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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설날이니 오늘이 섣달그믐날임이 틀림없다. 윤극영의 노랫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의 어저께가 바로 오늘이다. '까치 설날'은 서정범이 주장한 바, 곧 '작다'는 뜻을 지닌 '아찬', '아치' 로부터 바뀐 것이니 '아찬설', '아치설'이 맞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리 보면 '까치'는 낄 곳이 아닌 데에 낀 천덕꾸러기 꼴이다.

지난 해 설에 찾아간 시골에서 만난 까치는 고양이 한 마리와 놀고 있었다. 영리하고도 용감한 까치는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부리로 쪼아대는 것으로 호기심 많은 고양이를 뒤돌아서게 만들었다. 옛 그림에서나 보던 '묘작도(고양이와 까치)', 더 나아가 '까치호랑이'를 직접 동영상으로 감상한 셈이다.

이런 즐거운 감상에도 불구하고 제주 사람들은 까치를 달갑게 보지 않는 모양이다. 맛나게 먹지도 않으면서 귤을 포함한 농작물들을 쪼아대어 망가뜨려놓기 때문이다. 까치는 또 낄 곳이 아닌 데에 낀 천덕꾸러기 꼴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 스포츠신문사와 한 항공사가 무슨 기념할 꺼리를 만들어내고는 이곳 제주도에 50여마리를 데려와 날려 보낸 것이 그 시발이다. 지역 언론사의 대대적 홍보도 곁들여졌음은 두말 할 나위 없는 일이다.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때인지, 그 단체들이 그만한 위력이 없었던 때인지 우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까치와 함께 '오작교'를 만들었다던 까마귀는 숲을 밀어낸 '포크레인 도시' 덕에 이미 더 높은 산간지대로 몸을 옮긴 지 오래되었고, 새로 유입된 '종'인 까치는 이내 '텃새'가 되어 '텃세'를 부리는 '터줏대감'이 되었다. 간혹 먼 동쪽 바닷가에서 갈매기들과 '1당 천'의 무모한 사투를 벌이는 고독한 까마귀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제주도 까마귀는 등산객이 버린 컵라면이나 주워먹는 모습 정도나 보여주는 귀한 몸이 되었다.

육지의 솟대와 한 갈래에서 나왔다고 보는 방사탑의 꼭대기에 얹은 새 모양의 것을 그저 '새'라고도 하지만, '까마귀'라 부르는 곳도 적지 않다. 이는 까마귀가 제주 사람들 눈에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좀 더 지나면, 이 마저도 '까치'라 부르는 날이 올까 괜시리 분통이 난다.

한낱 생명, '까치'가 무슨 죄가 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그 지위를 남용한 결과일 뿐이고. 만물의 영장임을 포기한 '사람'이 저지른 '약육강식'이라는 생태계의 일부일 뿐이고.

이런 일은 제주도 안에서도 축소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번에는 식물인 '문주란'이 그 주인공이다.

문주란은 동쪽 구좌읍 지경에 자생하며, 토끼섬은 그 대표적인 곳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 문주란도 엄밀히 보면 원래 토종이 아니라 바깥 나라 어딘가에서 해류를 타고 온 외래종인데, 그 크기도 커서, 고귀하고 섬세하여 보듬고 가꾸는 보통의 '난'과는 거리가 먼 식물이다.

구좌읍 하도리의 문주란.
▲ 문주란 구좌읍 하도리의 문주란.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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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제주시 용담해안도로 바닷가에 '문주란'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자란다기보다는 죽어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세찬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받는 언덕지대에서 바람막이도 없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면 욕심이다.
'이식'에 대한 정당성이 모자라다.
▲ 용담해안도로 문주란 '이식'에 대한 정당성이 모자라다.
ⓒ 이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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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왜 문주란을 굳이 이 곳에다 심어 놓느냐는 것이다. 앞서 본 대로 이미 자생군락지지로 보호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곳에다 인위적으로 심는다면 '자생지의 환경이 파괴되어 이식보존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화단처럼 꾸며놓을 심산이라면, 그곳에 자라는 '번행초', '순비기나무', '갯질경이' 따위의 식물들에 애정을 보이고 알리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것은 싫고, 그렇게라도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픈 마음이라면,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에 대해 한 줄이라도 언급해주는 것이 '이식'에 대한 '합리화'가 성립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태그:#제주도, #까치, #까마귀, #문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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