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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 책표지 최민식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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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을 읽었다. 사진작가 최민식'에 대해서라면 부산의 자갈치 시장 사람들을 오랫동안 찍어온 사진작가라는 정도의 아는 것뿐이었다. 막상 책을 읽으면서 사진인생을 들여다보았고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은 말을 전해 오는 이 책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그가 보는 것과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작가의 사진 인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이 일상화된 요즘 사람들에게 아마도 사진작가 최민식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났고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면서 1957년부터 오직 사람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어온 작가다. <사진연감>에서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사진집 <인간> 열두 권과 에세이집, 사진 평론집 등을 출간하고 놀라운 열정으로 지금도 끊임없이 셔트를 누르며 종횡무진하고 글쓰기와 강연을 겸하여 하고 있는 노장이다.

사진과 함께 실은 이 책은 8년 전에 출간했던 책을 틈틈이 써 두었던 글 십여 편을 모아 사진과 함께 새롭게 꾸며서 펴낸 것이란다. '사람 담은...'이라고 밝히고 있듯 이 책에 실린 사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흑백사진이라는 것과 작가가 일생동안 찍어 온 것이 그러하듯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이웃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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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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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하고 삶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스쳐지나갔을 법한 그 시대, 그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 그러나 생을 다해 인내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을 카메라 앵글 속에 담았다는 점이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요즘 밖에 가끔 나가보면 제법 묵직한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도심 한 복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산에 가도 마찬가지다.

탐나는도다! 은근히 좋은 카메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언젠가 좋은 사진기 하나 구입해서 사진을 정식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근래에 들어 부쩍 사진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시각문화 영상문화가 발달하면서 더욱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나는 손 안에 들어오는 디지털 카메라로 그동안 찍어 온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생각 없이 찍어댄 것은 얼마나 많을까 조금 부끄러워지려고 했다.

실제로 사진 한 장은 수많은 단어의 조합들보다, 그 어떤 수식어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강렬하게 호소력 있다. 작가의 사진이 또한 그렇다. 모든 이성과 감성, 정신을 집중시키며 한 순간, 그 찰나에 담은 것이 많은 말보다, 글보다 더 강렬하고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사진의 힘이다. 작가는 사진에서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찍는가'보다는 '왜 찍는가'가 더 중요하단다. 목적을 위한 창작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의 역사 160여 년간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사진가의 지위를 우리는 너무 쉽게 얻으려 한다. 무엇을 위한 사진인가에 대한 자각과 함께 사진과 사회라는 문제가 대두되어야 한다. 무엇이 표현이며 무엇이 완성된 작품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도전했는가의 문제다. 사진이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1920-1930년대에 데뷔한 사진가들이 재능을 인정받기까지는 적어도 20여 년의 꾸준한 노력이 따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젊은 사진가들의 작품에는 미의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다. 고뇌가 없는 작품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수준 높은 리얼리즘적 사진만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p95)

그는 또 사진이란 다른 사람이 짊어진 아픔의 감각을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어둠을 밝히는 것은 마땅히 사진의 사명이며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늘의 현실 뒤에 감추어진 역사의 발견, 세계의 발전법칙을 꿰뚫는 눈'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숭고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곳에야말로 예술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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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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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그 무엇보다도 삶 자체를 표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호소력과 절규, 감동과 비판 그것이 바로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백이며 탄원이며 저항이다'라고 말한다. 일생동안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향해 셔트를 눌러온 그는 늘 가난한 사람을 발견하는 순간에 셔트를 누른다고 그것에 그의 생명의 힘으로 이어진다고 고백한다.

사진작가 최민식(1928)은 가난한 이들을 사진으로 담게 된 동기에 대해서 그는 그가 걸어온 삶, '나의 삶 나의 길'에서 밝히고 있다. "가난한 민중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내가 겪은 뼈저린 가난의 경험이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나는 가난이 싫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온 후 갖은 고생을 하며 거리를 전전한 끝에 일본으로 밀항해 도쿄 중앙미술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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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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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헌책방에서 우연히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엮은 사진집 <인간 가족>을 발견하고 놀랐다. 거기에는 감동적인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림 공부를 하면서 그때부터 하루 같이 인간을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 주변에서 삶의 진실과 허식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가난이 준 상처 때문에도 울었지만 가난이 사람의 영혼을 묶고 모든 희망을 수포로 만들어버리는 것에 더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창작에 필요한 경비로 항상 고민해야했고 '쌀 사놓으면 연탄 떨어지고, 연탄 들여놓으면 쌀 떨어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진들은 자연히 그는 가난한 이웃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앵글에 담았다.

"나에게 사진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민중과 같이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의 삶과 진실한 이야기의 메시지를 민중들에게 전하는 사명의 필요성, 이것이 내 사진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고 그가 사진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책 속에 실린 사진 속의 사람들 중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턱을 괴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 있다. 얼굴과 옷은 후줄근해 보인다.

턱에 괸 손등은 오랫동안 씻지를 못해 덕지덕지 때가 앉았고 손이 부르텄다. 콧물이 인중에 매달려 있다. 곤히 잠이 들어있는 이 모습은 우리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보아하니 1962년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 그 시절, 흔히 보던 우리들의 모습이다. 1972년에 찍은 사진 한잔은 중년 남자가 쌀가마니인지 소금가마인지 두 개의 무거운 가마니를 어깨에 메고 고개 숙인 채 걸어오고 있는 장면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 가정의 가장...하지만 그 수그러진 얼굴 표정에 불만이나 작은 동요도 없다. 자기 생에 순응하는 모습, 책임 있는 숙연한 모습이다. 가족이 있고 그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의연함과 겸허가 엿보인다. 1986년, 폐지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걸어오는 억센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우리들의 어머니, 자식과 가정이라는 차를 힘 있는 대로 끌었던 우리들의 어머니 그 질긴 모정이 엿보인다.

사진과 글이 함께 실린 이 책에서 작가는 사진의 길을 걸어온 날들을 회상하고 자신의 사진이 무엇을 추구해왔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 사진들에는 그동안 써 놓았던 사진과 예술, 삶에 대한 성찰과 진솔한 애기들이 딸려있다. 그의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아래의 글에 투명하게 비친다.

"유럽인이 만든 작은 사진기에 미국 코닥사의
흑백필름을 넣어 어깨에 둘러매고
1950년대 중반부터 이 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내가 카메라라는 도구를 눈에 들이댔을 때
망막을 통해 들어온 피사체는 바로 상처 입은 동족의 슬픈 얼굴이었다.

거리의 모퉁이에서 '호옥' 숨 한 번 쉬고
국숫발을 빨아올리는 어린 여자아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이중 삼중 휘는 노동을 해야 하는 여인,
제 나라의 번영을 말하는 선거 벽보 밑에서 막 잠이 든 가난뱅이,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당장 먹을 것도 없어
골목 어귀에 쪼그리고 앉아 그대로 죽고 싶을 따름인 가장,

하루 종일 일 나간 부모를 기다리다가
해질녘 기어코 슬픔을 못 이겨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자선을 바라는 눈먼 걸인...

조악한 식사,
굵은 주름이 이마를 덮은 지친 노동자...
이들의 슬픈 모습이 카메라 앵글을 통해
나의 머리에 읽히고
또 가슴을 두드리는 멍으로 전해져 왔다."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현실문화(2004)


태그:#사진, #최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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