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왕회장'정상모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는 요즘 심정이 착잡하다. 지난 8일 방문진 이사회가 그를 포함한 야당추천 이사(3인)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MBC 임원 인사권을 직접 행사해 엄기영 MBC 사장의 사퇴를 '고의적으로' 유도해내었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체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무리 대주주라 한들 기본적으로 대표이사(사장)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은 보장해주어야 하는 거예요. 물론 경영 성과에 대해서는 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번처럼 경영의 결과가 아니라,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직접 개입하려는 것은 월권이에요. 방문진의 권한은 경영 결과에 대한 관리감독권에 있는 것이지 직접 사장이 되어서 MBC 경영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진 이사회는 지난해 8월 새로 구성된 이후(방문진 이사들의 임기는 3년이다. 즉, MB는 작년 8월이 되어서야 방문진을 자신의 충복들로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우룡 이사장을 중심으로 사사건건 엄기영 MBC 사장과 대립의 각을 세워왔다.
이미 지난해 6월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 공개적으로 MBC 경영진 사퇴를 언급한 바 있다(그러나 PD수첩은 올 1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8월부터 방문진에 친여 성향 이사들이 포진하면서 본격적인 압박에 시달리게 된 엄 사장은 '뉴 MBC 플랜'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우룡 이사장은 9월 하순 '뉴 MBC 플랜'의 이행사항을 2주일에 1번씩 엄 사장이 직접 보고할 것을 지시하면서, 마치 왕회장이 '섭정'하듯이 MBC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임원진 8명의 일괄사표를 받아내, 이 가운데 보도·TV제작·편성·경영본부장 등 4명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지난 8일 엄 사장의 의견에 반하는 임원 선임을 강행함으로써 엄 사장의 '자진사퇴'를 강제해냈던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아침에 눈을 뜨면 김우룡 이사장의 얼굴부터 떠올라요. 참내, 대낮부터 술을 먹게 만든다니까요."
'부아'가 치밀어 그는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물론 예상하기는 했다. 지난해 8월 야당추천으로 방문진 이사가 되면서부터 이미 미디어법이 통과된 상태라 당연히 '이럴 것'이라 예상했고, 또 그래서 이사회 회의 때마다 '퇴장'도 불사하면서 강력하게 싸워왔지만, 막상 이렇게 '끝'이 나고 보니 방문진 이사로서 '한 일이 뭔가?' 하는 자괴감만 느끼게 된다고 했다.
"폭력으로 막겠어요? 어쩌겠어요? 자기들(김우룡 이사장 포함 여당추천 이사 6인)끼리 장소 이동해서 결정하면 그걸로 다 끝인데, 그러니 그냥 (말로) 반대하다 '퇴장'하고 마는 거지…."
그는 대낮인데도 벌써 소주를 3병째 까고 있었다. 방문진 이사로 활동한 세월이 이제 겨우 6개월인데, 마치 몇 년의 세월을 보낸 것 같다면서 씁쓸하게 웃고 만다. 자기라도 이런 일을 막아주어야 했는데, 이렇게 엄 사장이 사퇴를 하고 또 노조에서 파업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이 해직을 당해 길거리로 쫓겨날 텐데…… 허참, 생각할수록 소주만 찾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국민적 저항운동이 일어날 거예요."
그는 '1980년 MBC 해직기자' 출신이다. 5월 신군부의 계엄령이 떨어지고, 이에 반발하여 광주에서 항쟁이 벌어졌을 때 그는 제작거부운동에 참여했다. 언론의 사명이 '진실' 보도임에도, 당시 그는 '광주항쟁'에 대한 '사실'보도마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기자로서 '진실'과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란 정권의 왜곡조작 보도를 막기 위해, '소중한' 그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손에서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MBC에서 강제해직을 당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후배 기자들이 또 강제해직을 당해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보도지침과 언론민주화운동1977년 MBC에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 기자로, 또 외신부 기자로 일했던 그는 1980년 강제해직 후 '재야'의 길로 들어선다. 전국해직언론인협의회 총무를 거쳐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민언협)에서는 1986년 '보도지침' 사건 이후 사무국장까지 맡아야 했다.
"1986년 9월 '말'지를 통해 발표한 보도지침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보도지침'이란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언론매체에 일정한 지침을 내려 편집방향은 물론 심지어는 해당 기사의 크기나 사진의 위치까지 지정해주던, 참으로 친절했던 '지침'으로 수많은 기자들에게 '받아쓰기'를 요구하면서 정권의 '나팔수', 아니 조용한 '팩스'가 되기를 강요했던 '언론통제 지침'이었다.
당시 조간신문과 석간신문을 함께 구독했던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러한 제5공화국의 '황당한' 언론 통제 상황을 얼핏 눈치 챌 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로 기사제목은 물론 기사내용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기사가 한꺼번에 여러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것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함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면서 머리를 스쳐지나가던 조지오웰의 '1984년'은 바로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던 현실이었던 것이다.
"기자들이 그렇게라도 해서 보도지침에 반발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 그처럼 많은 기자들이 정권에 '직접'적으로 반발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그의 언론민주화운동에 동참하곤 했던 것이다. 당황한 정권은 서둘러 매일매일의 보도지침을 모아 '말'지에 제공했던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와 김태홍 당시 민언협 사무국장 등 3인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국내외의 여론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IPI(국제언론인협회)는 물론이고 세계의 유수 언론단체들이 정권의 보도지침에 직접 항의를 했고, 구속언론인 석방을 요구했다. 심지어는 미국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여론화되면서 하원 인권위원장과 아태소위위원장 등을 포함한 55명의 의원들이 한국의 언론민주화와 구속언론인 석방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당시 한국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에게 보내오기도 했다.
결국 정권은 6월항쟁 직전인 1987년 6월3일, 제5공화국 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들 중에서는 최초로 이들 3인을 1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하고 만다. 물론 '당연한' 무죄 석방은 아니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1심에서 석방되었다는, 그것만으로도 당시 민주화운동세력에게는 일정한 승리로서 그들을 고무, 격려해주었던 대단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정권이 언론까지 장악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국민적 저항을 받기 마련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언론 상황이 마치 보도지침이 존재했던 제5공화국 때처럼 암울한 상황이라면서 전 국민적 감시와 저항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1980년대의 그 유명했던 '땡전 뉴스'에 반발해 KBS수신료거부운동이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났듯이 전 국민적인 저항운동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울아, 거울아, 뭐 하니?1987년 6월항쟁을 민언협 사무국장으로, 그리고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보냈던 그는 1988년 70-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의 대미를 장식한 '한겨레신문' 창간작업에 동참하게 된다. 21명의 창간위원 중 1인으로 참가해 제2기 기자평의회 의장까지 지냈던 그는 그곳 한겨레에서 할 일이 더 남아, 1980년 해직기자들이 MBC로 다시 복직할 수 있는 기회가 왔던 1980년대말에는 복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MBC로 다시 복직한 것은 해직 후 딱 20년만인 2000년 7월 26일이었다. 그리고 그곳 MBC에서 논설위원 등을 거쳐 2006년 6월30일 '행복하게' 정년퇴직했다. 그 뒤로는 오마이뉴스 편집위원을 약 2년에 걸쳐서 했고, 지난해 8월부터는 방문진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 만 32살의 노총각으로 MBC에서 해직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마디로 그의 삶 속에는, 지난 30년 동안의 한국 언론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언론이 왜 중요하냐고?
"언론은 거울이다."
그는 그렇게 답변했다. 언론이란 (정권 등이) 자신의 행위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거울에 비추어보아 얼굴에 무엇이 묻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정책행위와 그 결과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라고.
그래서 그 거울의 프리즘은 매우 다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 프리즘은 우리 사회의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이곳저곳을 모두 보여줄 수 있어야만 하고,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그 프리즘을 자유롭게 우리 사회 곳곳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현 정권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언론으로 그 프리즘을 고정시키려 하고 있다. 마치 1980년대 제5공화국의 보도지침처럼 대한민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사(특히 방송사)들을 모두 제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만 채워 넣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설공주의 교훈"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악독한 여왕이 물었다. 거울이 답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건 당연히 백설공주님이라고. 그 말에 여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결코 거울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여왕이 거울에게 물어볼 것은 단지 그것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왕은 거울의 대답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물론 여왕이 세운 대책은 역시 매우 악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거울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왕은 만족한 나머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줄로만 알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언론에 대해 간섭하려는 현 정부의 발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정권이 자신의 홍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이 언론에 간섭하고 나서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언론의 자유, 독립과 이를 통한 다양한 언로의 확보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것이지요.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접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국민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있지요. 이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큰 재앙을 가져오는 것이에요."
그는 이명박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이란 일종의 '사회적 거울'로서 자신의 정책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 반추해보는 계기로 삼아야지, 그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깨어버리거나 한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놓쳐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민들에게 커다란 재앙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북한을 비판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사회주의 언론체제를 통해 단 하나의 논리만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제해나가면서 북한을 비판할 수가 있을까요? 그들은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요."
특정한 이념과 가치 아래 일방적으로 언론체계를 구축, 장악해 들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에 대해 그는 매우 강도 높은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간 방문진을 통한 이명박정부의 일방적이고도 치열한 공세를 홀로 막아내기에는 너무 힘에 겨웠던지 소주잔을 넘기는 그의 어깨가 많이 쳐져 있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야만 합니다."
지난 30여 년 언론민주화에 온몸을 바쳤던 자신의 삶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그는 연신 소주잔을 들어 입안에 털어 넣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만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