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동운동가 출신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노동운동가 출신 손낙구씨가 펴낸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 후마니타스
손낙구씨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는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이 소중한 자료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아직 직접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자료의 방대함이나 정보의 소중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주택소유에 따른 투표행태의 차이는 이미 다들 맘속으로만 짐작하던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이 책이 던지는 여러 개의 메시지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한 가지에 대해서만 다른 시각에서 토론해보고자 한다. 자료의 해석에 따라 정당의 미래 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저소득층이 계층 투표했다'는 주장은 논리 비약

손씨의 자료는 기존 통념으로 인식되던 '계급 배반' 투표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손씨는 이에 대해 기존 통념의 근거자료는 주로 여론조사이고, 그것은 표본이 1000명 정도이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모집단이 아무리 커도 표본추출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1200명 정도의 표본으로도 여론조사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분석결과를 낳는다. 전수조사의 결과가 표본에 의한 연구결과와 통계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오차범위 내에서만 존재한다. 기존 연구에서 '계급 배반' 투표는 일관되게 발견되었으므로 이를 여론조사의 한계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 점에 관한 한 손씨의 해석은 '생태적 오류(ecological fallacy)'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생태적 오류'란 '개체주의적 오류'와 함께 경험적 연구자가 가장 범하기 쉬운 방법론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여론지지도가 낮으니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최장집 교수의 주장이 개인의 평가를 총합해서 체제를 평가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개체주의적 오류'를 범했다면, 손씨는 동별 집합적 자료를 사용하여 개인의 투표행태에 대한 추론을 했다는 점에서 '생태적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2000년, 2004년, 2008년 선거에서 부자 주(개인 소득이 높은 주)는 민주당에, 가난한 주는 공화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는 부유층 유권자는 공화당에 투표하고, 가난한 유권자는 민주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즉, 집합자료(주별 자료)만 보면 마치 부자가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수준의 자료를 사용하면 실제로 미국 국민은 계층투표를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씨처럼 집합자료를 사용하면 부자동네가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서민동네가 민주당에 투표한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이 자료에 기초해서 저소득층이 계층 투표를 했다는 주장은 자료가 허용하지 않는 논리적 비약일 수 있다. 즉, '생태적 오류'이다.

그러면 왜 집합자료와 개인자료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일까? 집합자료에서 상관관계란 하나의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모든 개인이 그렇게 행동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부자동네에서는 중산층이 중상, 상층에 비해 수가 적고, 가난한 동네에서는 중산층의 수가 더 많으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는 지역을 제외할 때, 여전히 중하층 이상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소득층은 모두 한나라당을 찍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럴 개연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거출마나 운동을 해본 사람이면 대형 아파트촌에서 한나라당표, 소형 아파트촌에서 민주당표가 쏟아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하층 이상(시민계층)에서 계층투표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맞다. 하지만 집합자료에 기반하여 저소득층이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을 더 찍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관권·금권 선거 사라지면서 저소득층 투표율 낮아져

저소득층(요즘 기준으로 가구당 소득 150만 원 이하)은 현 여권의 집권시절 관권에 의한 동원투표에 의해 가장 많이 투표장으로 나왔고 투표율도 가장 높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관권, 금권투표가 사라지면서 이 계층에서 투표율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느 나라나(선진국에서도) 저소득층, 실업계층은 투표율이 가장 낮다. 대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먹고살기 바빠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투표효능감 때문이다. 즉, 자신의 한 표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은 사람이 투표에 참여할 확률이 높은데 저소득층은 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투표 효능감이 낮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고소득자, 고학력자들의 투표율이 낮았고, 그 반대계층에서는 투표율이 높았다. 민주화 이후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단지 민주화세력이 저소득층에게 희망을 주지 못해서 혹은 대안이 없어서 투표율이 낮아진 것이 아니다. 관권, 금권에 의한 동원이 사라졌고, 정치무관심층의 낮은 투표효능감, 먹고 살기 바빠서 기권 하는 등의 다양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만일 손씨가 계급투표의 상당한 증거를 발견했다면 이는 민주화 이후 학습결과이기도 하고, 외환위기 이후 유권자의 투표행태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그 증거가 일부 발견된 것이다. 이는 여론조사결과에서도 이미 드러난 것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전부인양 이야기한다면 야당은 향후 선거전략 기획에 있어서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기 말에 등을 돌렸던 계층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전통적인 민주화 세력 지지층이었던 중산층이다. 민주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이들이 탐욕의 정치를 위해 한나라당을 택한 것이다. 노 대통령 서거 이후 가장 먼저 야당지지로 돌아선 집단도 이들이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소득층에서 노대통령은 오히려 새로운 지지자를 얻었다. 이명박정부를 경험하면서 투표가 자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정치학습을 하게 된 저소득층이 야당에게 지지를 보낼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야당이 저소득층의 사회경제적 문제에만 집중한다면 저소득층의 전환은 미미한데 비해 중산층의 이탈은 가속화될 수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정당의 정책에 민감하지만 그 외의 유권자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과거의 투표 행태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계층보다는 '의식'이 정치 좌우

게다가 우리처럼 언론의 곡학아세가 심각하고 유권자의 허위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국정치에서는 여전히 계층보다는 '의식'이 정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손씨의 집합자료에 나타나지 않고 감춰진 가장 큰 변수는 지역주의이다. 유권자의 허위의식은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다. 즉, 강남에 전세 살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은데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보다는 부자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층은 증세에 가장 반대하고 레드컴플렉스가 가장 심한 계층이기도 하다.

흑인도 민권운동 이전에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권운동을 경험하면서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같은 백인보다 투표율이 높아졌다. 마찬가지로 중산층이든, 저소득층이든 '정치적 각성'을 경험한 깨어 있는 시민에게만 정당의 정책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저소득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들은 중앙에서 말로만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과 땀 흘려 일하고 부둥켜안고 뒹굴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들도 정치적 각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선거는 당장 코앞이다.

오히려 정당의 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층은 수도권 30-40대 중산층이고 시민계층이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민주화세력 지지자들이다. 저소득층만을 위한 정책으로 이들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야당이 이들에게 선거 전략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민주정부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지향해 왔다. 양자의 욕구를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연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서구에서 중산층을 배제하고 노동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내걸고 성공한 좌파 정당이 없듯이 양자의 연대는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연대'가 먼저니 '진보연대'가 먼저니 하면서 싸우는 것은 주도권 다툼이거나 아집으로 보일 뿐이다.

손씨 자료집의 소중함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료의 정확한 정치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집합자료와 여론조사 자료가 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자료가 향후 한국정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cafe.naver.com/chomagic에도 실렸습니다.



#손낙구#계급 배반 투표#계층투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