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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경상도 말에 '언슨시럽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렇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인데, 해도 너무 한다. 지난 정권에서 난닝구-빽바지로 네이밍하며 허구한 날 대통령을 조롱하고 정권을 '씹어대던' 보수언론도 너무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안 '조지고' 있는지….

이 땅의 보수는 엉터리다!

하여튼 이 땅의 보수는 참 엉터리다. 그 뭐라더라 뉴라이트라고 건방 떨던 그들, 뉴라이트는커녕 올드라이트보다 못하다. 옛 것이든 새 것이든 라이트, 보수의 정체성은 천민성이다. 도대체 염치(廉恥)는 없고, 무치(無恥)는 넘친다. 어떻게 그렇게 안 변하는지….

하기야 이 땅의 보수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의 뭔가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 무리다. 역사학자 이덕일이 밝혀낸 한 가지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1910년 한일합방조약 체결 이후 일본은 76명의 조선인에게 작위를 내렸다. 그 중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모두 64명이다. 그 중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 나머지 56명은 모두 노론이다.

"노론은 장희빈의 왕비 책봉을 계기로 숙종 때 잠시 남인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경종의 왕권을 무력화하려다 소론에게 잠시 정권을 빼앗긴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정권을 장악했다."(<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 역사의 아침)

나라를 잃은 세력이 그 나라를 빼앗은 놈들에게 작위를 수여받았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렇게 보면 제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요즘 보수의 정서도 족보 없는 짓이 아니라 정통 보수의 유서 깊은 행태인 듯싶다.

각설하고, 세종시 수정 공방을 잘 보면 보수의 속셈이 읽혀진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기본 갈등을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보수 간의 경쟁 프레임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야당의 존재감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프레임 전략이다. 친박 진영이 제1야당의 위상, 또는 반대(opposition)를 거의 독점하는 구도는 여권에게 매우 좋고 안정적인 구도다. 누가 됐든 보수 안에서의 권력교체만 가능하고, 정권교체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양 세력이 한 당에 몸담고 있으니 지지기반이 흩어질 위험도 매우 낮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닥친 위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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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2월 19일 조사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44.0%이고, 한나라당 지지율은 36.0%였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박 전대표가 28.9%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다.

친이, 친박 갈등에도 도무지 야권의 대선 주자들에게 여론이 희망을 걸거나 애정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조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야권의 주자 중엔 지지율 5%를 넘는 사람조차 없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다. KSOI 최근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온 것은 작년 11월 2일 조사였다. 11월 4일 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수정 방침을 공식 천명하기 전이다. 이 때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5.4%였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4달 만에 6.5% 포인트나 빠졌다. 후보 지지율이야 이런 저런 등락을 겪기 마련이기에 수치에 큰 의미를 둘 필요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확장되지 못하고 위축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더 심각한 게 있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계속 빠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 조사에선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58.2%가 박 전 대표를 차기 대선 주자로 지지했다. 그러나 금년 2월 조사에선 34.7%로 줄어들었다. 무려 23.5% 포인트나 빠진 것이다. 특히 그 때에 비해 미세하기는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율이 더 올랐음에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줄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있다.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11월 30.4%에서 2월 23.9%로 내려앉았다. 충청에서도 45.3%에서 31.0%로 많이 빠졌다. 60세 이상 연령층에서도 37.0%에서 32.6%로 줄어들었다. 전체 지지율에서의 위축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한나라당 지지기반 안에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이것이 MB와 친이가 세종시 수정을 집요하게 시도하는 이유다.

한국갤럽이 2월 22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위기 징후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세종시 문제로 MB나 박 전 대표 모두 이미지가 나빠졌다. MB와 박 전 대표에 대해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한 응답은 각각 43.2%, 33.2%였다. 이 수치만으로는 MB가 더 손해 본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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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박 전 대표의 경우는 그야말로 외화내빈이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45.6%가 박 전 대표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으로 대답했다. MB의 경우 27.6%였다. 지역별로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하는 여론이 가장 높은 곳은 수도권이다. 서울은 37.6%, 경기-인천은 37.1%였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에서 나빠졌다는 여론이 가장 높았다. 45.2%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일장일단이 있다.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많이 빠졌는데도 비한나라당 지지층에선 올라갔다. 따라서 지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표는 일반 여론에서 밀려 결국 패배했기 때문에 이런 점은 좋은 흐름이다. 이것이 일장(一長)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빠진다는 것은 집토끼를 잃은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 누군가 한나라당 지지층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심각해질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빠지고, 충청에서도 하락세라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이것이 일단(一短)이다.

세종시 싸움의 최대 수혜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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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갈등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 당연히 MB다. 차기 대선 주자의 경우 여론조사상으로 이 문제 때문에 뚜렷하게 이득을 보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친이 진영에게도 이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박 전 대표를 지지율이나 기세에서 위축시키고 있으나, 그 틈을 비집고 부상하는 대항마가 아직 불분명하다. 결국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한나라당 지지층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일반 여론 지지율이 높은 박 전 대표뿐이기 때문이다. 

구도를 짚어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인 듯싶다. 우선 자신의 지지기반이라고 하는 수도권에서 곤혹스런 처지에 빠지지 않고 있다. 즉, 세종시 수정에 대해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예 이 전선에서 사라져 있다는 것은 큰 이득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가 수도권 여론에 안착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수도권에 기반을 두는 손 전 대표에게 기대가 쏠릴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까지도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 지난 정권의 실패에서 자유롭고, 보수도 그를 수긍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얕은 산술로는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이 MB에게 유리하다. 보수 프레임의 유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 희희낙락 좋아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런 산술을 넘어 보수의 천박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어쩌면 그 웃음이 눈물로 바뀔 날이 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태그:#MB, #박근혜, #세종시, #손학규, #이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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