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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지역에서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여러 지역에서 문화가 발전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안데스 전역에서 수장사회가 성립되는데, 농경 기술의 완성, 기념비적 건축물 축조, 높은 기술수준의 수공예 작업과 지역 문화의 특수성이 발견된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문화가 성립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문화들이 있지만 주로 해안에서는 북쪽의 비쿠스, 비루, 모체, 그리고 중앙해안의 리마, 남해안의 나스카가 있다. 또한 고지대에서는 북쪽의 레쿠아이, 중앙의 우아르파, 남쪽의 티아우아나코문화가 발전하였다. 이들은 지역적인 색채가 강한 문화를 보였는데, 결국 그 문화도 뿌리를 따져보면 차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특히나 이 시기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희생제례가 많이 수행되었다는 사실이다. 희생제례는 신에게 인간을 제물로 삼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끔찍한 사례들은 알고 보면 세계의 모든 역사에 걸쳐서 등장한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주로 순장이라고 불리는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부여에서는 순장을 시행하면 많으면 백명을 희생시킨다고 한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의 지증왕은 순장의 풍습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우리의 역사와 안데스문명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차빈문화의 쇠퇴, 그리고 모체문명의 등장

아이아파엑은 모체문명에서 모시던 최고의 신으로서, 펠리노와 새, 뱀의 뛰어난 능력이 합쳐진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되었다.
▲ 아이아파엑 장식 거울 아이아파엑은 모체문명에서 모시던 최고의 신으로서, 펠리노와 새, 뱀의 뛰어난 능력이 합쳐진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되었다.
ⓒ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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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체문화(Moche Culture)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페루의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유물들은 모체문화를 비롯한 이 시대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심지어 이번 특별전의 타이틀인 잉카문명보다도 더 많을 정도이다. 특히 유물들이 다양하고 빼어나며 완성도도 높기에, 이 시기를 '뛰어난 장인들의 시대', 또는 '전성기'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높은 비율로 인구가 증가하였기 때문에 그에 따른 수요가 역시 늘어나게 되었다. 기존의 농경지나 생산 시설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필요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좀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크게 2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하나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긴 농수로를 만들어 새로운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수고를 거부하고 차라리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전쟁을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전쟁과 싸움, 그리고 그로 인한 포로나 희생제례 등이 크게 부각된다.

차빈시대는 종교적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통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는 각 부족의 지도자들인 꾸라까(Curaca)들이 통치의 중심이 된다. 이들은 약탈이나 방어를 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능력 있는 지도자들로서, 기존의 종교지도자들의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종교 또한 이들의 두각과 함께 좀 더 잔인하면서도 강인한 쪽으로 발전해가게 되며 이러한 양상은 여러 유물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모체인들은 피라미드 건축과 최고의 관개시스템을 통하여 뛰어난 건축, 기술 및 행정 능력을 발휘하였다. 이들의 주요 신은 아이아파엑(Ai-apaec)으로서 펠리노와 새와 뱀의 뛰어난 능력이 합쳐진 인간의 형상으로 구현되었다. 그는 참수의 신이자 풍요와 창조의 신으로서 모체 최고의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모습은 여러 유물들이나 시판왕의 피라미드,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의 피라미드 등에서 나타난다.

모체 토기의 특징과 그 모습

모체시대 전사의 화려한 모습을 토기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며 당시 지배계급이나 제사장의 모습으로 보인다.
▲ 전사 머리 모양 병 모체시대 전사의 화려한 모습을 토기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며 당시 지배계급이나 제사장의 모습으로 보인다.
ⓒ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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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체인들이 남긴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은 역시 토기이다. 모체의 토기는 사람, 신, 독물, 식물 그리고 복합적인 장면들이 예술가들에 의해 표현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도 이러한 모체 토기들이 다수 출품되었으며 그러한 유물들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감탄을 연발한다.

모체토기는 전문 도공이 틀을 만들고 대량으로 찍어낸 것이 특징이다. 각종 도안이나 형태를 갖춘 의례용도 많지만 이와는 달리 일상용은 접시나 병, 항아리가 많고 소박하게 채색되어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병목 부분에 고리모양의 손잡이가 붙어있는 토기들인데, 이러한 형태는 차빈시대부터 꾸준히 보이는 이 지역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토기는 바닥이 평평하고 개방형 가마에서 구워졌으며, 폐쇄형 가마에서 구운 토기는 검은색이나 회색빛을 띤다.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띄어 만든 토기를 흔히 상형토기라고 한다. 모체 토기는 이러한 상형토기들이 매우 발달하였고, 이들은 주로 실생활에서 쓰기보다 의례용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상형토기 외에도 채색토기라고 하여 토기에다가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한 토기도 많은데 주로 신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의 토기와 비슷한 느낌마저도 주는데, 이러한 다양한 모습은 모체인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에 의하여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토기들 중에서도 '전사 머리 모양 병'은 특이한 느낌을 준다. 모체시대 전사의 화려한 모습을 토기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며 붉은색과 주황색을 적절히 배치하여 기괴한 느낌마저도 든다. 이렇게 얼굴의 양측에 붉은 칠은 한 것은 전쟁이나 의식을 위한 것으로 머리에는 각종 장식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코걸이나 귀걸이, 모자 등을 보아 귀족 신분임을 나타내며 지배계급이나 제사장을 묘사했으리라 보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토기가 다수 보이는 것은 그만큼 당시엔 수많은 의례가 행해졌다는 것을 말한다.

모체문명의 잔인한 희생제례

모체시대의 의례용 토기로서, 모체신화에서 올빼미신은 밤, 어둠, 지혜, 성직자, 그리고 사자들의 신을 의미한다.
▲ 북을 든 올빼미신 토기 모체시대의 의례용 토기로서, 모체신화에서 올빼미신은 밤, 어둠, 지혜, 성직자, 그리고 사자들의 신을 의미한다.
ⓒ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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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체의 다양하고 발달된 미술과 문화에 감탄하지만 그들의 문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한 피비린내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것은 안데스문명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하고, 또한 세계적으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하나의 일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만한 야만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현재의 관점보다는 과거의 시점에서 보아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주의하면서 이들의 문화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농업사회였던 모체사회는 자연의 힘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자연의 절대적인 힘에 대해 경탄하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 자연을 지배하는 신이 있다고 믿어왔다. 특히 엘리뇨현상 같은 자연재해는 신의 분노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신들을 달래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제례가 매우 발달하게 되었으며 이는 당시의 주된 믿음이라는 점과 동시에 정치적 지도자들과 종교적 사제들의 권한을 지속시키고 지키는 주요한 방안으로 인식되었다.

모체문명에서는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었는데 그 원인은 상대방이 수확한 작물들을 약탈하려는 원인도 있었지만, 희생제례에 쓸 인간제물들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전쟁에서 패한 패배자들은 옷과 무기를 빼앗기고 결박당한 채로 희생제례의 제단을 향해 줄지어 끌려갔다. 여기에서 희생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주로 전사였는데, 이는 사회 구성원들 중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을 바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모체시대의 희생제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투미를 들고 상대방의 목을 찌르는 아이아파엑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 참수하는 아이아파엑 모체시대의 희생제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 투미를 들고 상대방의 목을 찌르는 아이아파엑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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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체의 토기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희생제례와 관련된 도상이 조각되거나 그러진 게 많이 보인다. 이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유물은 '참수하는 아이아파엑'이라는 유물인데 전체적으로 검은 빛을 띠는 토기로서 2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아파엑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투미라는 칼로 상대방의 목을 찔러서 자르고 있는데 투미의 날을 눕혀 목의 정중앙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 상대방은 이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당시 의례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체문명은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어찌 보면 잔인하다라는 느낌마저도 준다. 이에 대해 야만스럽다고 매도하거나 문명과는 거리가 멀다고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수도 있다. 이러한 시선은 어찌 보면 잉카를 정벌한 스페인인들의 시각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하지만 스페인인들은 오히려 더 심하게 잉카인들과 그들의 문명을 핍박시키고 부수었으며 결국 이는 더욱더 심한 야만으로 평가된다.

야만에 대해 단순하게 평가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들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선택이 최적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어찌하여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인지하여야 진정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모체나 안데스문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우리나 주변의 역사나 현재의 모습에도 깊이 통용된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잉카특별전을 갔다와서 쓴 것으로서 모체시대의 유물들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로 다루어보았습니다.



태그:#태양의 아들 잉카, #잉카특별전, #모체문명, #아이아파엑, #잉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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