, 43세에 시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쓴 시들은 우물처럼 깊고, 묵은지처럼 폭삭 익었다.
오죽했으면 고은 시인이 그가 펴낸 첫 시집 <하늘 밥도둑>에 따른 발문을 쓰면서 "호택이 자네 첫 시집이 어찌 이다지도 서투른 데 없이 폭삭 익어버렸는가"라며 "첫 시집의 운명으로서는 여간 불운이 아닐세. 바로 이 점이"라며 칭찬과 우려를 함께 나타냈겠는가.
글쓴이 또한 심호택 시인 시를 참 좋아했다. 아니 그가 쓴 시만 좋아한 게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삶과 그가 내보내는 살가운 정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리 문단에 뛰어난 시를 남긴 아까운 시인 한 명 잃은 슬픔이 너무 크다. 하지만 이제 그는 '때로 / 그리우나 / 이제는 없다'.
"떠나갈 테면 떠나가라고" 하더니 왜 먼저 가시나요나는 외로운 회오리너는 서러운 문풍지사나운 눈보라로 몰아붙이면승냥이 소리로 너는 울었지바닷가 언덕배기 외딴집 한 채떠나갈 테면 떠나가라고훗날에야 물론 말할 수 있겠지뭐 그렇고 그런별것 아닌 돌개바람그뿐이었다고-'회오리' 모두심호택 시인을 잃은 그날 글쓴이는 심호택 시인 손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있었다. 글쓴이는 주인을 잃어버린 심호택 시인 손전화에 '부디 잘 가시오'란 문자를 남겼다. 이제 그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는 길은 그가 남긴 시를 읽는 일뿐이다. 심호택 시인이여! 부디 저 세상에 가서도 좋은 시 많이 쓰시길.
한편, 고 심호택 시인 유족으로는 부인과 딸 혜리(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아들 상욱(대학생)이 있다. 빈소는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이며, 발인은 수많은 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일 오전 10시에 치러졌다.
시인 심호택은 1947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시 8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늘밥도둑> <최대의 풍경>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