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대학 4학년인 2000년도 초반의 멀티미디어 영어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때 외국인 영어 교수는 학생들인 우리들에게 카툰을 하나씩 그려보라고 했다. 그때 내가 그린 카툰은 Y2K가 미국 월가를 쓰러뜨린 그림이었다. 그 교수는 내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했는지, 아주 좋다는 평가를 내렸다.
언제 내가 그런 '카툰'(cartoon)이나, 네 컷으로 된 '코믹 스트립'(comic strip)나, '캐리커처'(caricature)로 된 시사만화들을 즐겨봤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논설이나 사설보다도 그것만큼 세상일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가 아마도 대학 초년생쯤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문에 오마이뉴스 시사만평가로 활동했던 김상돈의 만평도 그 이후 줄곧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특별히 2005년 12월자 <탓.탓.탓>이란 만평은 더욱 기억에 남았다. 정치인들은 선거 실패를 국민이 몰라준다는 '탓'으로, 정부의 부동산 실패에 대해서는 언론과 건설사의 '탓'으로, 또 국정 실패에 대해서는 홍보부족 '탓'으로 돌리고 있었으니, 정말 그럴듯한 풍자였다.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손문상의 카툰 역시 사회적 이슈들을 압축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10월 31일자 <삼성의 3요소>라는 카툰을 통해, 그는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거대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TALK', 'PLAY', 'LOVE'로서, 정․관계, 검찰, 언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으로 꼬집고 있다.
<한국 시사만화 100년>은 이 땅에 처음으로 만화를 선보인 1909년 6월의 시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사만화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에 이도영이 그린 삽화에서부터, 격동기에 활약했던 김용호 화백의 <코주부>,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 정운경 화백의 <왈순 아지매> 그리고 현대의 손문상, 김용민, 서민호, 장봉군, 최민, 조민성 등 국내 시사만화가의 역사와 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100년 전 최초로 시작된 시사만화는 두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 하나는 그 당시 글을 깨친 사람들이 무척 적었고 또 국한문 혼용이 일반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손쉽게 대할 수 있는 차원에서 삽화를 그렸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계몽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한다.
그 뒤 일제치하와 군사정권 시절과 민주화로 이어지던 시대에는 많은 시사만화를 그리던 화가들이 탄압과 고문을 받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검열과 삭제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여러 장의 삽화를 따로 그려놓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만화라는 매체가 지닌 폭발성에 대해 당국자만큼이나 만화가들 역시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나대로 선생>으로 유명했던 이홍우 화백은 그 당시 검열 때문에 한 그림을 8번 정도 그렸다고 하니, 얼마나 탄압이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사명으로 여겼을 뿐 한 번도 시사만화를 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1년 365일 중에 300회 정도를 연재했다고 하니, 얼마나 그 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일평생 만화를 그리면서 연휴라는 것을 거의 가져본 적이 없다. 가히 장인정신에 가깝다. 특히 그는 시사만화가는 정치부 기자보다 정치 감각이 몇 배나 뛰어나야 하고, 평소 유머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보는 개그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한다."(27쪽)그렇다면 민주화 이후의 오늘날은 어떠할까? 그 어느 때보다도 권력의 썩은 곳을 비판할 수 있고, 그 어느때보다도 정치인을 비꼬는 풍자를 통해 독자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또한 녹록지 않다고 한다. 이른바 자본에 잠식돼 있는 신문사의 이념과 경영논리에 적잖은 제한을 받고 있는 게 그것이란다.
"시사만화가는 냉철한 분석과 객관적 판단을 근거로 작품을 창작하며, 세계를 드러내는 프레임은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바탕으로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사만화가의 행보가 신문사의 이념이나 인식보다 앞서간다고 하여 그것을 가로막는 행위는 결국 시사만화가의 창작활동에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243쪽)시사만화가라고 할지라도 금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신체절단이나, 욕설, 죽음, 종교에 관한 것들은 묘사하지 않는 게 시사만화가들 사이에 철칙이라고 한다. 아울러 요즘과 같이 인터넷 시대에는 주제와 소재와 형식면에서 더 다양해졌지만,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벌일 수 있는 까닭에 그 수준이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미래와 희망을 그려볼 수 있을까? 그만큼 시사만화에 장인정신을 불어넣는 길밖에 도리가 없을 듯하다. 옛 시대에는 공안정국이 나서서 검열과 삭제를 주도했다지만, 이제는 자기 스스로의 검열과 삭제에 더욱더 많은 담금질을 해야 할 것이고, 그를 위해 자기 철학과 자기 세계관을 더 풍부하게 새겨 넣어야 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이전에 사랑받았던 그 풍자와 해학의 맛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