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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장인데 날씨가 왜 이래.'

 

2월 10일은 여주 5일장의 '대목장'이다. 2월 14일이 설이니,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다. 이렇게 설날 전에 서는 장을 대목장이라고 한다. 오늘은 물건들이 딴 때보다 더 많다. 그러나 장거리로 들어서니, 평소보다 장을 찾은 사람들이 오히려 적어 보인다. 큰길가까지 난전을 펴고 대목장의 수지를 맞추려는 사람들은 하늘이 원망스럽다.

 

차를 타고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린다. 5일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용인에서 왔다는 사람들은, 용인 김량장보다 여주장이 크기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오는 바람에 장 안으로 선뜻 들어가려고 하질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보는 장사꾼들은 자연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일기예보를 이렇게 못 맞추면서 무슨 기상청이라고 하는 거야."

"무슨 컴퓨터인가를 비싼 돈 들여 사다놓았다면서 이렇게 모르나."

"기계만 좋으면 무엇해. 이용을 제대로 못하나 보지."

 

오늘은 흐리기는 해도 날씨가 괜찮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런데 3일간이나 그치지 않고 비가 내린다. 비가 그칠 것으로 생각하고 물건을 많이 받았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괜히 일기예보를 잘못했다고, 방송이며 기상청을 나무란다. 그렇게라도 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참기가 힘든가보다.

 

대목장 특수 보려고 준비 했는데

 

 
5일장이 열렸는데 비가 계속 내린다. 시장 중심가로 들어가니, 이곳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비가 오는 바람에 모두 우산을 쓰고 다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장꾼들도 모두 불편하다. 비를 막기 위해 처 놓은 천막에 물이 고여 있다가, 지나는 사람의 어깨 위로 쏟아진다.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사람은 지나는 행인들에게 고함을 지른다.

 

"좁은 길을 다닐 때는 우산 좀 접으면 조상이 덧나나?"

 

맞는 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날에 비까지 내려, 사람들은 우산까지 피하느라 더 난리다. 천막을 쳐놓았으니 우산이라도 좀 접으면 좋으련만, 모두 다 자기 생각만 한다. 물벼락을 맞은 사람은 분이 안 풀리는지,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에게 괜히 화를 낸다.

 

그래도 사람들은 5일장 안으로 모여든다. 가뜩이나 비좁은 거리가 오늘따라 더욱 비좁다. 오후가 되면서 빗줄기는 더욱 세차진다.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물건을 사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야말로 5일장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사진을 찍는 것도 미안스러운 날이다. 누군가 뒤에서 한 마디 한다.

 

" 이 아저씨는 이렇게 복잡한데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래."

 

'그래도 대목장인데 떡국도 못 끓이겠네'

 

장을 한 바퀴 돌아, 상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위에서 찍으면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지 않을 듯해서다. 옥상위로 올라가서 장을 보니, 비를 막으려고 쳐놓은 천막만 보인다. 비가 오는 날 대목장은 '천막장'이라도 되는 듯하다.

 

장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늘 그 자리에 앉아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가 계시다. 그런데 난전의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계시다. 무슨 일일까?

 

"할머니 오늘은 장사 안 하세요?"

"비가 와서 그런가 하나도 안 팔려."

"그래서 들어가시려고요?"

"새벽에 나와 비를 좀 맞았더니 몸이 으슬으슬하네."

"그냥 들어가시면 어쩐대요?"

"그러게 말이야. 올해는 떡국도 못 끓이겠네."

 

순간 가슴이 뭉클하다. 아마 할머니께서는 혼자 사시는가 보다. 늘 그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정리를 하신다고 하지만, 못내 장을 그냥 떠나기가 아쉬우신가 보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권유를 하신다. 할머니가 팔고 계시는 물건들이 대목장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니,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짐을 싸시다말고 다시 자리를 펴고 앉으신다.

 

 
장의 끄트머리를 빠져 나오는데, 눈을 끄는 것이 있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꽃들이 보인다. 비가 오고 나더니 벌써 봄이 오는 것인가? 하기야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기는 하다. 5일장을 뒤로하는데 누군가 고함을 친다.

 

"웬 원수같은 비가 이렇게 줄기차게 내려. 대목장 다 망했구먼."


태그:#대목장, #5일장, #여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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