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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산에 들지 않고 있노라면 흙냄새, 숲 냄새, 졸졸, 콰르르 흐르는 깊은 계곡 물소리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가끔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들 너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멀고 가까운 산들을 올려다보곤 한다. 올 겨울엔 추위가 유난해서 겨울 내내 거의 동면 하듯이 산에 거의 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30일)은 남편이 모처럼 시간이 나서 함께 금정산에 올랐다.

 

간만에 화창도 하고 날씨는 전보다 좀 풀린 것 같고 또 마냥 춥다고 움츠리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기지개를 켜듯 산으로 향했다. 겨울산은 뭐니 뭐니 해도 눈 산행이 좋겠지만 경남 지방에서 눈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눈을 보기위해 먼 곳까지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제일 만만하고 언제 가도 푸근한 데다 산세도 있어 좋은 금정산을 모처럼의 목적지로 정했던 것이다. 금정산(801m)은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특히 부산과 양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한단다. 북으로는 장군봉(727m), 남으로는 상계봉(638m)을 거쳐 백양산(642m)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대륙봉, 파리봉, 동제봉 등의 준봉이 펼쳐진다.

 

 

오전 10시 30분에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불과 며칠 전 신문에서 금정산에 멧돼지가 출몰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곤 나는 잔뜩 겁이 나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남편의 설득에 겨우 산행에 나선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았다. 멧돼지 소식들은 알고 온 것일까 내심 의문이었다.

 

토요일인 데다 날씨도 청명하기까지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은 것 같다. 금정산은 언제든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춥다고 집에 틀어박혀만 있었다면 후회할 뻔했다. 범어사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범어사 경내를 지나 너덜겅이 있는 바위 길을 계속 올라간다. 겨울이라 그런지 강수량이 적어 범어사 위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린다.

 

바람은 메마른 나무 가지들 위에서 높이 울어대고 있다. 우우우~ 바람소리, 맑고 청명한 날씨인데 숲 위로 부는 바람은 예사롭지가 않다. 이렇게 바람 부는 날인데도 앞에서 뒤에서 산으로 향해 걷고 있는 등산객들 발걸음 계속 이어진다. 나무들이 빈 몸으로 서 있어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꽃처럼 단풍처럼 보인다.

 

 

높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는 북문까지 계속 이어진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몸도 마음도 깨끗해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북문 가까이 당도하자 새로 생긴 화장실이 눈에 띈다. 지난번에 왔을 때 공사 중이었는데 화장실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금정산이지만, 화장실은 좀 부족했다. 북문에서 고당봉 방향으로 가다보면 넓은 공터와 산장 뒤에 화장실이 있긴 하지만 오래된 데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깨끗하게 지어놓은 화장실이 있어 금정산이 새롭다.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또 동문 쪽으로 양팔 벌린 듯 길게 이어진 산성 돌담길이 또렷하고, 깃발들이 산성 돌담 위에 하늘 높이 펄럭이고 있다. 북문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20분이다. 여기서는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금정산성북문은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 오르는 자리에 있다'.

 

 

우리는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향해 걸었다. 햇볕이 따사로워 높이 부는 바람도 괜찮다. 금정산에는 바위가 많다. 넓게 펼쳐진 산자락에 옴팍 파묻힌 듯한 바위들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게 높이 치솟아 봉우리들을 형성하고 있는 바위군도 많다. 화강암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금정산은 육산이지만, 저마다 사연 많은 듯한 화강암 바위들로 인해 부드러움과 역동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쨍하게 내리쬐는 겨울 햇볕에 반짝이는 바위들은 눈이 시리도록 희다. 세월과 함께 풍상을 견뎌온 바위들은 비와 바람과 폭풍우 등을 견디고 세월에 마모되어 가면서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고 있다. 세월의 흔적들이고 저마다의 사연 새긴 지문들이다. 바위들은 세월을 껴안고 묵묵히 서 있다.

 

 

햇볕 아래 하얗게 빛나는 화강암 바위들이 문득 더욱 친근하게 와 닿는다. 넉넉한 품,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모습으로 반기는 금정산 곳곳에 바위들로 인해 산은 더 운치있다. 북문에서 만져질 듯 보이는 고당봉은 막상 올라가다보면 멀찌감치 서 있다.

 

등산길 따라 올라갈 수록 바람이 눕는다. 하늘은 맑고 여전히 푸르다. 햇볕에 뜨끈뜨끈 달구어졌을 것 같은 바위에 걸터앉아 본다. 하지만 찬 기온 때문인지 바위는 보기보다 차다. 고당봉 가까이 오자 그동안 못 온 사이 목재 계단이 더 많이 늘어났다. 낮 12시 5분 고당봉에 도착했다. 산길에서 많았던 등산객들은 여기 고당봉 정상에도 역시 많다.

 

우리는 고당봉 표지석 앞에서 추억의 보물창고에 담길 사진을 찍었다. 이후 금정산 고당봉 정상표지석 옆, 햇볕 잘 들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바위틈을 찾아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방석을 나란히 깔고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먹고 따끈따끈한 커피 한 잔 마시고도 일어설 줄을 모른다.

 

 

고당봉 꼭대기 양지바른 곳에 앉아 저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 능선을 따라 눈길을 옮긴다. 북문과 동문 가는 산성길을 지나 산 능선을 따라 눈을 옮기다보면 능선들 저 뒤로 부산시내가 아스라이 보이고 광안대교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해동수원지는 날씨가 청명해서 더 또렷하게 조망된다. 산성마을, 영도, 화명동, 노포동 등 멀리까지 두루 펼쳐져 있다.

 

곧 고당봉을 내려간다. 우리가 걸어갈 산성 길도 가르마처럼 또렷하게 보인다. 높은 산꼭대기에 앉아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번 보고 하면서 약 1시간 동안 고당봉에 내리쬐는 겨울 햇볕과 한참을 놀았다. 옆쪽 한 구석 바위에 모여 앉은 한 팀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막걸리까지 마시다가 갑자기 모두 잔을 들어 외친다. "위하여!"

 

우리 뒤에 앉은 두 여자는 도시락 먹고 앉아 있는 내내 떠들어대더니 어디엔가 휴대폰으로 타전을 하고 고당봉에 앉아 있노라고 고함지르듯 통화한다. 햇볕과 바위에 앉아 놀다보니 내려가기가 싫을 정도다.

 

바위 위에 앉아 살가운 햇살과 함께 놀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 속에서 쉼을 얻고 이제 슬슬 일어선다. 다시 북문에 이르고(1:35), 동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성을 끼고 몇 개의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돌아보면 저 멀리 고당봉이 조망되고 걸어온 산성 길 또렷하다. 금정산 산성 길은 앞으로 보아도 뒤에서 보아도 압도하는 풍경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명장면 그 자체다. 북문에서 동문 쪽으로 걸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동문 방향에서 북문 쪽으로 산행하였던 것이 대부분인데 반대방향에서 똑같은 길을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제법 힘든 고개를 세 개 넘자 원효봉(2:5)이다. 바람 높고 하늘 깨끗하고 주변 조망이 거침없이 들어온다. 앞에는 의상봉이 보인다. 원효봉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는다.

 

이번에는 산성 길을 내려놓고 옆으로 난 호젓한 산길을 따라 걷는다. 4망루가 조망된다. 2시 30분에 4망루에 도착했다. 여느 땐 꽤 많은 사람들이 4망루에 서서 상쾌한 바람을 쐬고 있곤 했는데 추운 날씨에 바람만 불어대고 있다. 4망루를 지나자 소나무숲길이 이어진다. 호젓한 산길에 빛과 그림자가 드리운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지 흙길은 단단한 바위처럼 느껴진다. 닳고 닳은 단련된 흙길을 뭇 사람이 걸었으리라 생각하며 한참동안 걷는다. 동문에 도착, 오후 3시 10분이다. 역시 동문 옆에도 전에 없던 화장실이 새로 생겼다. 처음 언뜻 보았을 땐 새로 생긴 음식점이 줄로만 알았다. 건물외관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3시 30분, 동문 입구에 도착했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산성버스가 도착했다. 우린 산성버스를 타고 식물원입구에 내려서 다시 80번 버스를 갈아타고 범어사 주차장 앞에까지 갔다. 산에서 산으로 이어진 등산길 따라 걸을 땐 거리가 먼 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시내에서 버스에 버스를 갈아타고 가면서 가늠해보니 꽤나 먼 거리였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법 긴 시간동안 우리는 금정산에 있었다.

 

<산행수첩>

1.산행:금정산(범어사-북문-고당봉-북문-동문-범어사)

2.일시:2010년 1월 23일(토)맑음

3.동행:남편과 나

4.진행:범어사 주차장(10:30)-북문(11:20)-고당봉(12:05)-북문(1:35)-원효봉(687m,2:05)-4망루(2:30)-동문(3:10)


태그:#금정산, #산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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