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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 벽에 '청소년 출입금지, 담배불 조심'이란 낙서가 써있다. 정말, 이런 곳에서 불이 나면 큰 일이다.
▲ 골목길의 낙서 좁은 골목길 벽에 '청소년 출입금지, 담배불 조심'이란 낙서가 써있다. 정말, 이런 곳에서 불이 나면 큰 일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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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의 무게에 못 이겨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듯 우중중한 날입니다. 설을 앞두고 고향을 찾아 나선 차량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때 아닌 눈으로 고향을 가는 길이 수월치 않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고향이 있는 이들이 부럽습니다.

재래시장에 가서 설날에 쓸 것들을 사고,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을 찾았습니다. 내 고향은 도심재개발로 80년대 중반 고향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그나마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긴 거여동 재개발지구만이 옛날 그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곳도 이제 곧 개발이 될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그곳을 떠났고, 남아있는 분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좁은 골목길 처마밑에 연탄이 쌓여있다. 저기 어디가 이름도 잊어버린 초등학교 동창이 살던 집이다.
▲ 골목길과 연탄 좁은 골목길 처마밑에 연탄이 쌓여있다. 저기 어디가 이름도 잊어버린 초등학교 동창이 살던 집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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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보고 돌아오다 바라본 골목길, 저 좁은 길을 어떻게 뛰어다니며 놀았을까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설 준비를 맡기고 나는 다시 거여동 재개발지구로 갔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이름도 잊어버린 친구 집도 찾아보고, 초등학교시절 친구 따라 신문을 돌렸던 골목길도 돌아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다닥다닥 의좋은 형제처럼 담장도 없는 벽 하나를 경계로 이어진 집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이 난 후 거여동과 마천동으로 철거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 산다던 동네, 아침이면 종점에서부터 만원버스가 되어 버스종점에는 늘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처마도 없는 집은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연탄을 덮어놓았다. 저기 골목끝, 계단을 올라가면 4차선 대로가 나오고 건너편은 아파트 단지다.
▲ 연탄 처마도 없는 집은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연탄을 덮어놓았다. 저기 골목끝, 계단을 올라가면 4차선 대로가 나오고 건너편은 아파트 단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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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개발이 되면서 아파트와 상가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거여2동은 워낙 집들이 많아 개발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이제 곧 개발이 될 모양입니다.

그곳에 들어오면서 평생을 그곳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떠났음에도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탄가스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차곡차곡 쟁여놓은 연탄, 골목길에 덩그러니 나와 있는 연탄보일러, 뜨겁게 타오르고 하얀 백발이 되어 푸석해진 연탄재가 좁은 골목길을 더 비좁게 만듭니다.

골목길을 드나드는 리어카는 작아야 한다. 배달료도 아껴야 하는 서민들의 퍽퍽한 삶의 단편을 본다.
▲ 연탄배달 골목길을 드나드는 리어카는 작아야 한다. 배달료도 아껴야 하는 서민들의 퍽퍽한 삶의 단편을 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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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골목길이 좁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단순히 키가 크고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골목길이 좁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꿈을 상실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좁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좁다란 골목길에는 큰 리어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골목길에 맞게 제작된 리어카에 실린 연탄, 한 아주머니가 힘겹게 연탄을 나르고 있습니다.

"연탄 배달하시는 건가요?"
"아녀, 배달하면 배달료 내야 하잖어. 내가 직접 연탄가게에서 사온거여."

아주머니는 구차한 행색을 보여주는 것이 싫다는 듯 "어여 가던 길이나 가!"라고 하십니다.

골목길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연탄보일러, 골목길 실외에 연탄보일러가 많이 있다보니 흐린날이나 습기가 많은 날엔 골목길에 연탄가스 냄새가 자욱한가 보다.
▲ 연탄보일러 골목길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연탄보일러, 골목길 실외에 연탄보일러가 많이 있다보니 흐린날이나 습기가 많은 날엔 골목길에 연탄가스 냄새가 자욱한가 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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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주머니의 고향을 어딜까? 이번 설에는 고향에 가실까 아니면 자식들이 이곳으로 올까?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살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골목길을 걸어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입니다. 누군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혹시 "당신 누구야?"할까봐 길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골목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마주친 이들 중 누구도 그리 물어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무덤덤한 표정입니다. 세상 참 살기 힘들다는 그런 표정입니다.

자신들의 힘든 삶은 그저 자신들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미 능력 있고 약사 빠른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빠져 나갔을 터입니다. 그리고 간혹 재개발 이익을 노리고 이곳에 들어온 이들도 없진 않겠지만, 겨울 추위를 연탄의 온기로 녹이며 살아온 이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골목길 사이 버려진 연탄들, 저들만이 그들을 따스하게 품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 버려진 연탄 골목길 사이 버려진 연탄들, 저들만이 그들을 따스하게 품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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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가까운 곳 전세방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안 되고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선들 그 곳에 들어가서 살 형편도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한창 서울시가 열을 올리고 있는 도심재개발사업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난한 이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일인데 다들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힘없고 배경도 없고 돈 없고 능력 없는 사람들, 선거철에나 누군가에게 인사를 받아보는 그런 사람들을 지난겨울 따스하게 품어준 것은 '연탄' 외에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연탄가스 자욱하게 깔린 골목길, 고물상에 내다팔려고 모아둔 폐지들이 요 며칠 내린 비와 눈 때문에 푹 젖어 있습니다. 그냥 젖은 채로 팔면 더 살림이 나아질까 마음이 아픕니다. 철없는 이들은 또 그러겠지요.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버티는 것이라고. 정말, 이 나라가 없는 이들, 약한 이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태그:#재개발, #연탄, #골목길,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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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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