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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업하는 장면 배움을 위한 교육권보장 운동을 할때도 수업진행을 위해 시청앞에서 천막을 치고 이동수업을 하는 장면
이동수업하는 장면배움을 위한 교육권보장 운동을 할때도 수업진행을 위해 시청앞에서 천막을 치고 이동수업을 하는 장면 ⓒ 다사리장애학교

어제가 장애야학교의 교육 개강식이었다. 퇴근을 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사무국에서 김밥부터 내민다. 초등반, 중등반, 고입고졸반 등을 희망하는 검정고시 희망 장애인들이 한 둘씩 모인다.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는 뇌병변, 전신마비, 또는 청각언어장애인이다. 어쩐 일이냐고 모두들 반가워하면서 새해인사를 나누기가 바쁘다.

 

야학교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어서 이들을 위한 야간수업을 하는 선생님은 국립, 사립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자원봉사자들이다. 가끔 이 자원봉사 강사 선생님들이 결강을 할 때는 사무국장이 영어 겸 수학선생으로 강의하고, 간사가 한글선생을 한다.

 

지역의 자립센터소장을 만들어간다며 씩씩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희경씨가 고졸을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중등반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신마비로 문제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종석씨는 놀랍게도 고졸반에 들어갔다.

 

이들의 수업을 받는 교실마다 들러보았다. 희경씨가 있는 반은 아줌마 장애인들도 있었지만 사춘기 학생 모양 활기가 차다. 그러나 공책에 글씨를 또박 또박 적어가는 모습은 사춘기가 아닌 유치원생처럼 몰입한다. 반면에 고졸반은 표정이 좀 심각하다.

 

고졸반의 종석씨가 문제지를 풀때는 예쁜 국사선생님이 옆에 앉아 일일이 종석씨 귀에 입을 대고 있다가, 종석씨가 답을 말할 때 문제지에 표시를 해준다. 그 옆에 가만히 기다리면서 종석씨의 손이 되는 이제 갓 23세의 그녀가 마치 하늘천사같이 아름다워 보인다.

 

사무실의 간사선생님도 고졸반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채 점자시험지를 준비하지 못해 일일이 읽어주면서 문제를 풀도록 도와주면서, 한편으로 또 다른 전신마비 휠체어장애인을 위한 손이 되어준다. 고졸반에 들어가 있는 학생의 6명을 위해 선생님을 포함해 3명이 모두 수발을 드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학교의 사무국장과 간사의 급여는 비영리민간단체의 활동가보다 훨씬 떨어진다. 국립대학을 나오고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이들이 안 그래도 적다는 사회복지사의 급여의 50%수준을 받고도 야학교에서 일하는 까닭은 누가 제대로 알까? 

 

매주 야간 2회 각 반별마다 주 8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야학교의 수업에 강사선생님 한 분에 못오셨다. 그래도 그 다음시간까지는 기다려야 했기에 혈기가 많고 정감이 넘치는 사무국장님이 수성펜을 들고 칠판앞에 섰다. 사무국장님은 야학생들의 교육발표 때에도 기타를 들고 분위기를 흥겹게 돋우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평소 오락가락 하던 영어 5가지 문항을 알기 쉽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강의한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통역예산도 없기 때문에 사무국장은 최대한 입과 얼굴을 연극배우처럼 크게 하고 세세한 설명까지 칠판에 모두 적어가면서 말한다.

 

이들이 내는 검정고시 지원원서들을 살짝 훔쳐보았다. 일반인들이 깨끗하게 필요한 사항만 적어 내는 원서에 이들은 참 많은 땀의 흔적들이 묻혔다. 몇 년도에는 국사가 40점대에서 그 다음해에는 55점대를 거쳐 그 다음 해에야 간신히 60점대가 되었고, 수학같은 것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30점대에 3년 동안  머물러 있기도 하다.

 

고졸의 8과목을 전부 평균 60점이 되어야 하기 위해서 이들이 밟아가는 시간의 계단은 일반인들이 아는 속도와 아주 틀리다. 그리고 대학을 가기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검정고시를 치는 사람들과도 틀리다. 회갑이 다 된 어떤 만학의 장애인분은 말한다.

 

"합격하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지 않아요! 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살아있는 한 끝이 나겠지요!"

 

그리고 10년 전부터 비문해 한글부터 시작해 지금은 초등반을 졸업하고 중등반에 들어있는 뇌성편마비로 말도 못하는 중복장애인 그녀는 "지금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답을 술술 해줄 수 있으면 만족해요!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겠어요?" 하고 반문한다.

 

야학교가 지역에서 만들어졌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던 어떤 선생님은 "야학교가 매주 2회가 아닌 매일 수업을 하고 야학교에서 수업을 잘 받으면, 그것을 정규학력으로 인정해줄 수 없을까요? 교육은 평등해야 하는데 일반인 중심의 현재교육제도는 참 편파적이인 것 같아요" 한다.

 

맞춤식 교육이 필요한 이들 중에서 아주 일부분만 특수학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은 맹아학교, 청각장애인은 농아학교, 지적장애인은 특수학교 이렇게 분리되어 잘 교육받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땅의 많은 청각장애인들은 부모의 일방적인 교육욕심에 장애학교아닌 일반학교로 들어가서 언어도 수화도 모두 습득하지 못한채로 성인이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많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이 사회의 공교육의 흐름을 장애인의 속도와 맞춘다면 이것이 발전을 늦추는 후진국으로 가는 길일까? 선진복지로 가는 길일까? 천천히 좀 맞추어 살아가면 무슨 큰 탈이 날까?  

 

행복지수는 먼저 일등으로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에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아직도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기득권의 손실 때문에 모른 체 하는 것일까? 천천히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찬찬히 속 편하게 해주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장애인도 속편히 공부하면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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