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속도로는 만원이다. 고향을 떠나살던 많은 이들이 이젠 서울을 떠난다. 하지만 명절에도 고향집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산가족이다.
다들 고향집에서 조상님들의 은덕을 생각하며 성묘를 하고 차례상을 올릴 때, 이산가족은 판문점 등 고향 땅과 가까운 곳에서 차례를 올린다. 명절이면 더욱 서러워지는 이산가족의 모습이다. 보는 이의 마음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산가족 상봉, 방법론 없이 원칙론만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
통일부는 올해 신년업무보고에서 "고령 이산가족 고향방문"을 위해 "△고령 이산가족을 위한 상봉방식 다양화 - 금강산면회소 활용, 서울·평양 교환방문 등 △전면적 생사확인과 고향방문 추진, △이산가족 실태조사 및 정보통합관리체계 구축"이라고 했다. 원칙은 좋다. 구체적 방법론은 무얼까?
통일부의 <2009년도 남북관계 추진현황(2010.1.)>을 보면, 지난 남북적십자회담(8.26~28) 및 실무접촉(10.16)에서 제시한 '이산가족문제 해결3원칙'이 조금은 구체적이다. 내용은 '①이산가족 교류는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추진, ② 전면적 생사확인 등 근본적 문제 해결, ③ 군포로․납북자 문제 등의 해결에 있어서 상호 협력'. 역시 원칙론이다. 구체적 방법론은 없다.
지난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민족대명절인 설이나 추석이면 이산가족 상봉이 거의 관례화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이산가족 상봉현황은 08년 0건, 09년 195가족(888명)이다. 참여정부 시절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던 07년(388가족, 1741명)에 비해 49.7% 감소한 규모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이산가족 상봉인 작년 추석 상봉은 사실상 정부의 역할이라기보다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에 의한 결과였다. 의미없는 '구호'나 '원칙론'만을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간이 없다, 이명박 정부 2년간 이산가족 상봉자 8천여명 숨져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시간의 문제'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산가족 면담신청한 실향민 12만 8028명 중 1/3에 달하는 4만2123명은 신청만 해놓곤 숨졌다. 3명 중 1명 꼴로 세상을 등졌다.
반면 지금까지 상봉행사 및 화상상봉을 통해 만난 사람은 3250명(가족 포함 2만1005명)으로 희망자 100명 가운데 3명꼴도 안 된다. 지금 같은 찔끔 상봉이 이어진다면 8만여 명의 상봉 희망자가 북쪽 가족을 만날 확률은 더욱 적어진다.
이명박 정부가 머뭇거리는 2년 동안 상봉신청자 중 8823명(09년 3197명, 08년 5626명)의 이산가족 상봉신청자가 사망했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2010년 1월말 현재 8만5445명이며, 이들 중 80대 이상 3만5306명, 70대가 3만1009명이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애간장이 탄다. 죽기 전 혈육의 손이라도 잡고 싶은 피맺힌 소망은 정치도, 경제도, 민족도, 핵문제도 뛰어넘는 천륜이자 인륜의 문제다.
쌀 재고 160만톤, 보관비용만 연 4800억원에 달해
이전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쌀, 비료 등 인도적 대북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은 연계되어 왔다. 지난 2002년 쌀 40만 톤을 북한에 차관형태로 지원하기 시작해 2007년까지 매년 40여만 톤을 지원해왔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2년간 인도적 대북 쌀 지원은 없다. 당연히 이산가족 상봉 역시 없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지난 4일 "재고 쌀 160여만t 중 적정 재고를 제외한 80여 만t 가운데 공공비축미 등을 뺀 최대 40만 t은 밀가루 가격에 공급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청와대 관계자)"고 했다.
쌀 재고정책의 문제점은 차치하고, 지난 1월 말 현재 국내 쌀 재고는 이미 160만 톤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재고미 160만톤 규모라면 보관비용으로만 연 4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의 경우만 하더라도 작년 한해 전국 150여 개 농협 미곡처리장은 추곡 수매와 재고 처리 과정에서 모두 59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고 한다(YTN, 2월 8일 보도).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쌀 보관비가 3년간 얼마인지 아느냐? 나는 5~6년 전 통계는 알고 있는데 그 때는 보관료가 5000억~6000억원 했다고 하더라"라며, "정부가 (쌀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쌀 지원 연계해야
쌀 재고대책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을 해결할 방법은 어렵지 않다. 고령의 이산가족은 더이상 기다릴 힘이 없다. 국내 재고미는 갈수록 늘어만 간다. 이제 선택지는 뻔하다.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쌀 지원을 연계하는 것이다.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지난 1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년 10월에 한 차례 상봉 이후 아직까지 구체적 계획이 마련된 것은 없지만, 정치당국간 대화와 별도의 채널을 통해서라도 설날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최근 정부 당국간의 대화는 재개되었으나 설 명절을 전후로 한 이산가족 상봉계획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한 반응일까?
경기도는 지난 1월 31일 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사업과 별도로 올해 도내 거주 이산가족들의 북한 가족 상봉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소속 도지사와 한나라당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경기도 의회조차 정부의 '원칙론'만을 믿고 계속 기다릴 수 없다는 반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북한 역시 신년사설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제 구호에 불과한 '원칙론'은 접어야 한다. 남북간 합의가 어렵다고 볼 수 있는 이른바 '불능조건'들을 내세우면서 계속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북한인권법은 '법만능주의'에 불과한나라당은 북한 동포의 인권을 위한다는 이유로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토론 절차마저 무시한 채 북한인권법을 변칙통과시켰다. 북한동포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 유린을 시정하자는 목표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간 북한인권법이 존재하지 않아 인권이 침해되었으며, 인권법이 제정되다고 북한 동포의 인권이 하루 아침에 신장될 수 있는가? 그야말로 현실을 외면한 법만능주의요, 무책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북한인권법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비현실적 제한규정을 담고 있다. 인권 개선은커녕 오히려 인도적 지원마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불필요한 자극으로 이산가족 문제 뿐만 아니라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조차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을 야기할 것이 뻔하다.
실질적으로는 남과 북에 있는 이산가족의 혈육 가족 상봉이라는 천부인권 침해를 가져오는 것이 한나라당이 제정하려고 하는 북한인권법이다. 이산가족의 인권을 짓밟고, 북한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금지, 제한하는 북한인권법의 제정계획은 포기되어야 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을 풀어주는 것이 시급하다. 상봉은 조속히 그리고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추진창구인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말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에는 이산가족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북한인권법 제정 대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간 대화에 정부는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도적 쌀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연계, 이명박 정부의 조속한 결단, 그리고 북한인권법안의 철회를 진심으로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