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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쓸모없다고 버려진 채로 덜덜 떨다가 그만 속시원하게 죽어버린 줄 알았던, 죽어준 줄 알았던 배추 '꼬랭이'에서 새 싹이 나온다. 이것은 무슨 치욕인가. 이제 곧 땅을 갈아서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판에 죽은 것을 되살려서 어쩌자는 것인가.

 

 봄은 잔인하다. 너무나도 잔인하다. 아무 데나 희망이라는 글자를 붙여놓고 제 할일을 다했다고 으쓱거리는 봄은 파렴치하다. 무도하다. 도가 있다면, 도를 안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이렇게 함부로 아무 데나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붙여놓고 다니는 봄의 이러한 자유분방함이 아마 자본주의를 낳았을 것이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외치는 자본주의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무엇을 해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기만 하면 성공이 되는 것이므로, 부끄러움 같은 것은 끼어들 틈이 없다.

 

 농부 최씨는 금년에 한국 나이로 오십구 세가 되었다. 그는 늦게나마 자본주의의 세례를 아주 착실하게 잘 받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줄곧 농사를 지었다. 논이 열 마지기에 밭이 세 마지기, 가난이 친구처럼 다정한 소농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마흔을 넘어서면서부터 가난은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되었다. 유행에 민감한 자식들 옷 하나 사 주는 데도 사흘은 고민을 해야만 하는 '쫌팽이'가 되어 있었다. 땅에 떨어진 낱알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그런 소농으로는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땅을 팔아서 도시로 진출할까, 생각하는 그에게 자본주의가 손을 내밀었다. 가난이란 피눈물 나게 일을 해서 면하는 것이 아니라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자본주의는 친절하고 자상하게 그를 가르쳤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이 그랬다. 땅에 떨어진 낱알 하나라도 아까워서 벌벌 떠는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반면에 땅에 떨어진 낱알 따위는 이미 땅에 떨어진 것이라 해서 과감하게 밟고 짓뭉개고 씩씩하게 전진하는 사람은 어느새 최신형 자동차를 몰고 있었고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농부 최씨는 과감하게 땅을 팔았다. 밭도 팔고 논도 팔았다. 논이 이천 평에 밭이 육백 평, 합이 천육백 평의 땅을 판 돈으로 그는 남의 땅 이만 평을 빌려 배추농사를 지었다. 첫 해의 손익계산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듬 해 그는 여기에 만 평, 저기에 오천 평 하는 식으로 이 만평을 더해서 총 사만여 평의 배추와 무 농사를 지었다. 결과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손해는 아니었지만 눈에 띄는 이익도 없었다. 다만 뭔가 금방 될 것 같은 자신감은 있었다.

 

 오 년째 되던 해 그는 여기에 칠천 평, 저기에 이만 평 하는 식으로 삼만 평을 더해서 총 칠만여 평에 이르는 땅을 빌렸다. 이 땅을 갈아서 파종을 하자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은행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은행에서 안 될 때는 사채를 이용했다. 그는 이제 자기 손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하는 식으로 사람을 사서 농사를 지었고, 사람을 관리하는 반장을 구역별로 한 명씩 두었으며, 바쁘게 다니다 보니 자동차가 필요해서 자동차도 한 대 뽑았다.

 

 이렇게 해서 농부 최씨는 자기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이 사람도 최사장님, 저 사람도 최사장님, 만나는 사람마다 최사장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농부 최씨가 최사장님이 되는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단 하루 차이로 배추가 금값에 팔리기도 하고 똥값에 처분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좋은 배추를 생산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출하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따라 배추는 금값이 되기도 하고 똥값이 되기도 했다. 훌륭한 선택을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하여 최사장님은 이제 마음이 바쁜 때는 애써 기른 배추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짓뭉개며 자동차를 후진하거나 돌려서 정보가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해졌다.

 

 최사장에게 시간은 곧 돈이었고, 농사는 명실상부한 산업이었다. 산업일 뿐이었다. 산업은 이익을 낼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늘 이익만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매년 성대하게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낼 때 그가 마음으로 간절하게 비는 것은 하나였다. '저쪽'에 느닷없는 우박이라도 퍼부어 주소서, '저쪽'에 때 아닌 태풍이라도 몰아쳐서 한창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를 싸그리 수장시켜 주소서.

 

 그랬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채소 농사는 모두가 망하는 산업이었다. 망하지 않는다 해도 겨우 본전치기나 할 뿐이었다. 자본주의 학습을 충실하게 거친 최사장에게 본전치기 농사는 그저 미친 짓일 뿐이었다. 대박, 대박이 필요했다. 이러한 대박은 삼사 년을 주기로 한 번씩 찾아왔다. 그야말로 '저쪽'에 느닷없는 폭우와 폭풍이 불어닥쳐서 한창 자라는 중인 무와 배추를 수장시켜 주었다. 이럴 때 그는 떼돈을 벌었다. 이 떼돈에 대한 유혹을 그는 희망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희망이 삼사 년 동안의 배추값 똥값 사태를 견디게 해 주는 것이었다.

 

 '저쪽'이 죽어야만 내가 사는, '저쪽'이 왕창 망해 버려야만 내가 잘살게 되는 이러한 구조를 최사장은 손금 보듯이 보고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고사를 지내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시기에 '저쪽'이 망해주기를. 하지만 그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저쪽'에서도 '이쪽'이 결정적인 시기에 망해 주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겨우 깨달았을 때는, 늦어도 한참 늦어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인제 그렇소. 도망갈 생각밖에는 없어라우."

 

 쉽지 않은 고백이었다. 어려운 얘기를 털어놓는 최사장의 눈에 비장감이 돌았다. 소박한 농사꾼에서 최사장으로 명함을 바꾼 지 십칠 년, 십칠 년 세월을 건너는 동안 그는 어느새 도사가 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 돈을 빌릴 수 있는가 하는 방면으로 도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빚쟁이가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놈의 빚을 언제 다 갚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 허나 이제는 다 비워 버렸어. 내 마음에, 하 이놈의 가슴에 엄청나게 커다란 감옥이 생겨 버렸는디, 어쩔 것이여."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몇 퍼센트 이자로 얼마를 빌렸는가. 이런 것들을 적어놓은 수첩을 그는 자동차에 늘 싣고 다녔노라고 했다. 그것을 작년 가을 배추 농사가 망한 것을 계기로 모두 찢어 버렸고, 찢은 것만으로는 마음이 안 놓여 태워 버렸다.

 

그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땅에 떨어진 낱알 하나에도 마음이 아팠던, 벌레 한 마리를 죽이는 데도 한참씩이나 고민을 해야만 했던 그런 소박한 농부 최씨로 돌아가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버렸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태그:#자본주의, #희망,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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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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