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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탄압, 부자 중심의 세제 개혁, 4대강 죽이기, 미디어 악법, 시국선언 교사 징계 등 이명박 정부 2년의 모습은 몹시 일그러져 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 등이 이명박 정부 출범 3년째를 맞아, 기획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 백서를 기반으로 해 노동, 시민권, 사회·복지, 환경과 건강, 언론, 교육·학문 등 각 주제별로 이명박 정부 행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출범 2년 동안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정책치고 어느 하나 힘없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촛불집회와 같은 국민적 저항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부 측에서 보면, 1%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촛불집회 같은 형식으로 표출되는 서민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향후 이어질 반민주적․반인권적인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서도 그러한 국민의 저항이 불가능하도록 비판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예방적 진압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위험스러운 '법질서 정치'

 

이명박 정권의 법치, 이른바 MB법치는 신자유주의와 경찰국가의 결합으로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법질서 정치'(Law and Order politics)로 구현된다. 법질서 정치는 자본계급에 유리한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불안정과 민중의 저항이 사회질서의 붕괴로 이행하지 않도록 사회관리 모드의 중요한 도구로서 법과 질서의 확립을 주장하는 정치형태이다.

 

그에 따라 경찰력이 강화되며 검찰은 정치편향적이 되고, 법원은 위축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전위였던 국가정보원이나 국군기무사령부 또한 다시 기지개를 켠다. 헌법재판소와 국회 또한 이를 방관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하기까지 한다. 국가기관 모두가 공모하여 체제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민주주의와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시장맹신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 바이러스는 '민주공화국'을 뇌사상태에 빠뜨렸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란 제목의 글에서 법률로써 불법을 저지르거나 또는 그 반대로 초법률적 법으로써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법률의 존재가 곧바로 헌법에 합치하고 정당한 법치를 보증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MB법치는 법률에 근거한 물리력의 강화와 함께 법률 자체의 불법성 강화로 나타났다. 그것은 법률제정권자인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기는커녕 그 수하 구실을 하는 데 그치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치닫는 결과가 된다.

 

헌법규범과 입법․사법․집행권력자의 헌법의식의 부조화는 '헌법 지체' 현상을 드러낸다. 헌법은 1987년헌법으로 바뀌었지만, 공직자들의 헌법의식은 1972년헌법 또는 1980년헌법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국가는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인권을 침탈하는 한편 자본의 반인간적 이윤추구를 방임한다. 경제적 효율성 원리가 자유주의적·사회국가적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 행사에 대하여 '정치적 집회', '폭력집회', '불법집회'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딱지는 '정치적 경찰'과 '폭력경찰' 그리고 '불법경찰'이 더 적절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최후의 기본권으로서의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폭력성이 두드러진다. 경찰의 충성도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서민들의 불만 표출을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촛불집회에 대한 전면전 선포와 '대통령궁'으로의 근접을 막기 위한 '명박산성'이 대표적인 상징사건일 것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준법을 강화하기 위해 헌법 위에 집시법을 지으려 한다. 예컨대 평화시위구역 지정, 집회와 시위에서 마스크와 복면 금지, 각목 등 제조·운반·소지에 대한 처벌, 소음 규제 강화 등이 그것이다.

 

촛불시위는 과격하게 진압되고, 공권력은 처벌받지 않고

 

2008년 경찰은 촛불시위를 불법적으로 과격하게 진압하였다. 경찰은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 대하여 진압용 곤봉을 휘두르고 방패를 내리 찍으며 군홧발을 내지른다. 이러한 폭력은 "비폭력"을 외치며 드러누운 시민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 취재진 등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와 관련해 폭행 경찰관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한 18건 가운데 실제 처벌받은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주로 여당 국회의원들의 집시법안은 집회·시위의 불법․폭력성에 대한 편견과 예단에 기초하여 사전예방주의적 및 형사처벌적 그리고 경찰편의주의적 접근을 통하여 입법 자체에 의한 실질적 허가제를 강화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집단행동=잠재적 폭도'론으로서 집단행동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다중은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비합리적 주체로 오인된다.

 

결국 경찰의 폭력성은 용산참사의 원인이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2월 9일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경찰력 행사가 위법하였다는 의견을 재정신청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특히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위법한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의 불처벌 현상이 발생해 법치주의에 대한 심대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며 "이런 차원에서 이 사건 재정신청의 쟁점인 경찰력 행사의 적법성에 대한 검토는 앞으로 공권력 행사의 사법적인 기준을 설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는 소홀한 반면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는 눈을 감았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발 앞서가고 평검사들은 말없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게 복종할 뿐이다."

 

그 결과 조중동 광고주불매운동,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 삼성 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 <PD수첩> 사건 등에서 '정치검찰'로서의 화려한 복귀신고를 마쳤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과 맞장 뜨던 호기는 상대적으로 다른 권력기관의 쇠퇴와 함께 권력욕으로 전락하였으며, 현직 대통령과 그 친인척, 집권당의 실세, 재벌 등 사회적 강자에 친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네티즌이나 언론, 직전 대통령에게는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현하였다. 

 

검찰의 적반하장, 법원의 관대함이 문제?

 

이들 주요 '정치사건'은 하나같이 검찰이 자체 인지한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뒤 검찰권이 동원된 '하명성 수사'이다. 검찰의 정치적인 이중적 태도는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더욱 확연하다. 용산철거민대책위 위원장 등을 구속기소하면서도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된 김석기 서울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 등 14명에 대하여는 불기소·항고기각 처분을 하였던 것이다.

 

법원의 무죄판결은 보수적 관점에서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주요 시국사건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에 대하여 '부실수사'보다 '법원의 관대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검찰의 적반하장은 검찰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검찰을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명박 정권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현 정권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검찰이 어떻게 하는지 매우 세밀히 들여다본다. 인사에 촉수를 세우고 있는 검찰도 정권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서로 지나치게 마주보니 생기는 부작용이다."

 

한편 한국의 사법부는 민주화 이후 독립성을 얻긴 했지만 공정한 판결로 사회적 신뢰를 획득했다고 보기 어렵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건은 대표적이다. 그런 사법부가 일련의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행태의 결과로서 법원의 최소한의 '한 줄기 양심'이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과 단체들 그리고 놀랍게도 대한변협까지 가세해 오래된 색깔론을 들먹이며 법원을 위협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법원개혁안은 법원이 정부에 대하여 비판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옹호하는 최소한의 구실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사법'의 길을 여는 형국이라 할 것이다. 바야흐로 국가권력과 보수세력이 합세하여 전체국가 차원에서 보수적인 법원의 판결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불법적 법치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입헌민주주의체제에서 법치의 중심으로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기관은 국회이다. 그런데 국회는 전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수당의 일방적 독주 속에서 국회 내 야당도 기능상실에 빠져 있다.

 

현대 민주주의를 가장 짧고 정확하게 정의한다면 '야당 있는 정치체제'일 것이다. 야당이 없거나 여당들러리로 존재하거나 또는 인위적으로 억압 받는다면 일당독재나 권위주의라 부른다. 최근 민노당에 대한 탄압이 이에 해당한다. 한나라당은 국회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헌납하는 '권한 팔아먹기'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제 권한이 사유물이라도 되는 양 주권을 무색케 하는 위헌적 분탕질이다.  

 

결론적으로 MB법치 2년은 불법으로 점철된 독재화의 길이었다. 독재정권이 포악해지는 것은 스스로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정권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광장에 대한 공포감이 크다. 침묵하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조차 두려움의 대상이다. 개인의 이메일을 이 잡듯 뒤지고 전화를 감청하지 않으면 안 되고, 세상천지 곳곳마다 CCTV를 설치하고 싶을 것이다. 제 것도 아닌, 제 것이어서는 안 될 국민의 주권을 훔친 도둑이기에 제 발이 저린 탓이다.

 

국가권력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점점 더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어떤 독재정권이고 그 출범에서부터 절대적 함량미달의 정당성을 보충해 보려고 갖은 폭력을 행사했지만, 그것이 성공한 예는 없다. 필연적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비극적인 종말을 고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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