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성문화유산연구회 까페 '바람' 회원들과 '겨울 방콕탈출 산행'을 4회에 걸쳐 마무리를 하고 나니 그동안 다리에 힘을 기른 회원 몇 명이 아쉽다고 번외로 모이자고 한다. 의논 끝에 여기저기 산재해 살고 있는 회원들이 찾아오기 쉽고, 고구려 시대의 군사시설인 보루군 발굴현장도 둘러볼 겸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을 목적지로 잡았다.

2월 4일 목요일, 올 겨울은 삼한사온에서 멀어진 느낌으로 연일 낮은 기온을 갱신하는 날들이다. 이날도 못지않게 춥다는 뉴스다. 추위는 방안에 있을 때 더 느끼는 것 같다. 길을 나서니 따뜻한 햇살에 오히려 봄기운이 달려든다. 입춘이다.

5호선 아차산역 2번 출구에서 만나 밖으로 나가니 맞은편에 어린이 대공원 후문이 보인다.  역 왼쪽으로 나 있는 시장 길을 통과하고 주택가의 여러 갈래 골목길 중에 한 곳으로 들어서니 앞서가는 한 무리 등산복 사람들이 있어서 뒤따랐다. 아차산 등반이 처음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만나는 장소에 따라 이 골목으로도 저 골목으로도 올랐기에 늘 헷갈린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오히려 주택가로 더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반대편 길을 택하니 미리 답사를 와 봤다는 일행 한 사람이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반대편 쪽 골목으로 나온 그 사람들을 만났다. 길은 통해 있었던 거다.

아차산 입구인 만남의 장소로 오르지 않고 영화사 뒤편으로 오르는 길로 올랐다. 해맞이길이라고 하던가.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들이 얼키설키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아름드리 둥치는 아니나 어울려 있는 모습들이 장관이다.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내려 오르는 영화사 뒤편 등산로의 소나무군락.
해맞이길, 혹은 고구려정길.
▲ 아차산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내려 오르는 영화사 뒤편 등산로의 소나무군락. 해맞이길, 혹은 고구려정길.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오르다보면 팔각정이 나온다. 혹시나 일행을 놓치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면 산속에서 만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그 팔각정이 철거작업 중이었는데 지금은 그 장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오르면서 궁금했다. 

한 면이 온통 마당바위처럼 생긴 곳이지만 가파르지 않아서 걸어 오를 수 있는 곳에 팔각정은 그대로 서 있었다. 기존 것이 노후해 헐고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현판 이름을 '고구려정'이라 달고 새롭게 단장을 했다. 그리고 지도에는 그 팔각정을 향해서 오를 수 있는 길을 '고구려정길'이라고 해 놓았다. 예전에 있던 팔각정은 그냥 의미 없는(?)정자였으나 이제는 아차산이 고구려의 자취가 흠뻑 젖어 있는 곳이라 해서 정자도 고구려 시대의 건축양식을 본떠서 지었다고 한다.

아차산 입구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는 '고구려정' 고구려의 건축양식을 본떠서 지은 것으로 2009년 7월에 준공을 했다. 새 단장이라 주위와 어울림이 덜해 보인다.
▲ 아차산 아차산 입구 바위산 위에 세워져 있는 '고구려정' 고구려의 건축양식을 본떠서 지은 것으로 2009년 7월에 준공을 했다. 새 단장이라 주위와 어울림이 덜해 보인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새로 지은 팔각정 안은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올라가서 주변을 조망하고 싶었는데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는 조그만 안내문이 오르는 계단 입구에 붙여져 있다. 추운 날씨에 등산화까지 벗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한다. 정자각 안에 난방이 될 리 없으니 신발 벗으면 이 추위에 분명 발이 시리겠다. 예전에 있던 정자각은 난간 안으로 나무의자가 덧대어 있어 사람들이 올라가 잠깐 앉아 쉬며 산에서 부는 바람맞이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꽃도 피웠던 곳이었는데...

정자각 난간사이로 올려다보니 무슨 도서함(산속 자그만 정자각에 어울리는가)이라고 해놓고 책 같을 것을 비치해 놓았다. 보라는 것인가. 전시용인가. 사람들이 거의 벗기 힘든 등산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데, 신발 벗는 귀찮음 때문인지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정자각을 일별하고 산으로 그냥 향한다. 오히려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게 해놓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혹시 고구려 유적에 관련된 책자라면 좀 더 접근하기 쉽게 해 놓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우리들도 지켜야할 것이 하나 있었다. 정자각 위로 오르는 계단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그곳을 뾰족한 스틱을 사용해서 올랐는지 계단 나무에 패인 상처가 많이 나 있다. 안내문도 '스틱사용'을 금한다고 해 놓았다. 보존은 산을 찾는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몫이다.

맑은 날씨로 해서 정자각 밑 바위에서 바라보니 올림픽대교와 구의동, 광장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 중의 하나. 아직 발굴이 시작도 되지 않았고 철책만 쳐져 있다.
▲ 아차산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 중의 하나. 아직 발굴이 시작도 되지 않았고 철책만 쳐져 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아차산은 해발 285미터의 산이다. 아차산 능선은 해발348미터인 용마산과 맞닿아 있어서 오른 김에 용마산 정상까지도 밟을 수 있고, 용마산 능선 따라 내려가면 망우리 공원묘원하고도 연결되어 있다. 높지 않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니 오르는 객들이 많다. 평일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내린다. 산이 낮으면서도 깊은 느낌이 들고 모래 길이 아니고 거의 바위산이라서 미끄러움이 덜하다.

안내판에 제 5보루라고 되어 있다. 2010년까지 정비예정이란다. 
아래 철책 밑으로 등산길이 나있다.
▲ 아차산 안내판에 제 5보루라고 되어 있다. 2010년까지 정비예정이란다. 아래 철책 밑으로 등산길이 나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아차산은 옛 고구려의 유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알려져 더 유명해 졌고, 광진구는 그 역사유적을 발굴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아차산성을 비롯해서 산 위에서 여러 보루들이 발견되어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각축장이었다고 보는 아차산 안에 있는 보루는 적을 막아내기 위한 군사시설이다. 아차산 능선에서 발견된 보루는 5개소나 현재 순차적으로 발굴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발굴된 홍련봉보루와 제 4보루에서 출토된 유적을 보면 모두 고구려 때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지난날에는 보루가 묻혀있다고 보는 등성을 사람들이 등산길로 이용했었는데 지금은 보존차원에서 철책이 쳐져 있어서 등성(보루라고 명한)을 피해 길이 나 있었다.

아차산 4보루 발굴 현장. 발굴 되지 않은 다른 보루들과는 달리 나무로 아주 촘촘히 담장을 치고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예전에는 헬기장이었다.
▲ 아차산 아차산 4보루 발굴 현장. 발굴 되지 않은 다른 보루들과는 달리 나무로 아주 촘촘히 담장을 치고 있어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예전에는 헬기장이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아차산 제 4보루는 아차산 헬기장이었던 곳이다. 훼손을 피하고 발굴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나무로 촘촘히 담장을 쳐 놓았는데 안내판에는 2008년 12월까지로 정비기간을 정해놓고 있었다. 정비기간이 훨씬 지나 있다. 나무담장 사이로 돌담이 보이기는 했으나 위쪽은 천막이 쳐져 있다. 다른 보루들은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모습이다.

아차산 정상 쪽에서 건너다 본 제4보루 발굴현장. 위쪽에 발굴 하면서 덮어 논 천막이 보인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
▲ 아차산 아차산 정상 쪽에서 건너다 본 제4보루 발굴현장. 위쪽에 발굴 하면서 덮어 논 천막이 보인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아줌마들이 모이면 산을 오르면서도 수다가 이어진다.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 위에서 엉킨다. 용마산, 아차산, 망우산 보루를 이어주는 보루연결로인 '아차산장성'에 도착했다. 아차산 정상인 셈이고 연결보루이니 산길이 사통팔달이다. 그곳에서 500미터쯤에 용마산 정상이 뻔히 보인다. 산의 정상과 정상이 짧은 능선하나로 바로 연결되어 이웃하고 있는 셈이다. 단숨에 용마산 정상까지 올랐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등산기구들이 들어서 있고, 등산 온 사람, 산책 온 사람들 모여서 다리쉼을 하고 있다. 산이 낮고 험하지 않으며 조망도 좋으니 산 정상이지만 동네사람들 마실 터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갔던 간식으로 입가심을 하고 올랐던 길을 되잡아 내려왔다.

아차산 명품 소나무 1호란다. 2호까지 있었다.
▲ 아차산 아차산 명품 소나무 1호란다. 2호까지 있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함께 했던 일행들이 우리 동네 산도 이만큼은 높다고 농담 섞인 불평을 했지만, 다 오르고 난 후에는 오르고 내리는데 별로 힘들지 않으면서도 정상을 밟아본 느낌도 좋았고, 아직 정비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능선 따라 드러나고 있는 역사적 현장도 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태그:#아차산, #아차산 고구려유적, #아차산 고구려보루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