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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만의 폭설 미국 동부를 강타하다

- 앨크리지(매릴랜드) 97.3센티
- 리스버그(버지니아) 87.6센티
- 덜레스 공항 82.3센티
- 볼스턴(버지니아) 71.1센티
- 레스톤(버지니아) 68.6센티
- 워싱턴 DC 64.8센티

                              ( 현지시각 2월 6일 오후 4시)

폭설이 그치고 인적이 끊긴 우리 동네 일요일 아침 풍경.
 폭설이 그치고 인적이 끊긴 우리 동네 일요일 아침 풍경.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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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센티가 왔다는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의 우리 동네도 이렇게 집 입구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렸는데 80센티 이상 온 동네는 과연 '스노마겟돈'이었을 것이다.
 46센티가 왔다는 버지니아 주 해리슨버그의 우리 동네도 이렇게 집 입구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렸는데 80센티 이상 온 동네는 과연 '스노마겟돈'이었을 것이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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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금요일 오후, 미국 동부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 '눈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강력했던 이번 눈은 워싱턴 DC 일대를 비롯, 버지니아와 매릴랜드, 뉴저지 등 동부 해안 지역에 집중되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시카고에서 이미 눈으로 단련된 '스노우 베테랑(Snow Veteran)'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폭설에 대해 지구 종말의 대혼란을 나타내는 '아마겟돈'을 연상시키는 '스노마겟돈 (Snowmageddon)'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여 모든 상황이 마비된 동부 지역의 폭설 현장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일요일에 열릴 <슈퍼볼>을 앞두고 '슈퍼 폭설'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는 WUSA9- TV 인터넷판.
 일요일에 열릴 <슈퍼볼>을 앞두고 '슈퍼 폭설'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는 WUSA9- TV 인터넷판.
ⓒ WUSA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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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폭설로 거의 모든 도로와 철도가 차단됐고 지하철도 일부 구간만 운행되었다. 워싱턴 주변의 덜레스 공항을 비롯한 레이건, 볼티모어 공항과 필라델피아 공항에서는 비행기 이착륙이 대부분 취소되었고 국영철도인 암트랙 역시 다수의 구간 운행이 취소되었다.

워싱턴 일대 22만여 가정과 사무실은 전신주가 쓰러지는 바람에 정전 사태를 빚기도 했는데 TV에서는 정전 사태가 벌어질 경우 취해야 할 응급조처가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정전 시에 대피할 수 있는 쉼터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보도되었다.  

학교나 관공서도 일찍 문을 닫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의 행사도 모두 취소되었다. 평소보다 일찍 '비상' 뉴스 방송을 시작한 TV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속속 자막으로 올라왔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자막이 있었다.

"급구! 4륜 구동차 운전자"

시시각각 폭설 소식을 전하는 TV 자막에는 '4륜 구동차 운전자'를 구하는 내용이 속속 올라왔다.
 시시각각 폭설 소식을 전하는 TV 자막에는 '4륜 구동차 운전자'를 구하는 내용이 속속 올라왔다.
ⓒ WUSA9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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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륜 구동차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 병원, 호스피스 센터, 재활 센터 등이다. 왜 필요하냐고? 환자들을 돌볼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다.   

이번 폭설로 시내 일부 도로가 묻히고 폐쇄된 가운데 그나마 이런 악천후에서 운행이 가능한 차는 4륜 구동차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디오와 TV에서는 의사 등의 의료진을 실어나를 4륜 구동차 운전자를 구한다는 안내방송 전화번호와 자막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슈퍼마켓 필수품 순식간에 동나다

사실, 기록적인 폭설이 시작되었던 5일(금) 이전에 '상황'은 이미 발생했다. 전날인 4일 오후, 기자가 살고있는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조처가 신속하게 내려졌다.

제임스매디슨 대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의 휴교가 일찌감치 선포되었고 이날 저녁은 '눈보라 쇼핑'으로 불리는 생필품 사재기 쇼핑이 거의 모든 슈퍼마켓에서 벌어졌다. 

기자가 찾은 <코스트코> 매장에서는 평소 길어야 열 명을 넘지 않던 계산대 줄이 이 날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이번 눈사태로 집에 갇히게 될 기간이 최소 3-4일, 길게는 1주일 정도로 예상한다며 식량과 간식거리 등을 비축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인근 <월마트> <푸드라이온> <레드프론트>등의 매장에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사람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히 빵, 우유 등의 필수 식료품은 삽시간에 동이 나 진열대가 텅 비기도 했다. 일요일에 있게 될 '슈퍼볼' 경기 때문인지 쇼핑객들의 카트에는 생필품 외에도 맥주,  피자, 간식거리 등이 눈에 많이 띄었다.  

또한 <로우스>나 <홈디포> 등의 하드웨어 매장에서는 눈삽, 눈송곳, 염화칼슘 등의 제설제가 많이 팔렸고 눈썰매도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하던대로 개 두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주민.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하던대로 개 두마리를 데리고 산책 나온 동네 주민.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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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경기, 걸어올 수 있는 사람만 구경 오세요

폭설 때문에 온 도시의 기능이 마비된 지난 6일 토요일. 버지니아 대학교(UVa)는 ACC 리그에 속한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과의 농구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날 내린 눈으로 비상 사태가 선포된 상황이어서 경기 개최 여부는 불투명했다.

사실 버지니아 대학은 전날인 5일 모든 수업을 취소했다. 지난 2003년 2월 이후 7년 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예정된 농구경기는 열릴 수 있었을까?

경기는 열렸다. 어떻게 이런 폭설에 경기가 열릴 수 있었냐고? 대학농구 ACC 리그 규정에 따르면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경기를 하게 될 양 팀과 심판 3명 중 2명이 경기 현장에 와 있다면 경기는 그대로 강행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미리 와 있던 웨이크 포레스트 농구팀과 심판 3명 덕분에 경기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럼 경기를 관전할 관중들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끔찍한 폭설에 말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왔다. 많이. 6천 명 정도나.

어떻게? 인기있는 겨울 스포츠인 농구는 평소 티켓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던 만큼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다.

즉, 버지니아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는 입장 티켓 없이 학생증만으로 입장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이 대학에 재직중인 교직원들에게는 교직원 ID만으로 입장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세 명의 손님까지 무료입장을 보장하면서.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날 경기를 관전하러 오는 관중들에게 내린 지침이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반드시 보도로 '걸어서' 와라. 경기장까지 걸어올 수 없으면 차를 끌고 오지 말고 그냥 집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해라."

이런 가운데 폭설을 뚫고 입장한 6천 여명의 관중들은 공짜 경기도 즐기고 현장에서 VIP 대접도 받았다고 한다.

제설차 운전자는 웃고 주정부는 울고

이번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 때문에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제설차 운전자들이다. 이들은 동네 곳곳을 누비며 눈을 치웠는데 밀려드는 일감 때문에 쉴 새가 없었다. 기자 옆집에 사는 마가렛 할머니네 눈을 치우는 제임스도 폭설이 자주 내리는 덕분에 올 겨울은 아주 바빴다고 한다.

제설차로 눈을 치우는 가운데에도 연신 걸려오는 휴대폰 전화 때문에 바쁜 제임스. 다섯 평 남짓 되는 마가렛 앞마당을 치우고 그가 받는 돈은 얼마냐고? 50달러.

마가렛 집의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 잦은 폭설이 싫지 않을 듯.
 마가렛 집의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 잦은 폭설이 싫지 않을 듯.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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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폭설로 가장 바빴던 사람은 제설차 운전자들.
 이번 폭설로 가장 바빴던 사람은 제설차 운전자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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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버지니아 주 정부는 올 겨울의 잦은 폭설 때문에 벌써부터 구멍 난 예산을 걱정하고 있다. 주 정부는 보통 겨울철이면 7천만-8천만 달러의 경비를 제설 작업용으로 책정해 두고 있는데 올해는 이미 1억 달러의 경비가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주 9일과 10일, 다시 눈이 예고되어 있고 앞으로도 눈이 올 날이 더 있다고 해서 주 정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폭설 사태를 두고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말이 들리고 있다. 결국은 '인재(人災)'라는 말도 나오고 있고. 일부에서는 다시 빙하기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과연 지구 환경의 진실은 무엇일까.

눈에 갇힌 자동차와 우편함.
 눈에 갇힌 자동차와 우편함.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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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 동부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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