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는 어김없이 할머니들이 모였다. 1992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매주 수요일 개최해 온 904번째 '수요집회'다.
같은 시각, 트위터(소셜 네트워킹 및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에서도 일본 하토야마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온라인 시위가 함께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들이 하토야마 총리의 트위터(
www.twitter.com/hatoyamayukio)에 '일본 하토야마 연립정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입법을 통해 조속히 해결하라(日本の鳩山連立政権は日本軍の「慰安婦」問題を立法を通して早速解決しろ)!'는 메시지를 수요집회가 진행되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올렸기 때문.
900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던 지난 1월16일부터 시작된 '수요사이버시위'는 하토야마 총리에게 직접 전달되는 메시지라 정확한 참가 인원은 하토야마 총리만 알 수 있다. 그러나 트위터의 리트윗(retweet,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내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기능)를 통해 많은 사용자들에게 퍼져가고 있다.
서명운동, 모금운동, 댓글달기 등 온라인을 통한 누리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방식이 최근에는 오프라인 집회나 시위처럼 동시 집단행동 방식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활동의 특징 중 하나는 트위터나 블로그 등 개인화 된 인터넷 공간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과거 사이트 게시판이나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개인화 된 공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형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 된 결과다.
탁심광장을 가득 매운 터키 누리꾼들
'수요사이버시위'가 일정한 시간에 같은 행동을 집단적으로 하며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누리꾼들이 일정한 공간에 모이는 집회방식의 형태도 있다. 지난 1월 24일 세계적인 웹 정보 관련 사이트인 'Read Write Web'의 보도에 따르면 터키 정부의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는 인터넷 집회가 구글 웹지도(Google Web Map)를 이용해 진행 됐다고 한다. 터키는 중국처럼 정치적 이유로 '유튜브', '구글'과 같은 유명 사이트들을 차단시켜 왔다.
구글웹지도는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터키 누리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누리꾼들이 터키 이스탄불 중심에 있는 탁심광장(웹 지도상)에 자신을 표시하는 것이다. 온라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온라인 광장에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행진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10억 명까지 모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까지 행진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터키 누리꾼들의 집회와 '수요사이버시위'의 공통점은 주최자와 참가자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 공간에서 진행되는 집회나 시위의 경우 대부분 그것을 주도하는 주체가 분명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참가자가 곧 주체가 된다. 터키 누리꾼들도 이번 집회에서 참가자 목표수와 행진코스 등을 참가자들의 집단토론을 통해 결정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참가자들의 의견과 아이디어에 따라 집회의 목표나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지속적인 온라인 집회로 촛불을 다시 결집시키자
생활인의 블로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팀블로그 '주권닷컴'은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목요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을 통해 '온라인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 게시물을 시간에 맞춰 올리고 게시글을 집회 진행에 맞춰 수정하면 참가자들은 댓글로 참가하는 형태다.
지난 4일 오전 11시에 '아고라'에서는 '대학등록금과 MB민생정책'이란 주제로 11차 인터넷집회가 진행됐다. 집회에 참가한 아이디 '28청춘'은 "거리에서 촛불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온라인에서라도 촛불을 이어가자는 생각"이라고 참가 동기를 말했다. 주권닷컴은 오는 25일 2008년 촛불집회에 나섰던 카페들과 함께하는 연대집회를 아고라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주권닷컴 팀 블로그를 최초 제안했던 아이디 '일침'은 주권닷컴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철거된 정치광장을 복원하는 방법은 온라인 광장으로 회복하는 것"이라며 "온라인 광장을 개설하고 다시금 온라인에서 촛불들의 정치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온라인 집회의 목표를 밝혔다. 주권닷컴은 '온라인집회'가 온라인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실제생활로 실천하는 형태를 지향한다.
온라인을 통한 행동이 실제 생활공간에서도 시행되는 것은 온라인을 통한 누리꾼들 활동의 또 다른 특징으로 지난해 6월 이란에서 일어난 시위 과정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시위도중 총을 맞고 사망한 네다(Neda)의 사진이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사이트를 통해 퍼져 나갔고 누리꾼들의 결론은 거리로 나서는 것이었다.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받는 시민들, 온라인서 모인다누리꾼들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집회나 시위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집회·시위의 자유가 크게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공개한 서울지방경찰청을 자료에 의하면 2008년 한 해 동안 서울의 종로, 남대문, 혜화, 영등포 등 주요지역에서 집회신고가 금지통보를 받은 것은 144건으로 대부분 정부규탄, 반전평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등 정치적 성격의 집회들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2009년에도 계속돼 '야간집회금지'와 '장소경합에 의한 금지'에 대해 법원과 시민단체가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채근식 민주노총 미디어국장은 온라인을 통한 누리꾼들의 활동에 대해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은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성격"이라며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고 불합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집단지성의 현장이 인터넷 공간"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온라인의 장점이라고 하는 빠른 이슈확산과 간단한 참여 방법은 가끔 온라인 정치활동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많은 정보가 빠른 시간에 유입되고 빠져 나간다는 것은 어떤 한가지 이슈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참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온라인을 통한 집단행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접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의 보급은 누리꾼들의 온라인 정치활동에 또 다른 변화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국내 스마트폰 보급이 조금 늦었지만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각 통신사들의 전망을 합해 보면 올해 약 400만대 이상의 스마트폰이 보급될 것이다. 내년에는 약 15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민 세 사람 중 한명은 언제든지 자신의 의사를 알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미래 정치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