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맑은 날씨,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천왕봉에는 아직 흰 눈이 수북합니다.
 맑은 날씨,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천왕봉에는 아직 흰 눈이 수북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타들어 가는 갈증에는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 냉수 한 바가지가 최고이고, 살인 더위로 내려쬐는 햇살에는 한 뼘 넓이의 나무그늘이 최고이듯이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시 타박타박 한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산사가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용한 산길을 걷다보면 세태에 마비되었던 감각이 오롯이 살아나고, 새살이 돋듯 실 가닥처럼 미미했던 감각까지 살아나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하고, 무엇 때문에 심정이 불편했나 볼 수 있습니다.

잠잠해진 감각이야 말로 자신의 심신을 구석구석 왜곡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내시경이며, 내면에서 숨 쉬는 잠재적 소리까지를 들을 수 있는 청진기입니다. 최첨단 의료장비라고 하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도 찍히지 않는 본질적 이유나 까닭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건 바로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아가의 오줌줄기처럼 찾아오고 있는 지리산 계곡의 봄

아주 오랜만에 하늘아래 첫 산사, 지리산 천왕봉 7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법계사에 다녀왔습니다.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는 자동차로 달리고, 천왕봉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서부터는 타박타박 한 발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한 겨울이지만 아가가 누는 오줌줄기 같은 모습으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한 겨울이지만 아가가 누는 오줌줄기 같은 모습으로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날씨가 어찌나 맑고 하늘이 푸르던지 팔을 치켜 올려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파란색 물감이 장맛비처럼 주르륵 흘러내릴 듯합니다. 하루 종일, 지리산 주변의 하늘은 손톱만한 구름 한 조각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파랗기만 했습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로 오르는 길은 아직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게 복병처럼 숨어있는 얼음도 있고, 아직은 겨울이라는 것을 배짱부리듯 배불뚝이만한 얼음으로 당당하게 빙판을 이루고 있는 곳이 곳곳입니다.

얼음길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니 아이젠을 착용하기도 그렇고, 여차하면 스스로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야 하는 얼음길이 곳곳이니 아이젠의 탈착을 반복하던지 아니면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속계와 법계를 가름하는 법계사 일주문
 속계와 법계를 가름하는 법계사 일주문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법계사 적멸보궁
 법계사 적멸보궁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법계사 산신각
 법계사 산신각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타박타박한 발걸음으로 편안하게 걷다 비탈진 얼음길에 들어서면 세발이 되기도 하고, 주변에서 가지를 뻗치고 있는 나무나 돌멩이에 의지하며 오르다 보니 1시간이면 올라갈 거리가 1시간 30분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나 언뜻 바라보는 지리산 계곡은 아직 한겨울이었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걸림 없는 시선으로 둘러보는 지리산 계곡에는 이미 봄이 와 있었습니다.

나무껍질에서는 물기 오르는 촉촉함이 느껴지고, 주렁주렁하게 꽁꽁 얼어있던 계곡의 고드름줄기에서는 따뜻한 햇살 아래서 고추를 내놓고 갈겨대는 아가들 오줌줄기 같은 물줄기가 봄을 노래하는 환상곡처럼 재잘거리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간 하늘 아래 첫 산사 법계사

느낌처럼 다가오고 있는 봄을 감지하며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마음을 쓰다듬으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법계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오욕칠정과 백팔번뇌가 풍랑을 이루고 있는 속계와 피안의 세계를 가름하고 있는 일주문을 들어서며 노크를 하듯 합장 삼배를 올렸습니다. 

모처럼만에 지리산을 찾아 간 2월 6일 지리산은 멀리 남해바다가 다 보일만큼 날씨가 좋았습니다.
 모처럼만에 지리산을 찾아 간 2월 6일 지리산은 멀리 남해바다가 다 보일만큼 날씨가 좋았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날씨가 어찌나 맑고 하늘이 푸르던지 팔을 치켜 올려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파란색 물감이 장맛비처럼 주르륵 흘러내릴 듯합니다.
 날씨가 어찌나 맑고 하늘이 푸르던지 팔을 치켜 올려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파란색 물감이 장맛비처럼 주르륵 흘러내릴 듯합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여느 산사의 법당들과는 달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향해 참배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적멸보궁에 들려 극진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리고 주지 관해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주 앉은 스님께서는 인연법을 들려주십니다. 당장만 봐서는 과분하게 행복한 사람, 당장만 봐서는 너무너무 불행한 사람 모두의 삶을 좀 더 높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면 인과에 따른 인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장의 자신이 궁핍하고, 지금의 자신이 불행하다면 그럴 만한 이유나 원인이 있을 것이니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 맺을 결과를 위하여 선한 삶, 베푸는 삶, 바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법계의 울림으로 지리산 자락에 불음 울릴 터

7년여 전부터 법계사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시는 관해스님께는 진즉에 인사를 드려서 어렵지 않게 법문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관해스님께서 법계사 주지로 소임하면서 있었던 대소의 일중에서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이어지는 혈맥자리에 박혀있던 철심을 제거한 일일 겁니다.

법계사 주지인 관해스님께서 손가락으로 꼭꼭 가리키며 지리산과 법계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법계사 주지인 관해스님께서 손가락으로 꼭꼭 가리키며 지리산과 법계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명산 중의 명산, 한국의 어머니 산이라고 하는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예전의 법계사 스님들께서는 정성 한 번 제대로 올리지 않았었는데 관해스님이 오셔서 처음으로 지리산 산신께 여법하게 정성을 올리던 지난 2005년 봄과 가을, 무구한 세월동안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던 철심이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오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두 개씩이나 제거할 수 있었으니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묘한 인연이며 원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산사에 살기에 산을 존중하고, 산사에 살기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정성을 올리던 관해스님께서 일구월심으로 다짐하는 서원 중 하나는 어머니 목소리 같은 울림으로 지리산 자락에 범종소리를 울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리산을 닮아 어머니의 마음으로 울려 줄 범종, 중생 구원의 원력을 담아 물길처럼 지리산 넘고 계곡으로 흘러내려서 사람들의 가슴에 봄비처럼 스며들 범종소리를 내년 가을쯤에는 꼭 울릴 거라는 바람을 진즉부터 발원해 왔고 현실화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과 조화를 이루고 용바위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과 조화를 이루고 용바위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지리산에서 발원한 한국인의 정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다 솟구치는 법계사, 속계에서 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바람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는 법계사에서 울리는 범종소리는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한 환청이며 가슴 벅찬 울림입니다. 

내년 가을 쯤, 동틀 무렵이건 해질 무렵이건 법계사 언저리 어딘가에 앉아서 듣게 될지도 모를 범종소리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들으면 환호성이 되고, 슬픈 마음으로 들으면 통곡 같은 울림으로 가슴을 적셔올 것 같습니다. 아우성 같은 번뇌는 잠재우고, 천군만마의 응원 같은 울림으로 지리산 산하로 흘러내리고 사람들의 가슴으로 스며들 거라고 상상하니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관해스님께서는 여느 사찰의 비슷비슷한 범종들과는 달리 법계사의 종에는 지리산을 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범종마다 규격처럼 들어가 있는 비천상 무늬나 괸세음보살상 대신 지리산의 대명사인 천왕봉과 제석봉 그리고 반야봉 등을 문양으로 넣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양으로만 지리산을 넣는 것이 아니라 범종에 넣을 글도 지리산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우르기는 글을 넣고자 천일기도를 올리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염원하던 중 어느 날 꿈결에서 들었던 내용이 있어 이를 다듬어 올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법계사에서 울리는 이 종소리 사바세계를 구원하는 반야의 지혜로 드러나고 천왕의 위신력과 제석천왕의 정법수호로 다 같이 성불할 지어다.'

관해스님이 꿈결에 들었던 내용으로 범종에 새겨 넣을 글귀에는 반야, 천왕, 제석과 같이 천왕봉과 불가를 아우르는 말들이 다 들어 있으니 극진하게 올리는 기도에 속인들은 알 수 없는 어떤 대상이 감응이라도 한 듯 합니다.

지금껏 항상 그래왔듯이 기도하듯이 생각하고, 염불하듯이 또 생각해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을 오르는 무수의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범종소리를 울릴 수 있도록 올해 안으로 범종각을 짓고 명년 가을쯤을 목표로 범종소리를 울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리산의 하늘에서는 하루 종일 구름 한 조각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리산의 하늘에서는 하루 종일 구름 한 조각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산승이 들려주는 산사이야기는 바람을 닮았고, 산승이 손가락질로 보여주는 자연과 산세에는 삼라만상의 이치가 다 담겨 있습니다. 관해 스님이 손가락질로 꼭꼭 짚어주며 들려주는 지리산 이야기, 법계사에 담긴 기도와 정성을 보고 듣다보니 산길을 내려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환청처럼 상상해보는 법계사의 범종소리는 지리산에는 메아리로 울리고, 세속인들의 마음에는 법계를 열어가는 피안의 다리로 울릴 듯합니다. 올라 갈 때보나 더 엉금엉금 기며 내려와도 파랗던 하늘은 역시 파랗고 상상하였던 범종소리는 '뎅~ 뎅~'거리는 울림으로 울려댑니다.  

모처럼만에 법계사엘 다녀오는 발걸음은 하늘빛 만큼이나 파랗고, 지리산 길을 내려 걷는 마음은 상상하는 범종소리 만큼이나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법계사에는 2월 6일(토요일)다녀 왔습니다.



태그:#법계사, #지리산, #관해스님, #적멸보궁, #범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