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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한다는 느낌입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회자는 이렇게 힘을 주어 말했다. 급작스럽게 모인 '긴급토론회'지만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없었다. 11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국회도서관 지하 1층 소회의실에서 'MBC사태' 규탄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패널들은 "현재 MBC 노조의 역량이 충분한 수준"이라며 "시민사회와 협력 아래 방송문화진흥회의 '직할통치'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전병헌 민주당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간사는 "이르면 2월 국회 안으로 방송문화진흥회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문방위와 미디어행동에서 주최했으며 언론노조 KBS본부 엄경철 위원장과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이창현 국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문순 민주당 국회의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발제를,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회를 맡았다.

 

 

"MBC사태는 국민 전체의 문제"

 

청중 30여 명과 함께 2시간여 동안 진행된 토론회는 주로 이명박 정부가 초래한 'MBC사태'의 본질과 이것이 한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MBC사태'는 지난 8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서 MBC 임원 인사권을 행사하자 엄기영 MBC 사장이 이에 반발해 사퇴했으며, 노조는 새로 임명된 임원들의 출근을 4일째 저지하는 등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창현 국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다시 언론의 잔혹사가 시작되고 있다"며 "신군부가 언론 기본법을 제정해 언론을 장악했던 1980년 언론 통폐합의 징후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 이후 대통령 직속기관이 된 방송통신위원회의 지나친 심의와 YTN, KBS 등 이미 정권에 의해 '점령된' 방송국의 내부적인 인적 통제를 그 증거로 들었다. 이어 이 교수는 "공영방송을 국가방송으로 되돌려 집권연장을 하려는 보수 정권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사실 오늘의 발제는 'MBC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우리'의 문제"라며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양 사무총장은 "KBS처럼 MBC 저녁뉴스가 보수화 되면 진보 담론을 말하던 한겨레 신문과 경향신문은 세상을 부정적이고 삐딱하게만 보는 '돌아이'로 고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적인 언론들에 의해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가 다뤄질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언론구도가 무너지게 된다는 얘기다.

 

"MBC만 투쟁 당사자가 아닙니다. 정당, 시민사회, 일반 국민 모두 이 일로 영향을 받습니다. 방송에서 보도 왜곡이나 편파 보도가 정권 마음대로 일어난다면 야당은 궁극적 목표인 정권을 쥐는 것에 치명상을 입습니다. 시민들은 알 권리, 들을 권리, 볼 권리를 모두 침해당하는 문제입니다."

 

양 사무총장은 이어 "KBS의 시사프로그램들이 연성화 되고 국가 사회에 필요한 의제를 다루지 않는 것을 보면 MBC의 미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 KBS 보면 장악된 MBC 미래 보인다"

 

토론회 내내 참가자들은 'MBC가 KBS처럼 된다면'이라고 전제하고 '공영방송 상실'을 지적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는 KBS구성원이라면 크게 반발할 수 있는 성질의 발언. 그러나 이날 참석한 언론노조 KBS본부 엄경철 위원장은 되려 "깊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엄 위원장은 "언론의 위기상황에서 KBS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자책감이 내부에 있다"며 "지난 2008년 8월 8일 정연주 전 KBS사장이 축출된 이후 KBS에는 힘의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엄 위원장이 설명하는 '힘의 통치'는 인사권을 장악한 친정부 인사들이 특정 직원을 전근 시키거나 징계나 파면, 해임 조치를 하며 KBS내에 '생존에 대한' 공포감을 서서히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시사프로그램을 아주 없애지는 않았지만 제작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나갔습니다. '미디어 포커스'는 '미디어 비평'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지금은 거의 존재감이 없고, 시사기획 '쌈'은 제목이 너무 전투적이라는 이유로 이름도 바뀌고 내용도 연성화 됐습니다. '시사투나잇'은 아예 없어졌지요. 비교적 젊은 KBS 구성원들은 지금도 분노합니다. 그러나 10년 차 이상 되는 직원들은 생존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요."

 

엄경철 위원장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쉽게 얻은 언론독립이라는 가치가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했었다"며 "같은 공영방송 구성원으로서 간절한 마음으로 MBC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지금이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방송독립의 가치를 지키려고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MBC노조의 존재였다.

 

양 사무총장은  "정연주 전 KBS사장이 축출됐던 지난 2008년 '8월 싸움'과 올 2월 'MBC 싸움'의 차이는 명확하다"며 "그 때문에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KBS 노조가 사실상 회사 측 입장을 대변하는 어용노조인 반면 MBC 노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민주화 항쟁 때 방송국 내에서 방송 민주화 세력이 조직된 것이 큰 도움을 줬다"며 "MBC노조와 KBS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출근저지와 낙하산 인사, 총파업 등 큰 갈등이 벌어지는 곳은 MBC이고, 결국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MBC 노조가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이번 MBC문제가 한국사회의 퇴행을 되돌리는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언론인들이 앞서 싸우는 공정방송 투쟁에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문순 의원, "2월 국회는 '방문진 국회' 될 것"

 

한편 최문순 의원은 이날 토론회 중에 "전병헌 민주당 문방위 간사와 함께 이른 시일안에 MBC 사장의 인사권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사실 MBC 독립성을 규정하는 내용이 방문진법에 없다"며 "너무 당연한 내용이어서 명문화되지 않았던 것을 악용한 김우룡 이사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또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언론의 일반 원칙"이라며 "소유와 경영을 분명하게 분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 의원과 전 간사는 새로 추진할 방문진법 개정안에서 방문진의 MBC 경영에 관한 관리 감독 권한을 두루뭉술하게 명시하고 있는 2조 5항과, 방문진 이사들의 선발 자격을 명시한 6조 4항을 손볼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2조 5항은 각 방송사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되며 6조 4항 역시 방문진 법에서 구체적으로 이사들의 자격기준을 제시하게 된다.

 

최 의원은 "방문진 이사들은 방송에 대한 전문성 및 지역, 여성 등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이게 좀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는 틈을 타서 뉴라이트 6명이 이사 자리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방문진법이 최 의원의 의도대로 개정될 경우, 지금처럼 방문진 이사들이 친 정권 인물들로 채워지더라도 MBC 운영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

 

전 간사는 "편성책임자를 방송사업 책임자가 임명하도록 한 방송법 4조 역시 문제가 있다"며 "이 부분도 함께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미디어행동, #문방위, #최문순,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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