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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비로 질척거리는 항구에는 어선의 디젤엔진이 내뿜는 알싸한 매연이 가득하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배의 엔진소리만이 갈매기 소리와 함께 부두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젊은이의 활기 넘치는 생동감이 아닌 노인네의 밭은 가래소리처럼 그르렁거리는 소음이었을 뿐이다.

군산 해망동 부둣가
 군산 해망동 부둣가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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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한쪽에서는 선박마다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가기 위한 어구 손질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니 생소하다. 한국어가 아닌 낯선 외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어인 듯했다.

힘든 일을 마다하고 떠나간 내국인 선원들을 대신해 그 자리를 낯선 외국인 선원들이 대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손길은 분주했다. 낮선 외국의 항구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질긴 생활력이 진하게 와닿았다. 짙게 끼어 있는 해무만큼이나 이곳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낮게 가라앉은 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만 같았다.

부둣가를 따라 늘어서 있는 가게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 문이 닫혀 있다.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몇몇 생선가게들의 물건들도 싱싱해 보이지는 않는다. 냉동어류를 물에 해동한후 며칠째 좌판에 내놓았던듯 비틀어진 생선 몇 마리만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 생선가게에서 말리고 있는 생선. 물메기였다.
 한 생선가게에서 말리고 있는 생선. 물메기였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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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들어오는 바다 빛깔도 무척이나 탁하다. 6월 장맛비에 격하게 흐르는 탁류만큼이나 색깔이 탁하다. 하지만 누런 황토빛이 아닌 잿빛의 탁한 바닷물이다. 거기에 더해 그 탁한 바닷물 위에는 기름띠까지 엷은 막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아니 1970년대 초반의 암울했던 회색빛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2010년 2월 26일 군산 해망동 부둣가의 모습이다.

26년 만에 찾아간 아내의 '제2의 고향', 군산 해망동

아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찾아간 군산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지낸 곳이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1984년 졸업했다고 하니 26년 만에 찾아간 군산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바다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바다란 탁한 물빛에 역겨운 비릿한 생선냄새만 풍기는 지저분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26일 찾아간 군산 해망동 부둣가는 아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 같은 기억 속 저 멀리 있는 추억을 고스란히 재현해 주고 있었다. 

경사가 급격한 해망동 주택가
 경사가 급격한 해망동 주택가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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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퇴락한 가옥에 철사줄에 의지해 매달려 있는 문패. 예전에는 집 대문마다 이렇게 문패가 달려 있었다.
 낡고 퇴락한 가옥에 철사줄에 의지해 매달려 있는 문패. 예전에는 집 대문마다 이렇게 문패가 달려 있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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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명씩이나 줄줄이 딸려 있는 자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좌판에 생선 몇 마리 내놓은채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했던 1960~70년대 군산의 어머니들. 하지만 그들의 주름진 애환이 숨 쉬던 그 좌판들은 이제는 보기 힘들다.

북적대는 사람들 발걸음 속에 몇 마리 안 되는 생선이나마 팔기 위해 뼛속 깊이 파고드는 차디찬 바닷가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목청껏 외치던 그 삶의 목소리를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 상인들 대부분이 새롭게 조성된 새만금 간척지 수협수산물센터로 삶의 터전을 옮겨갔다는 것.   

"바로 이 냄새 때문에 바다를 싫어했다."

아내의 이 같은 말에 고개를 끄덕여줄 수밖에 없었다. 질척거리는 바닥. 생선을 가득 실은채 사람들을 헤쳐 나가는 리어카를 피해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던 어린날의 이곳 군산 해망동 시장통 모습을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한 듯했다.

작고 비좁아 보이는 낡은 이발소. 면적이라고 해야 고작 서너 평에 불과할 듯했다.
 작고 비좁아 보이는 낡은 이발소. 면적이라고 해야 고작 서너 평에 불과할 듯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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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간판 밑에 붙어 있는 브라보콘 광고가 인상 깊었다. 1970년대 최고의 간식은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것도 해태 브라보콘.
 담배 간판 밑에 붙어 있는 브라보콘 광고가 인상 깊었다. 1970년대 최고의 간식은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그것도 해태 브라보콘.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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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동 언덕배기의 집은 1970년대 초반 서울 신림동과 봉천동 달동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4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한 양곡가게의 낡은 간판에 쓰여 있는 몇 줄의 페인트 글씨. 양곡 판매 허가번호가 생소해 보였다. 쌀을 팔기 위해서는 작은 동네 구멍가게도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했던 과거의 실상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월명공원을 따라 내려오는 해망동 주택가 골목은 4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낮은 담장과 좁다란 마당. 그리고 골목길 쪽으로 나 있는 창은 나름대로 철공소에서 멋을 부린 방범창으로 안과 밖을 나누고 있었다.

집들은 거의 대부분 비어 있었다. 주인이 떠나간 후 집안에는 고요만이 남아 있었다. 저 작은 마루에 몇 식구가 모여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집들은 거의 대부분 비어 있었다. 주인이 떠나간 후 집안에는 고요만이 남아 있었다. 저 작은 마루에 몇 식구가 모여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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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문을 도둑으로부터 보호했던 쇠창살(아니 방범창살?). 장식을 위해 쇠판을 일일이 감아서 모양을 냈다.
 작은 창문을 도둑으로부터 보호했던 쇠창살(아니 방범창살?). 장식을 위해 쇠판을 일일이 감아서 모양을 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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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의 낡은 집과 함께하고 있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주택은 열 곳 가운데 한두 군데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신도시에 조성된 수많은 아파트에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

바닷가 거친 삶은 이제는 낡고 퇴락한 한 이발소의 낡은 간판만이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집 뒤편으로는 굴뚝의 흔적까지 보였다. 제 역할을 다한 굴뚝이 골목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고 허물어진 채 과거의 속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골목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정부 양곡허가 번호가 생소하다.
 정부 양곡허가 번호가 생소하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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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이어진 급격한 경사가 진 언덕배기. 그곳에 화강석으로 4~5미터에 이르는 높다란 석축을 쌓는 노력 끝에 겨우 몇 평의 땅을 만들고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브로크 벽돌'로 쌓았을 것이다.

낡은 흑백영화를 보는 듯했던 지난 26일 군산 해망동 나들이. 불과 2시간 남짓이었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군산 해망동과 과거 군산의 경제를 책임졌던 해망동 부둣가는 과거의 영광을 품고 그렇게 퇴락한 채 저물어가는 석양빛에 자신을 내놓은 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은 현재 신도심권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새만금 간척지로 인해 전북권 그 어느 곳보다도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태그:#군산, #해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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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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