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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 팔아넘긴 책 지난 1년간 입시준비를 하면서 큰 딸이 봤던 책과 참고서들, 무려 100Kg이나 되었다. 대략 권당 1만 원 정도 쳐도 300만 원이 넘는다.
▲ 고물상에 팔아넘긴 책 지난 1년간 입시준비를 하면서 큰 딸이 봤던 책과 참고서들, 무려 100Kg이나 되었다. 대략 권당 1만 원 정도 쳐도 300만 원이 넘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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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고 나니 비로소 큰 딸이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500만 원에 육박하는 대학등록금,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냈던 금액의 10배에 가깝다. 그동안 우리 교육의 질이 10배는 좋아졌을까 싶어 쓴웃음이 난다.

봄맞이 청소를 하다가 딸아이가 공부하던 책들 중에서 국어, 영어, 세계사 관련 책들을 빼고 버리기로 했다. 맨 처음에는 차곡차곡 정리를 해서 폐지를 가져가시는 분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양이 많다보니 조금은 욕심(?)이 생겼다. 아니, 욕심이 아니라 대략 계산해 보아도 300만 원은 족히 될 것 같은 책값을 폐지로 내놓았을 때 얼마나 될지 궁금했던 것이다.

박스나 종이류 같은 것은 폐지수집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가기 좋게 분류해 놓고, 교과서와 참고서 같은 것들만 따로 챙겨 차 트렁크에 실었다. 차가 묵직하다.

아내와 나는 고물상으로 향하면서 "얼마나 될까?" 내기를 했다. 아내는 1만원, 나는 1만 2천원을 제시했고, 근접한 쪽이 폐지 판돈을 갖기로 했다.

책 팔아 번돈 정말, 번 돈일까? 1Kg당 120원을 받았다.
▲ 책 팔아 번돈 정말, 번 돈일까? 1Kg당 120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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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 도착하니 차 째로 들어오란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어리둥절해서 내리니 차가 올라선 곳이 저울이란다. 저울을 바라보니 305Kg, 트렁크에서 책만 빼내면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것이다. 책을 다 빼내고 나니 저울은 205Kg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정확하게 100Kg이었던 것이다. 순간, 3만 원쯤은 되는가 싶었다. 1Kg에 350원쯤 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지. 폐지 값이 내려서 1Kg에 120원이란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가 손에 쥔 돈은 1만 2천원, 내가 정확하게 맞혔으니 내 호주머니로 들어와야 했지만 결국은 아내의 손에 쥐어졌다.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폐지가 나오면 가져가기 쉽게 내려다 놓고, 가끔은 착한 일 한답시고 리어카에도 실어주곤 하면서 나름 착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하필이면 내 뒤에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리어카도 아닌 포터에 폐지를 모아 온 할아버지 한 분이 눈으로 보기에 4Kg도 안될 정도의 폐지를 팔기 위해 서 계셨다. 480원, 저 만큼 모으려고 질척거리는 거리의 이 골목 저 골목 몇 시간을 다니신 것일까 마음이 아팠다.

폐지 수집 그들이야말로 녹색 지구를 위한 삶의 전초기지에 있는 이들이 아닌가?
▲ 폐지 수집 그들이야말로 녹색 지구를 위한 삶의 전초기지에 있는 이들이 아닌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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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살기 힘들다고 한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삶의 무게는 어쩌면 너무 낭만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정하고 1시간 정도 앉아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써서 송고하면 2천원, 운이 좋으면 1만 2천원, 3만원, 5만원의 원고료가 지급되지 않는가? 자그마치 100Kg의 폐지 판 돈 만큼을 사진 몇 장과 A4 용지 두 장 내외의 글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는 그들에 비하면 엄청난 부르주아인 것이다.

하루 종일 폐지를 모으면 몇 Kg나 모을 수 있을까?
버려진 것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최전방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며, 친환경, 재생을 광고하는 사회는 결국 그들의 땀방울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 암묵적인 사회구성원 가운데 나도 한 사람이고, 지난 일 년 동안 시험 준비를 위해서 샀던 책이라는 각별한 이유 때문에 1만 2천 원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으로 온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길어야 일 년 보면 끝인 참고서들의 디자인은 왜 그리도 화려하고, 종이 질은 또 왜 그렇게 좋은지, 아이의 공부를 위해서 일 년 동안 베어진 나무만 해도 숲 하나는 족히 될 것 같다. 이래저래 죄를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아이의 책꽂이는 이제 곧 대학공부를 위한 책들로 채워질 것이다.
책장은 말끔해졌는데 마음은 어수선해졌다. 이제 다시는 고물상 같은 곳에 가서 직접 폐지를 파는 일은 말아야 겠다. 그것이 얼마가 되었든지 폐지수집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고물상 저울은 1톤이 넘어가는 단위는 생략이 되어 표시됩니다. 그러므로 위의 305kg은 실재로는 1305kg입니다. 물론 고물상 저울 계량기 표시는 305로 나옵니다. 이 점 착오없으시길 바랍니다.



#폐지#폐지 수집상#대학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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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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