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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꼭대기에 오르면 창공을 날아 오르는 큰 새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을 지닌 수리산은 488m의 작은 산이지만 경기도 군포시, 안양시를 품고 있어 주민들 안식처가 되는 고마운 산입니다. 작년 안양시 방면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리산을 올라가 보았는데, 1800년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들어와 살았다는 마을과 평범한 집 같은 소박한 성당이 산 중턱에 다 있더군요.

 

이번에는 군포시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리산을 올라가 보았습니다. 겨울을 맞아 재충전중인 논들과 하얀 얼음이 덮인 넓은 저수지, 동네 주민이 그린 듯한 풋풋한 솜씨의 벽화가 있는 마을이 맞이해 주어 겨울 산행길이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고 훈훈하기만 합니다.

 

정상보다 산행길이 더 좋은 수리산

 

수도권 전철 4호선 대야미역에서 내리니 둔대 초등학교와 함께 볏단들이 돌돌 묶인 푸근한 논들이 반겨줍니다. 이곳에도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아직은 신도시의 차가운 콘크리트 느낌보다 산자락 논과 밭들이 주는 흙의 느낌이 살아 있는 동네네요. 전철역앞 아파트 단지 바로 옆 언덕에서 어슬렁 거리는 한우들 모습이 재밌습니다.

 

둔대 초등학교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이맘때쯤인 정원대보름날엔 학교 마당에서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 정월 대보름 달맞이 축제를 열었답니다. 둔대농악보존회의 농악대가 내는 북과 장구, 징소리로 동네가 떠들썩하고 신명이 나서 저도 구경온 적이 있었지요.(참고기사 : 찐빵같이 둥근 달, 동네 초등학교에 떴네) 아직도 눈에 선한 2007년 겨울 밤의 불놀이를 떠올리며 학교 옆길로 들어서니 경로당 나무 간판 옆에 서있는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네요. 계절이 농번기라 더 그러하겠지요.

 

어디서 참새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동네 아이들이 열심히 썰매를 타고 있네요. 논위에 물을 뿌려 얼린 논스케이트장에서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구르고 넘어지며 재밌게 노는 아이들이 겨울 철새인 청둥오리마냥 귀엽고 생기가 넘칩니다. 그러고 보면 논은 사람에게 참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오늘은 낮에도 영하 5도인지라 스산한 겨울 산행길을 예상했는데 의외의 풍경에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썰매를 타듯 자전거를 지치게 됩니다. 이번엔 일부러 물을 뿌려 얼린 게 아니라 진짜로 겨울 동장군이 꽁꽁 얼린 저수지를 만납니다. 이름도 독특한 갈치 저수지와 옆의 반월 저수지가 그곳인데, 낚시꾼 하나 없이 하얀 얼음으로 뒤덮힌 적막한 저수지의 묘한 분위기에 끌려 잠시 서있어 보았습니다. 동장군이 내는 휘파람 소리가 섞인 겨울 바람이 저멀리 들판에서 불어와 저수지를 맴도는데 그만 시간이 멈춘 것 같네요. 

 

이름마저도 풋풋한 벽화마을을 만나다 

 

산행길 초입부터 평지를 달리기만 해서 웬일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언덕길이 나타납니다. 1차선의 작은 임도길은 지나가는 차들도 뜸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고 한적해서 걷거나 달리기에 좋네요. 드문드문 산행에 나선 사람들의 걷는 것 같기도 서있는 것 같기도 한 여유로운 뒷모습이 보입니다. 높고 험하지 않은 이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복장은 그들이 오르려는 산처럼 담백하고 일상처럼 편안합니다. 조금씩 동네와 들판이 눈아래에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겨울 산 특유의 적막하고 한적한 임도길을 오르락 내리락 달린지 얼마 안되서 연탄가게를 겸한 꼬마 슈퍼와 함께 웬 동네가 나타납니다. 표지판이나 팻말 대신 큰 돌로 만든 표지석이 보이는데 '납덕골'이라고 써있네요. 동네 이름이 참 소박하고 풋풋합니다. 수리산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지 작은 갤러리와 식당을 겸한 카페도 다 있네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동네구경을 하게 한 것은 집 담벼락마다 알록달록 그려져 있는 벽화(?)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화가가 그린 것은 아닌 것 같고 어린 학생들이나 동네 주민들이 즐겁고 재미나게 그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나고, 산골마을에서 만난 이채로운 풍경에 흐뭇합니다. 오래되고 수더분한 집과 담장이 생기를 되찾은 듯하고 동네가 활기차 보여 좋네요.

 

납덕골을 지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 동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수리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고, 산 중턱 수리사라는 신라시대 절까지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네요. 그 중 반가운 사람들도 만났는데 바로 저처럼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입니다.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어디서 오셨냐, 어느 길 코스로 올라왔느냐, 자전거 좀 만져도 되냐.. 등 반가움과 호기심이 담긴 얘기도 나눕니다. 수리산은 임도길이 잘 나있어서 자전거 동호인들이 이렇게 여럿이서 달리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지요.

 

인사를 나눈 자전거 동호인들의 뒤를 따라 가다가 언덕길에서 그만 뒤쳐져서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고 산 중턱에 있다는 오래된 절 수리사에 찾아갔습니다. 절을 품은 산과 이름이 같아서인지 수리사도 친근하고 누구라도 들르라는 듯 입구와 출구가 따로 없이 열린 절이더군요. 절 한편으로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어 수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절 건물의 양지바른 계단에 앉아 얘기도 나누고 간식도 먹으며 잠시 쉬면서 산을 오르기도 합니다.  

 

수리산은 오르는 길에 만나는 정감있는 풍경들 덕분에 겨울 산행길이 그다지 춥지 않고 푸근하네요. 군포시와 안양시민들에게 편안한 산행길과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까지 길을 내어주는 참 고마운 산입니다.


태그:#수리산, #자전거여행, #납덕골, #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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