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당(別堂)은 완전히 전소된 상태였다. 벽이 무너질 때 쏟아진 돌무더기는 시커멓게 그을렸고 널부러진 안쪽 구석에서 여인의 주검(屍)이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정약용은 휘움한 새벽녘 빛 기운 속에 피어오르는 지네의 독연 같은 실연기를 헤치며 금역(禁域)을 설치했다.
뒤늦게 도착해 웅성대는 사람 사일 누비던 성주 관아 서리배들은 죽은 자의 정황 듣기에 여념 없었다. 봇짐을 진 방물장수 아낙이 혀끝을 차며 안타까워했다.
"이곳저곳 떠돌다보니 사람들 인품에 대핸 길바닥 점쟁이우. 사주 육갑 안 짚어도 길흉사를 한눈에 처억 아는 건 마흔 다 되도록 길바닥 품을 팔아서라우. 이 댁은 한 달이면 두어 차례 들락거렸으니 사고가 난 분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선 우리 집 숟가락 숫자만큼이나 알고 있다우. 별당 아씬, 차암 인정 많은 분이셨지요."방물장수 아낙은 새삼 일어나는 감회 때문인 지 눈시울을 붉히며 뒷말을 울먹였다.
"별당 아씬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꼭 쥐어 배냇병신이라 손가락질 받았어요. 얼굴은 밖에 내놓을 정도였으나 손이 펴지질 않으니 어느 남정네가 데려 가려 했겠어요. 이팔의 꽃다운 시절 다 넘기고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이렇듯 천영감(千發鎬)의 후실로 들어오는 신세가 됐지요."
입심 좋은 아낙의 얘기는 그칠 듯 말듯 넋두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은, 초야를 치른 다음날 별당 아씨 손이 펴졌다지 않습니까. 내가 본 건 아니니 그렇다 안 그렇다 할 바 못 되지만, 그런 말이 천영감을 통해 나왔으니 믿을 밖에 더 있습니까. 별당 아씨 손이 펴지자 글쎄 옥구(玉鉤)란 물건이 나왔다내요. 생긴 건 영락없이 갈고리 형상인데 고걸 가지고 태어난 기집에게 남정네들이 홀딱 빠진답디다."그걸 보았는지를 묻자 얼굴을 붉힌 아낙이 도리질 치며 목소릴 낮추었다.
"그런 것이야 신월루(新月樓)에 가면 알 수 있지라우."
구경꾼 사이를 누비며 정보를 수집하는 서리배들과는 달리 송화는 입마개를 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임시로 발을 친 문밖에서 정약용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옛 서적에 이르길, 불에 타 죽으면 몸이 오그라들어 권축(拳縮)이라 했다. 화기에 물 기운을 빼앗겼을 터, 먼저 입안을 살펴라!""그을음이 없습니다."
이미 호흡이 끊겨 닫힌 입안으로 연기가 들어 올 수 없다는 얘기다. 주검이 살아 있었다면 뜨거운 불길을 피해 움직였을 것이고, 따라서 입은 열리고 기맥(氣脈)이 왕래해 입안에 그을음이 차게 된다. 코도 마찬가지다. 콧속이 깨끗한 건 뉘어진 주검의 등 쪽만 탓으니 사후(死後)에 불을 지른 것이다."방안의 재를 쓸고 영초에 절인 종이를 깔아라."
한 시각이 지나 이곳저곳의 종이에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 피였다. 불길이 일어나기 전 누군가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은 것인데 이상한 건 죽은 자의 왼손이었다. 꽉 쥔 손에는 '한 일(一)' 자가 쓰인 물젖은 천 조각이 있었다. 성주 관아로 주검을 옮기고 검시기록을 점검했다.
"불에 탄 건 도검에 의한 상흔을 감추기 위함이다. 상흔은 양혈분골(養血盆骨)로 폭이 좁고 깊다. 이것은 우발적이라기 보다 계획된 살인이다. 사후에 찔렸다면 주위에 응고된 피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나 강한 식초를 뿌려 흔적이 즉시 나타났으니 이게 치명상이다. 그런 다음 방안에 불을 놓아 태운 것인데···, 보기에 따라 황촉(黃燭)이 넘어져 불이 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해서 문제는···."왜 별당에 있는 여인이 죽어야 했는지를 규명하는 것과 주검의 왼 손에 쥐어진 일(一) 자가 무얼 의미하는 지도 찾아내야할 시급한 일이었다. 사전 조사를 끝낸 송화가 의견을 내놓았다.
"천영감은 오래 전 장삿길에 나섰다가 큰돈을 모았답니다. 소문엔 예저기 땅마지기나 장만하고 돈이 되는 일이면 앞뒤를 안 살피는 과정에서 부인이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러니 쉰셋 되도록 홀로 산 모양입니다. 그런 천영감이 지금의 부인을 맞아들인 건 한쪽 손을 쥐고 태어난 측은함 때문이라는데, 하룻밤 지낸 후 사정이 달라졌으니 여간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더군다나 별당의 쥐어진 손에서 옥구까지 나왔으니까요."
송화가 내놓은 문헌은 조선의 것이 아닌 중국의 기록이었다. 한무제 때 구익(鉤弋) 부인은 태어날 때 한쪽 손을 쥐었는데 황제를 만나 하룻밤 지낸 후 손이 펴졌다. 더구나 쥐었던 손에서 나온 옥구란 신물로 인해 총애를 받았으나 나중엔 황제의 명으로 살해되는 비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찬 어른, 당나라 현종 때엔 명림(鳴琳)이란 알도 나옵니다. 이러한 물건들은 사내의 기력을 충동시키는 미약 같은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이런 물건을 지닌 여인을 요사하게 생각해 황제들은 자신이 죽기 전 살해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천영감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근자에 두 분의 금실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송화가 다시 뒷말을 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만난 방물장수 아낙의 말엔, 별당 아씨가 신월루의 춤추는 무희(舞姬)라 했습니다. 그런 여인을 천영감에게 소개한 인물이 조카 천치수(千致洙)였으니 음으로든 양으로든 관련있을 것으로 보아 거길부터 가봐야지 않겠습니까."
신월루는 관아에서 두어 식경 거리에 있었다. 추임새를 놓는 '얼쑤'와 '좋다' 소리가 장고 장단에 쫓겨 우르르 대문간을 넘어와 행인들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방문객 기색 읽는데 귀신같다는 기생어미 추월(秋月)이 메마른 눈웃음을 살긋거렸다.
"시러베 한량은 아닌 것 같구···. 누구시우?"
"성주 관아에서 나왔네. 지난해 이곳에 있던 처자가 천영감의 후실로 들어간 적 있는가?"
"어찌 묻소?"
"그 처자가 어떤 인연으로 천영감의 후실로 들어가게 됐는지 말하시게."
"이보세요, 포교 나리. 그건 우리 아이들 비밀이에요. 내 밥줄이나 진배없는 그런 것을 말해 버리면···."
"싫다면 할 수 없지. 허나 이건 알아두게. 어느 유곽이든 구린내 나는 부분이 있고, 포교들은 그런 곳 찾는 사냥개네. 내 다시 옴세. 자세한 건 그때 들어도 늦지 않으이."
추월의 기색이 이내 풀어졌다. 오호호호! 강글어지게 웃으며 방 쪽을 얼씬대는 계집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내 조촐한 술상이 툇마루에 놓이자 건너편 잔에 쪼르르 술을 채웠다.
"참으로 성미 한번 급하시우. 죄 지은 놈은 말도 못 붙이고 곤장 맞겠수. 우리 집에 왔으니 우선 목이나 축이시우."
잔을 건네고 나서 추월은 가만가만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이름이 뭐였든 여기선 내가 평가해 이름을 내린다우. 그런 이름이 병화(竝花)였지요."
"병화, 두 발로 선 꽃이라?"
"그 아이와 사흘을 지내고서 격에 맞는 이름을 지었지요. 꽃은 향기가 생명이우. 모란이 화사하나 향기가 없어 격이 떨어진 환자(宦者)같은 꽃이우. 그런데도 자신이 최고라 뽐내지요. 때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내도 있지만, 세상의 어떤 꽃도 그 아일 따를 수 없다는 뜻이 병화라는 이름이었지요.""무엇이 달라도 달랐다는 얘긴데···. 어딘가? 용모가 절색이었는가 아니면···."
"몸이 특별했어요. 이십여 년 전 내시부(內侍府)에 몸 담았던 팽월(彭越)이란 내관은 궁에 들어온 계집의 걸음걸일 보고 등급을 매겼다우. 눈을 감았어도 항아리 묻은 복도 위를 또각또각 나무 신(木靴) 신고 걸을 때면, 울리는 소리만으로 계집의 품격을 매겼으니까요. 이렇게 매긴 품격으로 전하를 모실 순번을 정했으니 대단한 청각을 가졌지요. 그 내관이 세상을 뜨자 법술을 전수받은 내가 신월루란 기방을 열어 세상 사내 후려잡을 물건을 찾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마침 내 눈에 들어왔지요."
정약용의 입가에 흐르는 미미한 웃음조각을 모른 척하며 추월은 자신의 얘기에 취해갔다.
"심폐술(心肺術)을 익히지 않았어도 호흡은 짧지 않고, 몸 구조 역시 특별했어요. 그 아이에게 신월무(新月舞)를 가르치자 단숨에 깨우치지 않겠어요."
"예사로운 춤은 아닌 듯싶네만?"
"사내들이 꺼뻑 나자빠지는 방중술이라고나 할까요. 가르치지 않아도 내밀한 방법을 아는 건 선천적으로 타고 난 끼라는 것이우. 신월무는 아무나 배우는 춤이 아니우. 발이 작고 가늘어야 배울 수 있으니 중국인들은 이걸 배우려 어려서부터 발을 묶는 전족(纏足)이란 걸 합니다. 조선 여인도 버선을 신습니다만 그렇다고 발이 자라지 않는 건 아니지요. 춤을 익히면 몸은 상중하로 나뉘어 따로 따로 움직이니, 방사를 치르는 사내의 즐거움이 어떻겠습니까!""그런 처자가 천영감에게 시집간 경위나 말해 보게."
"매파가 왔었지요. 누가 보냈는지 묻지 않는 게 이곳 사정이니 그 점에 대해선 아는 바 없습니다."
"병화라는 처자, 여기 있을 때 머릴 얹었는가?"
"기생집에 온 계집이니 당연히 머릴 얹었지요. 포교 나리, 더 이상은 곤란합니다. 영업 비밀이 아니라 더 이상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네만, 사람이 죽었으니 자네도 관아에 나와 조사는 받아야지. 다리 하나 부러진다고 사정 두지 않는 형리가 많은 곳이네."
"아이구, 말씀드리지요. 원 성미 한번 급하시우. 병화의 머린 천영감의 조카 천치수가 올렸습니다. 그 사람이 이곳을 다녀간 후 매파를 보냈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만."
"한쪽 손은 여전히 쥐어진 채였는가?"
"손이야 사람이 볼 때 쥐고 있으면 항상 쥐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어차피 입을 열었으니 아예 속 시원히 털어놓겠우! 이 일로 날 불러 치도곤이나 안기지 마시우. 병화란 년과 즐긴 건 천치수였는데 무슨 연유로 품에 안은 계집을 숙부의 첩실로 들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가만, 이보게 추월이. 그 천치수가 이곳에서 색다른 짓을 하지 않던가. 보통 사내들관 다른 행동 말이네."
그 말에 추월은 까르르 웃어댔다.
"그 선비 병화를 만나러 올 때엔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황촉을 가져와 불을 켰어요. 한데 방사가 어찌 요란스러운 지 얼굴이 화끈거려 근처를 지나갈 수 없었다니까요. 나중에 병화 년에게 물었더니 천선비가 가져온 황촉 심지에 괴이한 약물이 묻어 있다고 합디다. 며칠 전 그 아이가 이곳에 들러 묘한 얘길 하지 뭡니까. 아무래도 천선비 때문에 그 집을 나와야겠다구요."
"이유를 물어봤는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황촉 같았어요. 내 생각엔 천영감 방에 독이 묻은 황촉을 켜 병화란 년과 방사를 치르는 중에 천영감과 병화를 죽일 생각을 갖고 있는 걸 눈치챘나 봐요. 그년의 낯빛은 날 속일 수 없어요. 그럼요. 어쩌면 천선비가 벌써 손을 썼는지도 모르지요."
급히 성주 관아로 돌아온 정약용은 생각을 정리했다. 정황으로 보면, 천치수가 별당 아씨를 죽인 게 분명하다. 별당 아씨는 천치수의 계획을 알고 있기에 죽기 직전 표식을 남기려 했을 것이고 송화가 찾아낸 왼손의 한 일(一) 자가 그것일 것이다.
'그 한 일 자에 죽음의 비밀이 있기에 별당은 자신이 죽으면서 남기려 한 것 아닌가. 천치수란 자가 괴이한 황촉을 지니고 있다 들었는데 일을 저지를 시각이 언제인가?'
일(一)이란 글자는 삶이 끝나고(生) 죽음이 시작된다는(死) 뜻이 있다. 일은 아니 불(不) 자의 첫 획이며 시작 획으로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의미의 불기(不起)란 뜻도 있다. 이런 숫자를 앞에 내걸었다면 눈앞에 죽음이 있다는 의민데···.'일(一)이란 숫자를 사용해 은밀히 시각을 약조했다면 어떤 시각이 있을까?'
관상과 점술가를 자주 찾았다는 병화니 그녀가 이용할 수 있는 건 조선의 선비가 잘 쓰는 십이지였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모두 한 일 자가 들어있다. 여기에서 한 일(一)이 없는 글자는 오직 묘(卯) 뿐이다. 은밀하게 일(一)이란 글자로 시각을 약속했다면 바로 묘시(卯時)가 아닌가?
정약용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첫 번째 범행은 지나갔지만 두 번째 범행은 막고 싶었다. 정약용은 서둘러 천영감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주]
∎양혈분골(養血盆骨) ; 젖 위의 우묵 꺼진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