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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열린 도시건축박람회 메이드 엑스포
 밀라노에서 열린 도시건축박람회 메이드 엑스포
ⓒ 곽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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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패션과 디자인의 도시로 알려진 소위 '명품도시' 밀라노는 1년 내내 수없이 다양한 주제 및 산업을 다루는 박람회가 열리는 국제 박람회 도시다. '명품도시' 밀라노에서 지난 2월 3일에서 6일까지 4일 동안 도시건축 박람회 메이드 엑스포(Made Expo)가 열렸다.

최근 주거공간에도 '지속 가능 도시, 재생 도시, 친환경 도시, 생태 도시' 등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전히 숨구멍이 통하는 순환형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수도라 불리는 밀라노에서 3년 전부터 도시건축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 같은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려는 움직임과 연관돼 있다.

'밀라노 도시건축 박람회'는 올해에는 지난해의 도시재생과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테마에  준비 중인 2015년 선보일 밀라노 국제 엑스포를 핵심 주제를 삼았다. 혁신적인 기술과 건축 재료를 소개하는 여러 주요 이벤트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이벤트는 바로 '보르고(Borgo,이하 보르고)와 역사도심'이라는 이벤트다. 이 이벤트는 '도시재생'의 방법을 이태리의 소도시에서 찾고 소도시 중심으로 확산시키자는 내용이다.

'보르고' = 1만 명 이하 작은 도시들의 집단 네트워크의 힘

근래 들어 한국에서도 도시재생을 지역의 소도시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와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자본과 물적, 인적 자원이 몰려드는 큰 도시들이 주도적으로 도시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중소도시들의 대도시와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움직임 또한 대부분 지속가능한 도시재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동산투기식 건설업 중심의 개발중심적인 내용으로 포장돼 있다.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에 위치한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
▲ Civita di Bagnoregio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에 위치한 '치비타 디 바뇨레지오'
ⓒ Victoria from Londo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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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치체제 및 문화적으로 독립적인 도시국가 체제를 근대에까지 유지해온 이탈리아의 소규모 도시들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 가고자 할까? 그동안 한국에서 벌여왔던 아파트와 대규모 빌딩 등 건설업 중심의 도시개발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번 '보르고'와 역사도심'이라는 이벤트는 소규모 도시들을 바라보는 관점부터가 기존과는 다르다.

'보르고'는 원래 구도심 성벽밖에 위치한 신도심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주로 작은 마을, 구역, 소규모 도시를 지칭하는 단어다. 이탈리아 전체 국토의 87%는 인구 1만 명 이하의 작은 소도시 즉 '보르고' 로 이루어졌다. 5000개가 넘는 소도시(보르고)에 2200만의 거주 인구와 18만의 중소기업이 들어 있다. 이들 중소기업들은 8000여 종류의 특산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 즉 '보르고'는 1만 명 이하의 작은 도시들을 집단 네트워크로 연결해 힘을 갖게 하자는 발상이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작은 소도시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집단적인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박람회는 현재 소외되거나 뒤처져 있는 작은 규모의 도시들에 적합한 새로운 모델을 발굴해 가치를 재창조 할 수 있는 기준을 모색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관광대국 지위의 지속화를 꿈꾸는 이탈리아가 그 핵심 축을 작은 소도시,  '보르고'가 갖고 있는 개별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관광자원화해 도시 계획을 촉진시키는 잠재적인 자산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국내자본 및 외국자본의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투자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창출해 내고 있다. 어떤가? 이것만으로도 '보르고'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보르고'를 완성시키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는 바로 알베르고 디푸조(Albergo Diffuso; 확산된 호텔, 이하 알베르고 디푸조)다. 이는 '지속가능한 관광' 개념에 완벽히 부합하는 개념이다.

'알베르고 디푸조' =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알베르고 디푸조는 70년대 지진 이후에 복구된 주거지들과 보르고들을 관광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이탈리아의 베네토 북부 지방인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Friuli Venezia Gulia)의 카르니아(Carnia)에서 1982년에 처음으로 주창됐다.

이탈리아 북부 바레제주에 위치한 '바레제 사크로 몬테'
▲ Varese Sacro Monte 이탈리아 북부 바레제주에 위치한 '바레제 사크로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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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고 디푸조는 대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높이 경쟁적인 수직 호텔의 개념이 아닌 수평 호텔의 개념이다. 즉, 알베르고 디푸조는 소위 역사 도심에 위치하면서 객실과 각종 서비스 시설들이 한 건물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닌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각기 다른 건물들에 위치하는 수평적인 호텔을 말한다.

방문객들에게 역사 도심부의 삶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제반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방문객들을 위한 공동의 서비스 및 시설, 공간 등을 포함하는 환대 시스템을 구축하는 개념이다. 모든 거주공간은 알베르고 디푸조의 핵심(리셉션, 공공 환경, 휴식 지역)으로부터 200미터를 넘지 않는 거리 내에 위치한다는 물리적인 경계를 갖는다.

때문에 알베르고 디푸조는 부정적인 환경 영향을 낳지 않는 친환경적인 지역 개발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알베르고 디푸조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건설할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복구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면서 유기적인 망을 구축하는 것으로써 그 한계를 명확히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알베르고 디푸조는 기존의 개발 방식 위주의 스탠더드적인 접근 방법을 따르지 않는 독창적이면서 보다 더 문화적이라 할 수 있다.

초대형 신도시 말고 지역균형발전으로 가는 한국형 도시건설 방식은?

이 같은 도시건축의 수평개념은 1998년 사르데냐(Sardegna)에서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으로 2008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Helping New Talents to Grow 컨퍼런스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참고로 삼을 수 있는 경제 성장의 최고의 예로 평가받아 수상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의 이참 사장이 '스토리텔링'이라는 관광개념을 말한 바 있다. 이 '스토리텔링'은 '알베르고 디푸조' 개념과 결합시킬 수 있다. 소규모 도시에 '스토리텔링'으로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채워주고, 알베르고 디푸조와 같은 인프라가 만들어진다면 소규모 도시들이 새로운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기존 대도시 근처에 또 다른 대규모 신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보르고'의 예를 보면서 작은 도시들이 살아남는 법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 까? 이탈리아의 '보르고'와 '알베르고 디푸조'에 지역 균등 발전을 넘어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목표에 보다 더 가까이 가는 지름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소도시 '레냐노'
▲ Legnano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소도시 '레냐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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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곽형선 기자는 밀라노에서 건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보르고, #알베르고 디푸조, #지역균형발전, #이탈리아, #소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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