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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캠퍼스 한구석에서 민중, 민족, 민주라는 단어를 읊조리던 시대와 비교해 상황은 많이도 바뀌었다. 경제도 성장했고 정경유착으로 이득을 보던 정상배(政商輩)의 돈벌이도 많이 없어졌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고, 자본과 기술력도 당시와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목마르다. OECD 최고수준으로 치솟은 자살률, 비정규직노동자 비율, 빈부격차 등 각종 수치들은 경제성장이 민초들의 생활안정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회복이 선전되는 가운데서도 중국의 출구전략, 미국이 금융규제 강화에 의해 또다시 출렁이는 한국경제의 현실은 국민경제의 안정성이 심하게 손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먼지 먹은 헌책 속에서 잠잘 것만 같았던 민중, 민족, 민주라는 단어를 새삼 꺼내드는 이유는 한국경제에서 이 세가지 가치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운영의 목적이 대다수 민초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민중경제'의 발전에 있어야 한다는 점, 세계화시대에도 강력한 내수시장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민족경제'의 시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추진함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의 필요성은 이 시대에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민중경제의 재구성

 

IMF 경제위기 이후의 경제성장 과정이 민중을 저버리는 기민(棄民)의 양극화성장에 불과했다는 점은 이미 상식에 가깝다. 이제 새로운 민중경제의 재구성은 복지가 단순한 '짐'이 아니라 21세기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당근과 채찍'만이 아니라 안정된 사회 속에서 사람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복지병 운운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지출하는 복지예산 규모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며 조세부담률도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는 점도 이미 상식이다. 정부가 별로 해주는 것도 없지만 '고맙게도' 별로 돈도 안 걷는 것이다. 세금이야 '있는 사람'에게 걷는 것 또한 상식이나, 사방에서 '세금폭탄'이라고 아우성친다. 

 

일부 식자층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감세를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제발 부탁이다. 이론이든 사례든 증명해주길 바란다. 적어도 나의 지식 속에서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일본과 미국에서 벌어진 감세정책은 경제적 효과로서 발현되지 않았다. 가령 부시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하버드대학 교수 그레고리 멘큐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초판에서 감세를 주장한 공급경제학파를 '괴짜 사기꾼들'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정책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또다른 식자층은 경제성장이 분배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한다. 참 무책임한 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이 최근의 저서(<한 자유주의자의 양심>)에서 집요하도록 논증한 것은 바로 성장이 분배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분배가 안정된 성장을 가져온다는 점이었다. 오바마도 하토야마도 그리고 심지어 중국의 후진타오도 새롭게 실시하려는 정책은 분배개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는 것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복지를 단순히 시혜라고 생각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 속에 양극화는 시정되지 않으며 진정한 선진경제 달성도 요원해진다. 

 

민족경제의 재구성

 

새로운 민족경제의 재구성도 필요하다. 자칫 '민족'이라는 단어에서 지독한 국수주의 냄새를 맡으면 곤란하다. 1970~80년대 민족경제론을 이야기했던 박현채의 논점은 경제재생산의 주요부분이 국내에서 순환되는 점에 있다. 국내의 성장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내포적 성장'인 것이다. 1997년과 2008년, 10년마다 찾아오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반추해보면 이제 그만 수출입국(輸出立國)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면 왜 내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빈부격차의 증대로 국민대다수인 서민대중의 가처분소득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소기업-대기업의 산업연관이 무너짐으로써 대기업의 수출증대가 중소기업의 생산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이 그렇다면 해결방식 또한 간단하다. 광범위한 서민대중의 소비행위, 중소기업의 건강한 성장을 통해 내수기반을 확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책담당자들은 중소기업정책이 중요하다고 모두 말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소기업은 어렵다. 이유는 명확하다. 보호·육성 되어야 할 대상조차도 시장권력에 그대로 노출시켜 결과적으로 경쟁력의 총체적 약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영세소자영업까지 포함한 중소기업에 대해 제대로 지원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의료, 교육, 복지 등 사회서비스의 육성도 필요하다. 토목·건설사업과는 달리 사회서비스 투자는 고용창출효과가 무척 크다는 장점이 있다. 2006년 현재 10억원 투자할 때 유발되는 일자리는 사회서비스(복지·환경 등)가 25명, 교육·보건은 20명인 것에 반해 제조업은 10명, 건설업은 17명에 불과하다.

 

애초부터 인구 5000만명에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일부 돌출된 재벌 대기업의 수출에 의해 먹고 살려는 전략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수출은 잘되는데 고용은 그만큼 늘지 않고 중소기업이 여전히 어려운 현실은 단순한 수출증대가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은 시대에 뒤떨어진 수출입국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경제의 재구성

 

나는 경제정책에 확실한 정답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정책의 투명성, 민주성, 정직성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이 모든 것에서 심각한 기능장애를 보여왔다. 금산분리 완화, 감세, 환율정책, 4대강 개발, 세종시문제 등 민감한 정책사항에 대해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논리에 대한 일방적 선전만 있었다. 때때로 '거짓말'의 징후 또한 농후했다. 재작년 6월 통렬히 반성했다는 대통령의 담화가 귓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선회했으며, 국민적 저항을 모면하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로, 한반도대운하는 4대강 개발로 무늬만 바꾸어갔다.

 

현대경제학이 도달한 가장 중요한 지식은 돈도, 사람도, 기술도 그대로 생산활동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정된 돈과 사람 그리고 기술을 조직화하는 사회적 능력이며, 그 '능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구성원 간의 '신뢰형성'에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살 만한 사회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정직한 정부, 투명한 정책, 민주적 정책결정이 우리 모두가 살펴보고 복원해야 할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분명한 기준과 수치화된 목표

 

이제 우리는 경제정책에 있어서 민중, 민족, 민주라는 가치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종합적인 논리체계 속에서 완성시켜야 한다. 세분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홀로 정치화(精緻化)되어가는 각 분야의 논리가 종합적인 인식틀 속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정책조율은 불가능해진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경제정책이 대다수 민중들의 생활안정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 강력한 내수시장 육성으로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부에 의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은 MB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세력의 기준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향후 과제는 작동가능한 정책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정책의 목표, 수단과 효과, 예산의 조달계획, 정책추진체계 등 논리화되고 수치화된 정책들을 만들어가기에는 다음 대선까지의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

 

2010.2.3 ⓒ 창비주간논평

덧붙이는 글 | 김종걸 /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민족경제론#사회자본#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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